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2016년 4월 21일 민변 변호사들의 공익인권변론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월간변론 편집팀의 '시선'은 민변 회원들에게 매월 발송되고 있는 '월간변론'에 회원들이 기고하는 글입니다. '시선'은 최근 판례와 주요 인권 현안에 대한 편집위원 및 회원들의 단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은 조인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가 썼습니다.

▲김미나 창원시의원 유가족 모욕행위 손해배상청구 공판기일 기자회견 (2025. 5. 14.)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1. 혐오와 조롱이 향한 곳 — 피해자였다
2022년 10월 29일, 10.29 이태원 참사는 159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여전히 남겨진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남겨져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은 그 비통함과 애통함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유가족이 마주해야 했던 것은, 진심어린 사과도, 애도도 아닌 혐오 그 자체였다. 국가가 지정한 애도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혐오의 말들이 온라인과 정치인의 입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창원시의원 김미나이다.
그는 참사 직후인 2022년 11~12월 자신의 SNS에 유가족을 향한 모욕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이는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 전체를 겨냥한 조롱이자 명예훼손적 혐오표현이었다. 그는 해시태그와 캡처 이미지로 확산을 유도했고, 그 언어는 곧바로 온라인과 오프라인(녹사평 분향소 앞 현수막·확성기 등)에서 반복됐다.
2. 형사사건 — "공직자의 혐오발언은 범죄"라 했지만, 처벌은 없었다
유가족들은 김미나 창원시의원을 모욕죄로 고소했고, 법원은 그 발언이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한 불법행위임을 인정했다. 법원은 "공직자의 지위에서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고 갈등을 조장한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며, 정치적 목적을 내세운 행위로 공공의 이익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법원은 명백히 유죄를 인정했지만, 결론은 징역 3개월의 선고유예였다.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으며, 다시는 유사한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는 이유였다. 결국 피고인은 실질적인 형사처벌을 면했다.
이 결정에 유가족들은 깊은 좌절을 표했다. 유가족들은 "피해자의 고통이 가벼운 죄로 재단되는 사회라면, 그것은 정의가 멈춘 사회"라고 절규했다. 김미나는 "유감을 표한다"고 했을 뿐, 피해자에게 구체적으로 사과하지 않았고, 자신의 행위가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시의회 본회의에서 사과한 날, 자신의 SNS에 "개인 SNS 글이 이렇게 파장이 클 일인가. 유가족도 아니면서 유가족인 척하는 사람들이 전화까지 하는 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네"라며 다시금 유가족을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를 "진정한 반성"으로 받아들였다.
이 사건은 공직자의 혐오표현이 여전히 면책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선고유예는 법률적으로는 유죄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사실상 면죄에 가깝다. 법은 혐오표현을 범죄로 인정했으나, 그 범죄가 낳은 상처의 깊이에 상응하는 제재는 부과하지 않았다. 해당 판결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개인적 일탈을 넘어, 우리 사법체계가 여전히 피해자의 존엄과 인권을 중심에 두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 - "법정에서, 혐오의 무게를 증명하다"
형사재판이 공직자의 혐오발언을 범죄로 인정했음에도 실질적인 책임을 부과하지 못한 채 끝났지만, 유가족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원고의 이름으로, 다시 법정으로 향했다. 유가족들에게 이번 소송은 단지 김미나라는 한 정치인의 잘못을 다투는 것이 아니었다. "재난참사 피해자를 향한 혐오적 언어가 더 이상 '정치적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확인해 달라는, 혐오로 인한 그 고통을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여달라는 간절한 애원이었다.
150명의 유가족들은 원고로서 법정에서 직접 자신의 고통을 진술하기도 하고, 그 고통을 글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 진술은 혐오의 정치언어가 어떻게 사람의 존엄을 파괴하는지를 증언하는 행위였다.
"제 여동생은 자기 아들을 바라보며, 매달 국제적십자협회에 후원금을 꼬박꼬박 보냈습니다. 세상에 가난한 아이들을 구해왔습니다. 이런 제 여동생을 제가 시체팔이 한다고요? 이런 엄마를 아들이 시체팔이 한다구요? 제 가슴에 제 조카의 가슴에 김미나가 막말로 칼로 찔렀습니다."
