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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03 09:30최종 업데이트 25.11.03 09:30

취준 공포증에 시달렸다

취업 실패 후 침대에 갇힌, 상처받은 자아를 다시 세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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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루틴의 힘 방 밖으로 나와 햇빛을 보는 힘까지 붙었다
작은 루틴의 힘방 밖으로 나와 햇빛을 보는 힘까지 붙었다 ⓒ 박민진

조금만 달려도 머리카락부터 발 끝까지 땀으로 온몸이 다 젖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바람이 선선하다 못해 귀가 시릴 정도다. 가로등 불빛 아래 제법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완연한 가을 밤을 알린다. 나를 둘러싼 계절은 그렇게 속절없이 변해가는데, 내 안의 시간은 석 달 전 여름의 절망 속에 멈춰 있었다.

'취업이 쉽다'는 일본 취업 시장의 장밋빛 보도는 낯선 땅에 홀로 선 이방인에게는 환상에 불과했다. 일본 취업 성공이라는 메스컴의 타이틀 아래, 나는 그저 '외국인'이라는 하나의 장벽에 갇힌 채 무수히 거절당하는 실패자였다. 일본에서 6년간 일했던 경력이 나에게는 자랑스러운 스펙일 줄 알았으나, 현실은 그저 이 회사에 맞지 않는 이방인의 경력으로 철저히 무시당하는 꼬리표였다.

처음에는 깡으로 버텼다. 10번, 50번, 100번의 서류 탈락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회사의 손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거절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다음번엔 더 완벽하게 만들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횟수가 350군데에 이르자, 단단해질 거라 믿었던 내 안의 껍데기는 산산조각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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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을 당할수록 깡이 세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켰다. 핸드폰에 새로운 메일이 뜰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고, 메일을 열었을 땐 '이번에도 떨어졌니?'라는 자책이 먼저 나를 맞이했다. 나는 이 땅에서 누구보다 용감하고 액티브한 사람이라 믿었으나, 350번의 거절은 나를 침대에 갇힌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결국 나는 씻는 것, 밥 먹는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집에 쳐박힌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몸을 일으킬 힘도, 나를 돌볼 의지도 없었다.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는 다음 거절에 대비하는 무력감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침대 밖으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통장 잔고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지난 6월 이직을 결심하고 9월 30일 마지막 월급 22만엔이 들어온 뒤, 잔액은 단 한 번도 위로 올라가지 않고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나는 불법체류자 신세를 피하기 위해 쫒기듯 한국으로 귀국해야 할 운명이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도저히 침대 밖으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왜 나는 이 간단한 취업조차 해내지 못하는 걸까?'
'6년을 일했는데 왜 이 정도로 무시당해야 할까?'

하루종일 누워있는 나를 보며 더 한심해졌고, 그 한심함이 다시 나를 침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씻지 않은 채, 양치질도 못한 채 누워있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한 가지 말할 사실이 있다. 나는 이미 2년 전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얼마 전 진료 차 병원을 방문했을 때, 나는 내 삶을 되찾을 아이러니한 처방전을 발견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늘 간단한 설문조사가 있었다. 그 설문지에는 늘 이 질문이 있었다.

지난 한 달 간 생활 리듬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계신가요?

생활 리듬이라니. 밥을 먹고, 잘 씻고, 양치질하고, 제때 일어나 빨래하고, 친구를 만나는 등 건강했을 때 너무나 당연했던 그 사소한 루틴들 말이다. 나는 이 질문 앞에서 무너졌다. 나는 350번의 거절에만 집착한 나머지, 나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루틴을 모조리 부숴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취업에 실패한 것도 문제였지만, 나를 돌보는 일에 실패한 것이 이 병의 본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취업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일이었다. 351번째 회사에 서류를 넣기 전에, 351번째 면접을 준비하기 전에, 나는 먼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정돈해야 했다.

나를 침대 밖으로 끌어낸 내 안의 '말'

남들이 들으면 황당할 것이다. 양치질과 샤워가 뭐가 그리 힘들다고. 하지만 그 간단한 행위조차 나에게는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장벽이었다. 간단한 위생 관리조차 못해 누워있는 나를 볼 때마다 자책은 깊어졌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물티슈를 꺼내 얼굴을 닦고, 손가락에 치약을 묻혀 입 안을 닦는 것. 남들은 비위생적이라 할지 모르나, 나에게는 이 정도의 간단한 위생 관리만으로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대단한 일을 해낸 기분이 들었다. 씻지 않고 자책하던 날보다, 물티슈 한 장으로라도 나를 돌본 날에 기분이 훨씬 나았다.

모두가 완벽하게 살 수는 없다. 때로는 실패하고, 넘어지고, 기본적인 것조차 해내지 못하는 나약한 나도 충분히 가치가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줬다. '못하는 나도 괜찮아. 이 정도라도 해냈잖아.' 그 말이 나를 침대 밖으로 끌어냈다. 천천히, 정말 천천히 무너졌던 루틴을 세워나갔다. 키우는 반려견을 위해 남겨 놨던 에너지를 조금씩 나를 위한 루틴에 배분했고, 물티슈를 넘어 짧은 샤워를 해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내 안의 루틴을 재정비하기 시작했을 때, 세상도 나에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10월 중순 351번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토록 냉정했던 일본 취업 시장의 문이 드디어 열린 것이다. 서류가 통과되었고, 면접을 거쳐 지금은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다. 이 회사도 떨어지면 어쩌냐고? 물론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설령 이 회사가 나를 거절하더라도, 나는 더 이상 350번의 거절에 무너졌던 과거의 내가 아니라는 것을.

나를 혹사시키던 취준 공포증에서 벗어나, 이제 나만의 속도대로 달릴 준비가 되었다. 취업이라는 목표를 쫓느라 나 자신을 버렸던 지난날과는 달리, 이제는 내가 나를 돌보는 생활 리듬이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 최종 면접의 성공은 351번째 회사의 인정이 아니라, 351번의 거절 끝에 나 자신을 돌보기로 결정한 나의 승리가 아닐까. 멈춰 있던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완연한 가을밤, 이제 나는 내일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쉬었음청년#취준생#우울증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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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진 (mjpark3) 내방

일본에서 시바견과 함께 사는 30대입니다. 얼마전에 직장 때려치고 이직 준비하면서 글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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