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23일과 24일 양일간 '2025 시민사회 현장지식 컨퍼런스'가 개최됐다. ⓒ 사단법인 시민
"현장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화두로 시민사회의 경험과 지식을 모으는 장이 열렸다. 사단법인 시민은 지난 10월 23일과 24일 이틀간 서울창업허브 공덕에서 '2025 시민사회 현장지식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현장'을 주제로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모여 다양한 실천을 공유하고 미래를 위한 연결을 모색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공공의제연구소 오름 ▲공익연구센터 블루닷 ▲노회찬재단 ▲더가능연구소 ▲대안정치공간 모색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 ▲소셜임팩트뉴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공방 사람 ▲연구자의집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등 다수의 단체들이 협력 단위로 참여했다.
현장을 묻다... '감히' 던진 질문, '광장·지역·사람'에서 답을 찾다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윤여일 교수가 '연구자와 현장 - 연루됨의 상상력'을 주제로 기조발표했다. ⓒ 사단법인 시민
행사 첫날은 '현장을 묻다'라는 큰 주제로 진행됐다. 사단법인 시민 임정근 이사장의 개회사에 이어,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윤여일 교수가 '연구자와 현장 - 연루됨의 상상력'을 주제로 기조발표를 했다.
윤 교수는 연구자가 현장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히'라는 부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논의를 시작했다. 그는 연구자가 쓰는 '한 줄의 문장'이 활동가들의 '어마어마한 노고와 고민'을 너무 쉽게 담아내는 것은 아닌지 질문했다. 또한 연구자는 활동가에 비해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있으며, 연구의 시간은 현장의 시간보다 늦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연구가 실질적으로 그 운동과 현장에 대체 어떤 기여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윤 교수는 활동가를 '굳이'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이들은 '어쩌지'라는 감정적 연루를 통해 문제에 개입하고, '어쩌면'이라는 희망으로 모색을 시작한다.
그는 연구자는 활동가가 해결하려는 '문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사회적 구조 역사적 의의와 관련된 '문제성'을 포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장이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동사적 의미도 갖는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연구자의 역할을 현장에 주름져 있는 함의(접힘)를 펼쳐서 다른 사람에게 읽힐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5 시민사회 현장지식 컨퍼런스' 첫날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 사단법인 시민
이어진 주제세션에서는 '현장은 어디인가?'에 대한 세 가지 핵심어 발표가 진행됐다.
첫 발제자로 나선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정보영 운영위원장은 '현장은 [광장]이다'를 주제로 2024년과 2025년에 걸쳐 광장에서 나타난 현상에 대한 연구물들을 검토했다. 정 위원장은 "마치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많은 연구와 기록, 토론회가 빠르게 결성됐다"고 설했다.
그는 활발한 텍스트 분석이 이뤄진 점을 주요 경향으로 꼽았다. 시민 발언 분석 결과 소수자 연대, 성평등, 평화와 안전 등 다양한 의제가 다뤄졌다. 이는 광장이 단일한 목표를 넘어 일상의 이야기들이 논의되는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응원봉, K팝 팬덤 문화 등 새로운 저항의 레퍼토리도 주목받았다. 정 위원장은 "광장 참여의 에너지를 어떻게 우리가 시민사회로 가져올 수 있을까"와 같은 향후 과제를 제시하며 발표를 마쳤다.
두 번째로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이태영 박사과정이 '현장은 [지역]이다'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지역'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두 가지 주요 범주를 제시했다. 하나는 '서울 대 비서울' 구도에서 불균등 발전의 대상으로 호명되는 '지방'으로서의 지역이다. 다른 하나는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와 대비되는 자율적 실천 공간으로서의 '로컬'이다.
그는 "이 두 가지 의미가 혼재되면서 '지역'이라는 단어가 논쟁을 방해하는 윤리의 갑옷처럼 작동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을 규범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서 사유하는 지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김우창 박사가 경주 월성 핵발전소 지역 연구 경험을 공유하며 '현장은 [사람]이다'를 논했다. 김 박사는 연구자가 현장에 대해 가진 고정관념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현장 주민들이 '탈핵'이 아닌 '이주'를 요구하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다수의 주민이 "원전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하는 현실을 전했다. 이는 한수원이 지역 사회에 막대한 지원금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와 관련 있다. 그는 싸우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싸우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주제발표 외에 참석자 간의 소통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첫날 저녁에는 '연결세션: 현장을 다시 묻다'가 진행됐다. 이 세션은 연구공방 사람 강내영 연구위원, 공공의제연구소 오름 오현순 소장, 디비디비딥 신권화정 PD가 모더레이터로 참여했다. 참석자들이 현장에 대한 각자의 고민을 나누는 시간으로 꾸려졌다.