"보물보다 더 귀한 아이는 2022. 10. 29. 친구와 이태원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아직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남아있는 가족은 아직도 그해에 멈춰있는데...김미나 말에 의하면, 저는 어느 순간 시체팔이 엄마가 되어 있었고 우리 가족은 자식팔아 장사하는 가족이 되어 있었습니다. 왜 일면식도 없는 저런 사람 때문에 우리 귀한 아이가, 제가, 우리 가족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끔찍한 말을 들어야 하고 왜 저런 사람 때문에 우리가 트라우마를 겪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저희 가족은 지금도 승연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날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저런 공인이라는 사람이 앞장서서 사회적 재난참사를 지혜롭게 다루기는커녕 공감하지 못하고 입에 담지 못할 막말로 유가족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있으니 제가 떠나고 남아있는 제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무척 걱정이 됩니다. 지금이라도 그에 맞는 벌을 받지 않으면 이 같은 2차 가해는 또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것이며, 저는, 우리 가족은 2022년 10월에서 한 발자국도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살아남은 희생자의 친구는 아직도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근근이 약물에 의존하며 버티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직까지도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실정입니다. 자식을 잃고 일상이 무너져버린 참담함에 가족들은 매일매일을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김미나 의원의 발언을 언론을 통해서 전해 들었고, 마음을 추스릴 수도 없던 고통 속에서 2차 가해를 당했고, 말할 수 없는 참담함과 모욕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인은 정치적인 입지 때문에 그렇게 가볍게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하루아침에 영문도 알지 못한 채 자식을 잃어버린 저에게는 씻을 수 없는 고통으로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생전 처음 거리에 선 유가족들은 어렵게 목소리를 냈지만 이런 혐오의 발언들이 유가족을 고립시켰고, 유가족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나 이상민 전 행안부장관을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의 망언과 극우 유투브들의 2차 가해성 막말에, 사회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유가족들은 세상에 나와서 억울함을 호소하기가 심적으로 위축되었습니다. 공적이고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자극적인 말 한마디는 그 사회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이끌어 갑니다. 이런 참담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김미나 창원시의원의 망언은 그 자체가 혐오스러울 뿐 아니라, 유가족에게는 인간으로서는 감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신적 폭력이었습니다. 성난 민심에 떠밀려서 영혼 없고 진정성 없이 한 사과도 들어볼 가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버젓이 활동을 하고 다니는 모습들이, 2차가해성 망언을 주도하는 무리들에게 기폭제가 되어서 2차가해를 확산하는 파장를 낳고,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호소하며 울부짖는 거리에서의 삶이 위축되고, 가족을 잃은 슬픔을 자책하게 만들었습니다."
유가족들의 말은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거나 고통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적 발언의 자유'가 결코 타인의 존엄 위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법정에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재판부는 유가족의 진술을 통해 정치인의 언어가 가지는 '사회적 파급력'과 '지속되고 있는 고통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5년 9월 10일 선고한 1심 판결(2023가단5086085)에서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피고는 원고들에 대하여 평생 잊지 못할 모욕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원고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크나큰 정신적 고통을 야기하였다. 피고의 불법행위 당시 10.29이태원참사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로 부각되어 피고는 자신이 SNS상에서 작성한 게시글이 언론사를 통해 기사화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 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실제로 피고가 한 표현들은 다수의 언론 기사에 인용되어 보도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피고는 불법행위 당시 창원시의회 의원으로 재직 중이었으므로, 그 사회적 영향력과 화제성 측면에서 일반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이러한 점을 피고는 충분 히 인지할 수 있었다. 피고의 위와 같은 영향력으로 인하여 피고의 이 사건에서 한 불법행위가 10.29이태원참사에 대한 원고들의 진상규명이나 권리행사의 위축을 발생시켰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 판결은 우리 법이 재난참사 피해자 집단을 향한 혐오표현을 인격권 침해이자 불법행위로 명시한 사례로 남게 되었다. 법원은 피고의 발언이 개별 인물을 특정하지 않았더라도 '사회적참사 피해자 집단 전체'를 조롱하고 권리행사를 부정한 이상, 구성원 각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보았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가 결정되어 있는 이상 구체적인 유가족을 특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법원은 정치인의 발언을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두지 않았다. 공직자의 언어는 단순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중대성· 확장성을 가진 사회적 권위를 가진 행위이며 그 영향력만큼 법적 책임이 뒤따른다고 판단했다. 이는 헌법 제21조 제4항이 규정하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재난 피해자 보호의 맥락에서 재확인한 중요한 판례였다. 공인이 정치적 목적을 내세워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는 행위는 공적 토론의 일부가 아니라, 명백한 인권침해로 규정된 것이다.
더불어 법원은 재난 피해자의 심리적·사회적 취약성을 구체적으로 인정하였다. 재난 피해자는 단순히 상처 입은 개인이 아니라, 극도의 상실과 사회적 고립 속에서 그 명예와 인격이 지속적으로 위협 받는 사회적 약자라는 점을 명시했다. 따라서 그들의 인격권은 일반적인 수준보다 강화된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하며, 이 사건에서 그러한 보호의무를 법이 스스로 확인한 셈이다. 이는 재난 피해자를 헌법상 존엄의 주체로 명확히 위치 시킨 판단이었다.
