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스에서 인구 52만 명의 섬나라가 화제가 됐다. 아프리카 대륙 서쪽 끝에 위치해 종종 지도상에서 삭제되기도 하는 비운의 나라 카보베르데(Cabo Verde)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 됐기 때문이다. 축구 역사엔 본선 진출권을 따낸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로 기록되게 됐다.
지난 28일 개막한 제8회 서울동물영화제 개막작이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네덜란드 출신 부부 영화인 페트르 롬, 코리너 판 에허라트가 공동 제작과 연출을 맡은 <코리올리 효과>는 전 세계는 물론이고 한국에도 시급한 화두인 생태계의 인격권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다큐멘터리다. 개막식 직후인 28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두 감독을 만났다.
영화엔 카보베르데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거북이, 땅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 등 각종 생물들이 등장한다. 허리케인의 발원지로도 알려진 곳 답게 매번 강한 바람이 끊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사람은 해양 쓰레기에 다친 거북이를 돌보고 바다로 돌려보내려 하며, 어떤 이는 바람을 악기 삼아 음악을 연주하며 살아간다.
그렇다고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거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물, 육지, 공중의 생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사람들의 그것과 함께 비슷한 분량으로 담아내 균등한 무게감을 줬다. 영화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로서의 인간과 비인간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영화'로 소개하고 있었다.
"동물권 지지하는 영화제, 큰 영감받았다"

▲제8회 서울동물영화제 개막작인 다큐멘터리 <코리올리 효과>로 관객들과 만나는 페트르 롬(오른쪽), 코리너 판 에허라트 감독. ⓒ 서울동물영화제
전작 <미얀마 다이어리>(2022)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됐고, 10년 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을 이미 찾았을 정도로 두 사람의 업력은 꾸준했다. 두 사람의 초기 작품은 인권 문제를 주로 다뤘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생태계의 인격권을 주창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이 등장하는 <나는 강이다>(2024)를 기점으로 두 사람은 인간 곁에 존재해온 생태계를 주인공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코리올리 효과>가 그 정점에 있어 보였다. 인터뷰에 앞서 진행된 개막식에서 페트르 롬과 코리너 판 에허라트는 "동물권을 지지하는 영화제라니 굉장히 흥미롭고 큰 영감을 받았다"며 서울동물영화제에 강한 지지를 표했다.
영화 제목인 '코리올리 효과'는 한국말로 전향력, 즉 지구의 자전으로 움직이는 특정 물체의 방향을 한쪽으로 쏠리게 하는 가상의 힘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일상에선 거의 느껴지진 않지만, 대기 순환, 바람, 해류 등 자연 현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 힘은 영화에선 인간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자연과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은유한다. 이 아이디어를 바로 카보베르데에서 발견한 것. 시작은 7년 전 휴가 차 해당 국가를 방문하면서였다고 한다.
"창작자 입장에선 폭풍의 진원지라는 장소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휴식을 위해 방문했던 곳이었는데 그 지역의 문화, 특히 음악에 심취하게 됐다. 동시에 이곳 문화에서 중요한 요소인 고향과 집이라는 개념에 집중해봤다. 카보베르데를 떠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굉장히 그리워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고향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하면서 취약한지, 동시에 세계적 이야기로 확장해서 우리의 고향이자 집인 지구, 이 세계가 얼마나 많은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페트르 롬)
"당시 묵었던 숙소의 주인 제안에 따라 한 해변을 거닐었고, 화산지 근처에서 한 기후 관측소를 발견했다. 마치 영화에 나올법한 장소라 생각하면서 코리올리 효과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됐다. 폭풍의 진원지니까 사하라 사막에서 날려오는 모래라든지, 다양한 것들이 관측되는데 여기에 이야기를 더해서 뭔가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코리너 판 에허라트)