▲첫날 저녁에 열린 '연결세션: 현장을 다시 묻다' 참여자들. ⓒ 사단법인 시민
"젊어진 현장 연구", 응모작 125편 중 10편의 '좋은 연구' 선정해 시상
'2025 현장지식x좋은연구 공모전' 시상식이 진행됐다. 올해 공모전에는 총 125건의 연구물이 접수됐고 최종 10편이 선정됐다. 공모전 심사위원들이 직접 시상을 했다.
심사 총평을 맡은 이영재 선정위원장(더가능연구소 대표)은 선정 기준으로 현장성(30%), 실천성(30%), 독창성(20%), 명확성(20%)을 삼았다고 밝혔다. 그는 "열띤 심사 과정을 거쳐 10편의 선정작을 추려놓고 보니까 인권, 노동, 참사, 장애, 빈곤, 소수자, 이주, 기후, 민주주의 등 굉장히 고른 분야에 걸쳐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현장 연구자의 세대가 한층 젊어졌다"며 "기존 연구의 관성에서 벗어나 현장을 잘 포착하는 과감한 방법론을 구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선정작은 다음과 같다.
| '2025 현장지식x좋은연구 공모전' 선정작 |
▶ 공익법 생태계 조성을 위한, 부산의 인권 현황과 법률지원 실태조사 이주언
▶ '밥하는 아줌마'(급식조리사)의 폐암 산재 인정과 대안을 찾아서 류지아, 김영정, 정진주
▶ 법정에 선 기후활동가들: 붕앙재판 여정기 강은빈, 박상준, 이은호, 장윤석, 정윤정, 정이어린
▶ 산재 유가족운동 연구 (2000-2023) 전주희, 정우준
▶ 시대가 묻고 광장이 답하다 : 청년들이 광장에 나온 이유, 여의도, 남태령, 광화문, 한강진 그 너머의 이야기 이재정, 김나율, 김재상, 김철규, 김홍민, 박지현, 윤정민, 이준형, 윤세정, 지은주, 권순욱, 권승은
▶ 이주농업 여성노동자의 노동권, 주거권 및 건강권 확보를 위한 모색방안 우춘희
▶ 재난 이후를 거닐기: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일상 속 회복 과정을 중심으로 김지오
▶ 정신장애인 가족을 위한 동료가족지원 참여경험에 관한 사례연구 한지연, 심경순
▶ 퀴어 청소년이 만드는 역동 : 대안학교에서 경험한 억압과 당사자 실천 유아름
▶ 홈리스 활동의 의미에 관한 재구성 : 아랫마을 홈리스 사례를 중심으로 박내현 |
올해는 현장 기반 연구 활동을 지속하는 기관을 조명하기 위해 특별상도 신설됐다. '기업과 인권네트워크'와 '마을학회 일소공도'가 특별상 수상 단체로 선정됐다.

▲'2025 현장지식x좋은연구 공모전' 수상자와 심사위원,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 사단법인 시민
수상자들은 소감을 통해 연구 과정의 고민과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산재 유가족운동 연구'의 정우준 연구자는 "유가족 분들의 노력과 헌신을 기록한 기록물에 가깝다"고 말했다. '부산의 인권 현황'을 연구한 이주언 변호사는 "연구 덕분에 부산에서 뿌리를 조금씩 내릴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광장 연구'의 이재정 연구자는 "현장 운동과 연구의 경계에서 많은 고민을 하는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현장을 잇다...'좋은 연구', 토론과 대화로 연결되다
컨퍼런스 둘째 날인 24일에는 '현장을 잇다'를 주제로, 일방적 발표가 아닌 참석자 간의 적극적인 소통과 토론 프로그램이 중심이 됐다.
오전 '좋은연구세션 - 현장을 함께 읽다'는 공모전 수상자들이 직접 연구 내용을 발표하고 참석자들과 토론하는 자리였다. 세션은 두 개의 테이블로 나뉘어 진행됐다.
'테이블1: 목격과 증언으로 만나는 현장'은 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 정수진 기획실장이 모더레이터를 맡았다. 이 자리에서는 '붕앙재판 여정기'(강은빈),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김지오), '홈리스 활동의 재구성'(박내현), '퀴어 청소년의 역동'(유아름), '시대가 묻고 광장이 답하다'(이재정) 등 5개 연구가 발표됐다.
'테이블2: 제도와 일상 속 권리로 보는 현장'은 소셜임팩트뉴스 정진영 대표가 진행했다. 여기서는 '급식조리사 폐암 산재'(류지아), '이주농업 여성노동자'(우춘희), '부산 인권 법률지원 실태조사'(이주언), '산재 유가족운동 연구'(전주희), '정신장애인 동료가족지원'(한지연) 등 5개 연구가 다뤄졌다.

▲'좋은연구세션 - 현장을 함께 읽다' 테이블1(왼쪽)과 테이블2(오른쪽)에서 연구자들이 연구 과정에서 느낀 소회를 참석자들과 나누고 있다. ⓒ 사단법인 시민
수상자들과 참석자들은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 연구 과정과 소회를 생생하게 나눴다.