법원은 혐오적 언어가 10.29이태원참사에 대한 원고들의 진상규명이나 권리행사의 위축을 발생시켰음을 명백하게 인정하며. 유가족이 겪었을,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그 고통에 공감했다.
4. 무엇이 '2차 가해'인가 — 언어만이 아니다, 책임 회피와 제도가 만든 폭력이다
"참사의 책임자들이 사과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그 자체가 2차 가해입니다."
한 유가족의 이 말은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 아니다. 법정에서, 거리에서, 언론 앞에서 반복된 유가족들의 절규이자 현실의 묘사다.
2차 가해는 모욕적인 표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말, 고통을 축소하는 태도, 제도의 무관심 속에서 구조적으로 만들어지는 폭력이다. 참사 직후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말했다.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은 "예년과 비교해서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던 것은 아니다",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거나 사회적 구조의 실패를 은폐하는 방식으로 발언했고, 그 결과 참사의 원인과 책임은 흐려졌다. 그들의 언어는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그 책임을 희생자에게 돌리고, 비난의 화살을 유가족에게 되돌리는 구조적 폭력의 언어였다.
정부가 진상규명을 회피하고, 참사가 잊혀지기만을 바랄 때, 유가족의 요구는 정당한 권리에서 "정치적 요구", "과도한 집착"으로 전도된다. 참사를 "예측 불가능한 사고"로 축소하고, "이 정도 인파는 통제 불가했다"고 말하는 순간, 법과 제도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잃고 다시 그들을 배제하는 장치로 바뀐다. 2차 가해는 개인의 악의로만 형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가, 고통에 침묵하는 제도가, 피해자의 언어를 불편해 하는 여론이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만 김미나와 같은 공직자가 혐오 발언을 버젓이 내뱉을 수 있다. 책임을 부정하는 사회는 혐오를 용인하고, 혐오는 또 다른 정치인의 입을 통해 반복된다. 김미나의 발언은 그 연쇄의 결과였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도 2024년 보고서에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제도적으로 침묵을 강요 당할 때, 혐오와 2차 가해는 사회 구조 안에 내재화 된다"고 지적했다.
그 피해의 현실은 유가족의 증언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망언 이후 혐오세력의 공격이 더 거세졌습니다. 거리에서 욕설을 듣고, 온라인에서 악플이 쏟아졌습니다. 김미나의 말이 불을 붙였습니다."
한 정치인의 언사에서 시작된 혐오는 곧바로 온·오프라인을 뒤덮었다. SNS의 조롱과 뉴스, 댓글의 냉소, 거리의 현수막, 혐오로 편집된 영상 속에서, 유가족의 삶은 매일매일이 무너져 내렸다.
결국, 2차 가해는 단순히 언어의 문제나 비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회피하고, 권한과 지위를 가진 자가 침묵과 부정을 통해 폭력을 재생산하는 구조의 문제이다. 2차 가해는 단순한 행위의 위법성을 넘어 '책임의 부재가 제도화된 상태', 곧 국가와 공직자의 무책임이 낳은 인권 침해의 결과이다. 또한, 피해자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그 모든 과정이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무엇이 2차 가해를 멈출 수 있는지 묻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형법상 처벌 강화, 징계 강화, 엄중한 손해배상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결국 본질은 '책임의 부재가 제도화된 상태',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재난참사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해결하는 출발점이다.
5. 결론 — 혐오를 넘어서
이번 민사판결은 정치인의 혐오표현에 대해 법이 명시적으로 인격권 침해의 책임을 물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형사재판이 "유죄"라는 표지를 세우고도 선고유예로 멈춘 자리에서, 민사법은 고통의 내용과 범위, 책임의 무게를 가시화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절반쯤 깨어 있다. 선고유예로 드러난 사법적 관대함은 혐오에 대한 사회의 책임 인식을 약화시켰고, 행정의 무감함은 그 혐오를 여전히 방치하고 있다. 정치인의 막말이 "의견"으로, 혐오가 "자유"로 포장될 때, 그 언어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무감한 일상 속에서 되풀이된다.
판결문은 이렇게 일깨운다.
"한마디 말이 사람을 이롭게 하는 가치는 천금과 같고, 한마디 말이 사람을 해롭게 하는 아픔은 칼에 베이는 것과 같다."
법원은 이 문장을 통해, 타인의 인격과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행위임을 명확히 했다. 판결은 법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책임의 경계를 세웠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경계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확장하고 실천하느냐의 문제다. 재난 이후의 정의는 처벌로 완결되지 않는다. 그 정의를 완성하는 것은 결국 혐오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우리 모두의 의지와 실천이다. 법이 그 시작을 열었다면, 사회는 이제 그 의지를 실현해나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