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 물류센터의 모습 ⓒ 쿠팡
10월 28일 <한국경제>는 '[단독] "쿠팡 새벽배송 없어지면 어쩌나"... 2000만 소비자 볼모 잡혔다'란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 요지는 쿠팡의 새벽 배송이 없어지면 15조 원 규모의 새벽 배송 시장이 사라지고, 2000만 소비자의 삶의 질이 하락하며, 농가와 소상공인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가게 돼, 새벽 배송은 유지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쿠팡'이라는 이름이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은 지난 2010년 무렵이다. 당시 쿠팡과 티몬 그리고 위메프가 소셜커머스 간판을 달고, 공동구매를 통한 가격 경쟁력과 무한 할인을 무기로 시장을 잠식해 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소셜 커머스 업체 간 '제 살 깎아먹기식' 무한 가격 경쟁으로 인해 급속한 매출 성장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영업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쿠팡이 2014년 내놓은 해법이 '로켓 배송'이었다. 이후 쿠팡은 새벽 배송, 익일 배송, 365일 배송을 표방하는 로켓 배송을 기치로 내걸고, 유통시장 저변부터 시장을 장악해 들어갔다.
쿠팡은 2021년 뉴욕증시에 상장하기 전까지 약 40억 달러(5조 7140억 원, 누적 금액)가 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 유치했다. 당시만 해도 쿠팡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 누적 적자로 곧 망할 것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렸지만, 2023년 창사 13년 만에 첫 흑자를 달성했다.
2024년에는 연간 매출 302억 6800만달러(한화 43조 2348억 원), 영업이익 4억 3600만달러(6277억 8240만 원)을 기록했다. 2025년 2분기 매출은 84억1000만달러(한화 12조 111억 6200만 원)로, 전년 동기(73억2300만달러, 한화 10조 4623억 원) 대비 14.8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제 쿠팡은 고용 인원만 6만5000명이 넘는 초거대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성장의 그림자, 노동 환경 문제
그러나 한 기업의 초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2020년 이후 매년 삭감되는 배달 수수료 단가(임금), 항시적 고용 불안을 야기하는 클렌징 제도(배송 구역 회수, 쿠팡은 클렌징 제도가 논란이되자 지난 2월 폐지했다-편집자 말), 그리고 원청 사용자성을 피하면서도 사실상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AI 알고리즘 활용까지, 사람을 착즙기처럼 쥐어짜는 가혹한 노동 착취 시스템이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눈감아서는 안된다.
현 정부 들어서서 각 분야에서의 사회적 대화가 본격화하고 있는데, 택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0월 22일을 기점으로 2021년 이후 4년여만에 '택배 노동자 과로 방지를 위한 사회적 대화'가 재개되었다. 그중 화두는 단연 '새벽 배송'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노조는 지난 22일 사회적 대화 자리에서 '0시부터 5시까지 심야 시간 배송을 금지하고, 현재 수준의 물량은 오전 5시 출근, 오후 3시 출근조로 원활한 배송이 가능하다'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과로에 따른 산재가 인정된 2020년 10월의 고 장덕준씨와 2024년 5월 고 정슬기씨를 포함해 2020년부터 2025년까지 20여 명의 쿠팡 노동자가 업무와 관련된 이유로 숨졌고, 이 가운데 16명은 과로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된다. 이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운영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경종을 울리기 위한 입장 표명이었다.
인간이 개처럼 뛰어다녀야만 유지 가능한 물류 시스템을 두고 '정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숙련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고, 그림자 노동으로 치환하는 지금의 산업 생태계가 정상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소비자와 노동자는 죄가 없다
이번 사회적 대화는 정부 여당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적 대화의 의미와 근본 취지는 다양하게 얽힌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 사회 통합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경제력, 국방력 등에 있어서 G7에 비견되는 선진국이다. K-컬처는 전 세계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보통 선진국의 산업 정책은 사회적 비용에 대한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것을 주요 의제로 삼고 있다.
사회적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가는 결국 '누구에게 이윤이 돌아가는가'의 문제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책임질 것인지, 이윤을 얻는 당사자 기업이 책임질 것인지, 전 사회 구성원이 십시일반의 해법을 모색할 것인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사회적 대화의 도입 취지일 것이다.
매년 수수료 단가(임금)가 삭감되어, 더 많이 뛰고 더 땀을 흘려야만 생계 유지가 가능한 쿠팡 택배 노동자들과 단지 로켓 배송이 있어 주문했을 뿐인 선량한 2000만 소비자들도 작금의 새벽 배송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우리는 누구나 가능하기만 하다면 건강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원한다. 고로 이에 동의하는 당신은 무죄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주노총 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을 맡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