'테이블1'에서는 '목격과 증언'을 주제로 연구자가 현장에서 마주한 순간들이 공유됐다. 박내현 활동가는 한글을 모르는 홈리스 당사자가 발언할 수 있도록 '만화'로 발언문을 만들어줬던 장면을 소개했다. 그는 자본 논리를 생각하면 비생산적인 활동이지만, 그 활동이 실제 제도를 바꾸는 과정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김지오 연구원은 자신을 '증언자'보다 '지식의 공동생산자'로 규정하며, 재난 참사 연구에서 증언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깊은 믿음을 때로는 뛰어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참석자들은 또한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제도가 퀴어 청소년 연구처럼 부모 동의를 받기 어려운 소수자 연구 현장에서는 오히려 장벽이 되는 현실, 연구자가 연구 대상을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깊은 토론을 나눴다.
'테이블2'에서는 '일상 속 권리와 제도의 충돌' 지점이 논의됐다. 사회건강연구소 류지아 소장은 급식조리사 사례를 들며, 제도는 있으나 "퇴직하면 하겠다"며 산재 신청을 미루는 현장의 한계를 지적했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전주희 연구원은 산재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단순 보상이 아닌 "자기 자식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하는 것"이라며, 이는 곧 '진상 규명'을 통한 제도 개선 요구라고 강조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 우춘희 박사수료자는 이주 노동자들이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혜택에서 배제되고 '가족 결합권'조차 부재한 현실을 전했다.
연구자의 정체성과 마음가짐에 대한 토론도 활발했다. 전주희 연구원은 현장과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의 중요성을, 우춘희 박사수료자는 효율성, 가성비를 따지지 않는 태도와 '실패한 현장 연구란 없다'는 마음가짐을 공유했다. 류지아 소장은 "현장을 바꿀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와 대항적 지식을 구축하는 것이 연구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오후 '대화세션: 변화를 만드는 현장지식'은 주제세션의 핵심어였던 광장, 지역, 사람을 주제로 참석자들이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가는 라운드 테이블로 진행됐다.
[광장] 테이블은 '광장을 연결하고 넓힌 여성 청년들'을 주제로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 안연정 기획자와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정보영 운영위원장이 모더레이터로 참여했다. [지역] 테이블은 '지방으로서, 규모의 관점에서, 대안으로서 지역'을 주제로 대안정치공간 모색 조준희, 김범일 공동대표가 논의를 이끌었다. [사람] 테이블은 '이해하기의 어려움과 중요함'을 주제로 연구공방 사람 강내영 연구위원과 김우창 박사가 모더레이터로 나섰다. 라운드 테이블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대화세션: 변화를 만드는 현장지식' 라운드 테이블 진행 장면. (왼쪽부터) [광장], [지역], [사람] 테이블.](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5/1031/IE003541966_STD.jpg)
▲'대화세션: 변화를 만드는 현장지식' 라운드 테이블 진행 장면. (왼쪽부터) [광장], [지역], [사람] 테이블. ⓒ 사단법인 시민
"100명의 현장 만났다"...연결의 다짐 속 마무리
모든 순서를 마치고 진행 클로징 세션에서는 시민사회 현장지식 컨퍼런스 김소연 기획위원장의 진행으로 이틀간의 여정을 돌아보는 회고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소감을 나눴다.
한 참석자는 "이런 행사를 오면 보통은 조금 듣다가 떠나곤 하는데 어제는 끝까지 안 움직이고 들었다. 그만큼 내용들이 굉장히 인사이트가 있었고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다른 참석자는 "연구 과제를 발표하고 질문하고 학습하는 과정이 굉장히 좋았다"고 말했다. "각각의 연구가 연결되면서 벌어지는 시너지를 보는 것이 기뻤다"는 소감도 이어졌다.
현장의 의미에 대한 소회도 나왔다. 한 참석자는 "현장이 어디인가를 단어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100명을 만나면 100명의 현장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뜻깊었다"고 밝혔다. "인력이 적은 사단법인 시민에서 이렇게 큰 컨퍼런스를 했다는 게 기적"이라며 주최 측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참석자들은 내년 행사에 대한 강한 기대를 드러냈다. 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 정수진 기획실장은 "돌아가서 지역의 연구자들한테 열심히 소문 내고, 내년에 같이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최한 사단법인 시민의 김유리 사무처장은 "어제 첫날 뒤풀이에서 이미 내년 행사 이야기를 했다"며 "부족한 점을 보완해 더 나은 자리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이틀간의 밀도 높은 논의와 연결의 경험에 감사를 표하며 내년의 만남을 기약했다.

▲2025 시민사회 현장지식 컨퍼런스 참가자들은 서로를 응원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 사단법인 시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셜임팩트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