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회견 후 연대자들에게 손 흔드는 아사히글라스지회 조합원들기자회견 후 연대자들에게 아사히글라스지회 조합원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손엔 연대자들이 선물한 장미꽃이 들려있다. ⓒ 황상윤
노동조합이 뭘까. 노조가 도무지 뭐길래 사람들을 꿈틀거리게 할까.
<파치: 쓰다 버려지는 삶을 거부한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쓰다>를 읽으며 드는 의문이 많았다.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회장에게 직접 물으며 의문은 대부분 해소됐다. 차헌호 지회장이 해소해주지 못한 의문은 하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 노조가 뭔데! 뭔데 이렇게까지 하냐고!'라는 격렬한 의문이다.
내가 노조와 함께하며 활동한 지는 5년정도 됐다. 5년간 노동조합에 대해서 많이 배웠고,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여러 사업장에서 글 쓰고, 농성하고, 조합원들과 싸우고, 밤새 수다도 떨며 투쟁했다. 그런데 <파치>는 내게 '노조를 왜 하냐'는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질문을 하게 한다. 이제와서 책을 손에 든 채 '노조를 왜 하냐고!' 머리 쥐어뜯는 내 모습이 황당하다.
책엔 차헌호 지회장이 아사히글라스에서 노조를 만드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는 두 번의 노동조합 활동 후 국가의 보호 아래 갇힌다. 출소 후엔 또 노동조합을 하겠다고 지게차 학원을 다닌다. 학원에서 일부러 총무 직책을 맡아서, 일찍 나오고 늦게 들어가며 허드렛일을 한다. 원장의 눈에 들어 비교적 일이 쉽고 월급이 많은 곳에 빠르게 취직했다. 하지만 차헌호는 임금이 50만원이나 낮고, 일은 훨씬 어려운 아사히글라스로 일부러 이직한다.
이후 6년 동안 노조를 만들지 못하고 고군분투한다. 월급이 너무 적어서 저녁에 대리운전도 했다. 더운 날, 추운 날 콜 잡으려 길을 어슬렁거리다가 '노동조합 만들라고 이 짓을 해야 하나'하고 수백 번을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노조를 만들기 위해 시도한다. 책은 마치 CCTV처럼 '어마무시하게 성실한' 이 사람의 수년을 머릿속에 상영해준다.

▲'파치: 쓰다 버려지는 삶을 거부한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쓰다' 표지 ⓒ 이매진
여러 사업장에 '노조 만들려고'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오래 일했고, 엄청나게 성실했고,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애를 많이 썼다. 기륭전자의 김소연이 그랬고, 지엠의 조혜연이 그랬다. 그렇다고 또 항상 노조가 잘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당탕탕! 시끄럽기만 하다가 쫓겨나고 시간만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다시 시도하고, 다른 곳에서 또 시도한다. 불확실한 일에 자신을 통째로 건다.
심지어 대부분의 노조는 '의도가 있는 사람' 없이 만들어진다. 이건 또 뭔가! 무슨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이 힘든 걸 '의도'도 없으면서 왜 만든다는 건가. 만들었다가 해고되고, 간첩이네 뭐네 하는 이상한 소문 돌고, 욕먹고, 소송까지 걸리는데 왜 하나! '불만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폭발하는 것이 노동자의 당연한 이치'라는 어려운 책 속 언어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장의 감각이 있다.
그렇다면, 노조를 만드는 사람 말고, 가입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들어가는 걸까? 몇 달 전 아사히글라스 '짬장' 김태우 총무부장과 비슷한 맥락의 대화를 나눴다.
김태우 : "나는 노조 들어가면 잘릴 줄 알았다."
필자 : "네? 알면서도 가입했다고요?"
김태우 : "어."
필자 : "왜요?"
김태우 : "아, 화가 너무 나잖아."
기가 막힌다. 도대체 얼마나 화가 났길래 9년 2개월을 길바닥에서 싸우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걸까. 잘릴 줄 알면서도, 오래 투쟁하게 될 줄 알면서도 가입서에 이름을 적었을까. 노조한다고 상사한테 꿀밤 한 대라도 쥐어박게 되는 것도 아닌데. 해맑은 이영민이, 소심한 송동주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큰 오수일이 도대체 왜 그렇게 힘든 노동조합을 했을까. 노조가 생겨도 일 많아서 눈이 팽팽 돌고, 돈에 쪼들리고, 우리끼리 싸워서 골치 아픈 순간이 수백 번인데.

▲9년만에 첫 출근하는 아사히글라스지회 조합원들대법원 승소 후 9년만에 출근하는 아사히글라스지회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황상윤
<파치>는 나의 의문에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삶을 계속 머릿속에 상영해준다. 밑바닥 삶을 바꾸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함께 꿈틀거려 지진을 만들고 세상을 바꾼 모습을 보여준다. 독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속마음은 살짝만 엿볼 수 있다(이러한 측면에서 스릴러 장르라고 분류할 수도 있겠다).
<파치: 쓰다 버려지는 삶을 거부한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쓰다>는 불만이 쌓였지만 표출할 엄두를 못 내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기회가 왔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의 마음을 책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어쩌면 알 필요도 없다. 근데 읽는 내내 궁금하긴 엄청나게 궁금하다. 직접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단 걸 알면서도, 책 붙들고 알려달라고 난리 치는 도둑놈 심보가 힘껏 발휘됐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은 내 도둑놈 심보를 어떻게 생각할까. '훈아, 그건 네가 직접 해봐야 아는 거야. 직접 해봐'라는 선배 활동가들의 잔소리를 벌써 들은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