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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첫 주 월요일 오전 7시. 라이프플러스팀 에디터가 힐링 가득한 글로 당신의 아침을 고속 충전합니다.

 11월이 왔습니다.
11월이 왔습니다. ⓒ AI생성이미지

부쩍 추워진 날씨, 지하철 안 출근길 옷차림도 다들 조금씩 두터워졌습니다.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 입동도 나흘 앞으로 바짝 다가왔네요. 깊어질 대로 깊어진 계절, '올해가 다 가고 있네' 하는 스산한 생각이 스쳐갑니다. '나 지금까지 뭐 했지' 돌아보다가 맥이 탁 풀리기도 합니다.

이맘때 농촌에선 막바지 '가을걷이'가 한창이라고 합니다. 요즈음 사는이야기 기사를 만날 때 이 '가을걷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곤 하는데요. 특정 분야 전문가의 지식 전수부터 엄마손 레시피는 물론, 나를 돌보는 방법까지.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꿀팁'들을 사는이야기 속에서 만날 때면, 곡식 낱알 하나하나를 줍는 기분마저 듭니다.

'와 이건 몰랐네' 싶은 글을 만날 때면 상장을 탄 아이처럼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어 안달도 납니다. 추수의 계절답게, 사는이야기에도 '삶 속의 지혜'들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머리보다 가슴을 먼저 데우는 이야기들입니다. 11월을 여는 몸과 마음이 따숩길 바라며 제가 눈여겨 본 '가을걷이'를 나눠볼까 합니다.

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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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이라는 말을 제목에 꼭 넣고 싶은 글들이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속이 따뜻한 음식들을 담은 이야기를 볼 때 특히 그렇습니다. 남편 분이 동창 분께 받아 오신 가을걷이 재료 토란으로 진하게 끓인 뽀얀 국물. 경상도 출신인 제게는 다소 낯선 음식이라 레시피까지 꼼꼼히 챙겨본 글입니다.

♥ 관련 기사 : 뜨끈한 한 그릇에 감기 뚝, 가을 보양식 끓이는 법

완성된 토란국 요즘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따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이럴 때 가을 보양식으로 좋은 토란국을 끓여서 맛있게 먹었다.
완성된 토란국요즘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따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이럴 때 가을 보양식으로 좋은 토란국을 끓여서 맛있게 먹었다. ⓒ 유영숙

심지어 기사 속에는 직접 손글씨로 한땀한땀 적은 요리법 노트까지 들어 있습니다. "간은 소고기 볶을 때 국간장 한 숟가락을 넣어서 볶았으므로 소금으로만 간을 하고 중간에 거품도 걷어낸다" 같은 세세한 안내를 따라 읽다보면, 어느새 함께 부엌에 있는 기분이 듭니다. 기사 속 "건강식 토란국 드시며 가을도 느끼고 건강도 챙기시길 바란다"는 당부에는 "네"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이국 땅에서 맛 본 낯선 맛 또한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추석 명절 모든 의무에서 해방, '나만을 위한 떠남'을 기획하신 칠순의 여행자. "새벽 갠지스 강가에서 일회용 토기컵에 마셨던 따뜻한 밀크티 한 잔"이라는 대목에 '토기컵'을 검색해 봤습니다. 정말 인도 일부 지방에선 플라스틱이나 종이컵 대신 흙으로 빚은 친환경 잔에 달콤한 밀크티를 내주고 있더군요. 이 계절, 찬바람 스며올 때 한 잔 딱 마셔보고픈 맛입니다.

♥ 관련 기사 : 절대 잊을 수 없는 맛, 갠지스강에서 내가 마신 것

청각

곡선이 아름다운 맹지 논 자연스러운 곡선 살아 있는 맹지 논. 임실천 옆 병암들. 경지 정리 마다한 옛 어른들의 지혜가 놀랍다.
곡선이 아름다운 맹지 논자연스러운 곡선 살아 있는 맹지 논. 임실천 옆 병암들. 경지 정리 마다한 옛 어른들의 지혜가 놀랍다. ⓒ 이소영

잘 익은 벼가 출렁이는 들판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넘실넘실 황금색 파도가 밀려 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이 글 속에 소개된 풍경은 익히 우리가 아는 네모 반듯한 논 풍경이 아닙니다. 경지 정리를 하는 대신, 지형 그대로 자연스럽게 곡선을 살린 황금 들녘입니다. 황금 파도가 더 생생히 너울치는 것 같지 않나요?

