
▲알을 낳기 위해 연곡천을 거슬러 오르던 연어들. 한때 반짝이던 물길 위로 힘차게 뛰어오르던 모습은 이제 보기 어렵다 ⓒ 진재중
가을이 시작되면 동해안의 하천들이 가장 먼저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북태평양을 떠돌던 연어들이 1만 8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고향으로 돌아오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여정은 생명의 순환이자,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장엄한 귀향의 기록이다.
하지만 2025년 11월 3일, 강릉 연곡천의 풍경은 그 장엄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천 입구는 거대한 모래톱에 막혀 있고, 연어가 오르던 물길은 이제 한쪽 구석에만 남아 있다.
"예전엔 반짝이던 물길이었죠"
연곡천 하구 주민들은 예전처럼 연어가 올라오는 광경을 보기 어렵다며 하천의 변화를 걱정하고 있다. 주민 김정호(68)씨는 하천에 모래가 쌓여 연어의 이동이 막힌 것 같다고 말했고, 다른 주민은 "모래를 터주면 될 일을 방치하고 있다"라며 하천 관리 부재를 지적했다. 한 관광객도 "연어가 오르는 장면이 지역의 중요한 관광자원이었는데 이제는 볼 수 없어 아쉽다"라고 말했다.
연어의 귀향은 단지 한 하천의 문제가 아니다. 하천의 흐름은 곧 생명의 순환이고, 그 순환이 끊기면 지역의 생태계도 흔들린다.

▲모래톱이 넓게 퍼진 연곡천 하구예전엔 반짝이던 물길이 이제는 멈춰버린 듯하다. ⓒ 진재중
생명의 통로가 막힌 자리
하천에 쌓인 모래톱은 단순한 자연의 결과가 아니다. 인공 구조물과 관리 부재가 오랜 시간 누적되며 만들어낸 인위적 흔적이다. 흐름이 막힌 하천은 바다와의 연결을 잃었고, 그 길 위에서 연어는 결국 방향을 잃었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연어가 아닌 갈매기들이다. 연어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하천, 그곳에서 끊긴 것은 단지 물길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에게 건넸던 '순환'의 약속이다.

▲막힌 하천 하구에 갈매기만 날고 있다 ⓒ 진재중
연어의 귀향을 가로막는 모래톱
강릉 연곡천을 비롯해 고성 명파천과 북천, 삼척 오십천 등 동해안 주요 하천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같은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하구에 형성된 모래톱이 강의 물길을 막으면서 하천의 흐름이 왜곡되고, 그 영향은 연어를 비롯한 하천 생태계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구의 모래톱을 주기적으로 정비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복원하는 관리가 시급하다"라고 강조한다. 특히 연어가 산란을 위해 돌아오는 10~11월에는 임시로라도 하구의 물길을 열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연어가 가장 많이 돌아오는 남대천막혀 있던 물길을 터주자, 산란을 위해 상류로 오르는 연어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진재중
가뭄과 장마 그리고 끊긴 냄새의 길
올여름 강릉 하천들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가뭄으로 하천은 바닥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연어가 고향을 찾아 올라오려 해도 길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연어에게 고향의 냄새는 생명의 나침반이자 길잡이였지만 가뭄은 그 길을 막아버렸다.
가뭄이 끝나자 이번에는 가을 장마가 찾아왔다. 거센 비와 토사가 뒤섞이면서 하천은 탁해졌고, 연어가 길을 찾아야 할 물길은 흐트러졌다.
연어는 방향을 잃은 채 바다와 강의 경계에서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가뭄에 연곡천에서 끌어올린 물을 강릉시에 공급했다. ⓒ 진재중
돌아오기도 전에, 인간의 그물에 걸리다
연어의 여정은 북태평양에서 시작해, 캄차카 반도와 오호츠크해, 베링해를 거쳐 고향인 동해안 하천으로 이어진다. 3~4년 동안 약 3만 2천km를 헤엄치며 돌아온 연어들은 산란을 위해 마지막 힘을 쏟는다.
그러나 모천에 이르기도 전에 인간이 놓은 그물에 걸려든다. 그들은 인공 부화장으로 옮겨지고, 그곳에서 생은 멈춘다. 생명을 이어주려는 인간의 손길이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아이러니한 '죽음'이 있다.

▲연어 채란을 위해 10월 중순경,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를 포획한다. 채취된 연어의 알과 정자를 인공 수정해 배양한 뒤, 치어로 성장시켜 다시 방류한다. ⓒ 진재중
인공 어도, 수중보, 다리 아래 흐름 끊긴 강
운 좋게 그물망을 피한 연어는 연곡천 하류에서 본능에 따라 상류로 힘차게 오른다. 오대산 기슭 근처에는 이미 생을 마친 연어들이 누워 있지만, 일부는 알을 낳기 좋은 환경을 찾아 다시 물살을 타고 상류로 향한다.
그러나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은 또 하나의 벽, 인공 어도다. 연어의 길을 돕겠다며 세운 회색 콘크리트 길은 너무 가파르고, 너무 험하다. 몸을 비틀며 오르려 하지만, 물길은 끝내 그들을 밀어낸다. 연어를 위한 길이라 했지만, 그곳엔 자연의 배려보다 인간의 편의가 먼저 자리하고 있다.
정인학 강원도농어촌경제연구소 이사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어도는 생물의 특성에 맞춰 설계해야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인간 중심입니다. 특히 동해안에서는 회유성 어종을 고려하지 않은 수위 조절과 낙차 구조 때문에 연어가 오르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결국 생태 복원이 아니라 보여주기식 시설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곡천 수중보생태계를 위해 만들어진 수중보가 하천의 자연 흐름을 방해해 연어와 같은 회귀성 어종의 이동이 차단되고 있다. ⓒ 진재중
다시, 은빛 물결이 돌아올 날을
산란을 마친 연어가 힘없이 물살에 몸을 맡긴다. 고향 하천에서 생을 마감하는 그 마지막 여정 속에는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숙명이 담겨 있다.
연어의 귀향이 멈춘 자리는 단지 한 생명의 끝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끊어놓은 자연의 약속이 깨어진 자리다. 언젠가, 이 연곡천에도 다시 은빛 물결이 역류하듯 거슬러 오르던 그날의 풍경이 돌아올 수 있을까.
강이 흐르고, 생명이 돌아오는 길, 그 길을 되살리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고향 하천에서 생을 마감하는 연어의 마지막 여정 ⓒ 진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