♥ 관련 기사 : 굽이굽이 아름다운 황금 곡선, 이런 논 본 적 있나요?

기사 속에서 찾아 들어 봄직한 소리가 있습니다. 임실 옛길을 걸으시다 길 한가운데 핀 가을 국화를 촬영한 영상입니다. "강물 소리와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소리가 강바람 소리에 섞여서 들린다"는 설명을 읽고 잠시 눈을 감으면, 섬진강 변 옆 그 길 위에 차분히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임실 섬진강 둔치 산국화 섬진강(오원천), 전라선 철도와 17번 국도가 만나는 옛길 통영별로에 핀 가을 산국화. 강물 소리와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소리가 강바람 소리에 섞여서 들린다. 이완우

후각

"아, 가을 냄새다."

♥ 관련 기사 : 진드기와 '강아지 패닉' 없는 반려견 산책, 꿀팁 드립니다

기사의 첫 문장부터 공감하긴 오랜만이었습니다. 지글지글한 여름이 지나 '가을 냄새'가 코끝에 스치면 이상한 안도감이 들곤 하지요. 그런데 사람만 이 계절이 반가운 게 아니랍니다. 인간을 능가한 후각을 가진 개들은 어느 계절보다 가을에서 "다양한 세상을 보고 있다"고 하네요. 반려견 훈련사님이 쓰신 '가을 산책 꿀팁'은 가을에 푹 절인 만추 한복판에 특히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시각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힘껏 다양한 풍경과 맛, 향을 맛보여주는 가을. 이 고마운 계절 앞에, 기사 속에서 새로 배운 낱말을 대입해 보고 싶었습니다.

♥ 관련 기사 : 난생 처음 들은 단어에 반한 날, 어르신은 다 아시네요

진설(陳設)하다. 저도 '들어본 적 없는 참 예쁜 말'이었습니다. 글에 따르면 "펼쳐 차려 베풀다"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국어사전에서는 "제사나 잔치 때, 음식을 법식에 따라 상 위에 차려 놓음"이라고 설명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차리는 마음. 먹을거리가 영글고 오색찬란 단풍이 드는 가을과 정말 참 어울리는 말 같습니다. 그런데 이 낱말을 곱씹을수록 나는 '진설하듯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은 물론이고, 나를 위해서도요.

♥ 관련 기사 : 뜨끈한 '혼삼계탕', 오롯이 나를 위한 한 그릇

어떤 것에도 쫓기지 않고 천천히, 정성을 다해 나를 돌보는 일. 그 마음을 혼자 먹는 삼계탕 이야기에서 배웁니다.

"야들야들한 닭다리를 젓가락으로 들어 깨소금을 살짝 찍었다. 옹기그릇 속에서 쉽게 식지 않는 들깨죽과 찹쌀을 소담하게 한 숟가락 떠 후후 여러 번 불고 입안에 넣었다. 적당히 익은 큼지막한 깍두기를 오독오독 씹었다. 이번에는 하얀 닭가슴살을 한 젓가락 크게 뜯어 한입에 넣었다. 서두르지 않고, 오로지 맛있게 먹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식사였다."

국물 한 술, 건더기 한 점을 정성껏 먹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식사 장면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매일 찾아오는 흔한 식사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11월 달력을 마주하며 '이때까지 뭐하고 살았지?' 싶을 때, 내 손에 쥔 가을걷이가 헐거워 보일 때 이런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7년 전 작고한 일본 배우 키키키린이 생전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공개 시사회에서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답한 말이 떠오릅니다.

"행복이란 늘 존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는 것.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나 시시해 보이는 인생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 거기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 책 <키키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 중에서

여러분, 오늘 점심도 든든하게 잘 챙겨 드시길 바랍니다(전 바지락칼국수를 정성껏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행복을 발견"하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그럼 점점 매서운 날씨 건강 잘 챙기시고, 크리스마스 분위기 가득한 12월에 뵙겠습니다!

 뜨끈한 바지락 칼국수.
뜨끈한 바지락 칼국수. ⓒ 조혜지

#11월#만추#입동#가을걷이#한해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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