▲영화 <코리올리 효과>의 한 장면. ⓒ 서울동물영화제
영화에 담긴 음악이 그래서 중요했다고 한다. 현지 음악가 바스코 마틴스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며 일종의 영성이 더해지게 됐다. 두 사람은 제작 초기부터 바스코 마틴스를 비롯해 현지의 생물들과 사람들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스태프를 꾸리는 데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쫓는 게 아니라 자연이 움직이는 대로,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인간들을 담아내야 했기에 수중 촬영과 드론 촬영 또한 마치 호흡의 속도처럼 느려야 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마치 지구의 자전 속도가 이 정도 아닐까 싶을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 있었다.
페트르 롬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어디든 닿을 수 있고, 무엇이든 볼 수 있다는 감각을 주고 싶었다"며 "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누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호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많은 존재, 생명체들을 연결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 제작 때 동시에 다른 영화도 함께 만들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나는 강이다>인데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인격권을 인정받은 강이 주인공인 영화다. 마오리족이 강을 자신의 조상이자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고 소통하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코리올리 효과> 또한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난 영화여야 했다. 운 좋게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카보베르데에 9개월간 머물게 됐는데,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자연을 들여다보면서 우리에게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필 수 있었다." (페트르 롬)
음악을 연주하기 전 바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들판 한가운데서 기타의 울림통에 귀를 대는 바스코 마틴스 음악 감독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신성해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에 직접 출연한 바스코 마틴스는 '우리는 이기적인가, 그리고 우린 무지한가'라며 자신의 음악을 연주한다.
"이 일을 하며 우리가 배운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마오리족 언어인 '카우파파'(kaupapa)였다. 내면에 존재하는 일종의 도덕적 잣대를 뜻한다. 어떤 행동을 취할 때, 삶을 살아갈 때 내 안에 있는 도덕적 잣대와 조응해야 한다. 마오리족 사람들, 그리고 바스코 마틴스 또한 인간은 이 지구에 잠시 머무는 존재고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의 중간에서 자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싶어하고, 자연을 소유하려 하잖나. 그럴수록 우리 내면의 카우파파에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리너 판 에허라트)
탈인간, 그리고 자연권
두 사람은 자연의 권리, 인격권 개념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시급한 문제이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법적 운동임을 강조했다. 코리너 판 에허라트는 "강뿐만 아니라 숲과 산 등 더 많은 자연 존재들이 인격체로 인정받는 추세기에 이 영화 또한 그런 충격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혹시 이 개념이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나"라며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30일 저녁 6시 30분엔 두 사람의 마스터클래스도 예정돼 있다. 영화 상영 후 '탈인간중심적 영화제작(non-human-centric filmmaking)' 방법론이라는 주제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결코 효율 중심이 돼서는 안된다며 두 사람은 그물에 걸린 새끼 거북이들을 얼마나 오래 촬영했는지를 강조했다.

▲영화 <코리올리 효과>의 한 장면. ⓒ 서울동물영화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선 늘 예상치 못한 순간과 어려움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영화의 많은 장면이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질 수 있었다. 우리가 어떤 촬영을 이어갈까 확신이 안 섰을 때 섬에 가서 길을 잃고 헤매는 거북이를 발견했고, 운 좋게도 그물을 벗어나려는 그들을 담을 수 있었다. 항공샷도 사실 요즘 드론으로 촬영한 결과물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우린 많은 시간을 들여 마치 지구가 우릴 내려다보는 느낌을 구현하려 했다." (코리너 판 에허라트)
"그 거북이 장면은 굉장히 긴 시간을 들여 촬영한 결과물이다. 물론 머릿속으로 어떤 장면 등을 상상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경우 자연이 풀어놓는 대로 쫓아가야 한다. 거북이를 두고 우린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았다. 사실 굉장히 시간이 걸리고 많은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이지만 그걸 통해 비인간들만의 기승전결이 있는 장면을 구현할 수가 있었다." (페트르 롬)
끝으로 두 감독에게 다큐멘터리스트의 역할론을 물었다. 그 지난한 작업을 하는 이유와 더불어서 말이다. 거대한 질문이라며 잠시 생각하던 두 사람에게서 진지한 답변이 돌아왔다.
"영화로 굉장히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다. 전 세계 미디어 환경이 변하고 있는 중에 이런 동물영화제처럼 미시적 성향,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행사, 그런 플랫폼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도 영화를 만들 때마다 새로운 주제, 새로운 모습을 담으려 노력하는데 이를 통해 관객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많은 사람들이 이 부정적 환경에서 긍정적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추동력을 주고 싶다." (코리너 판 에허라트)
"고무적인 일이 있다. 곧 브라질에서 열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나는 강이다>를 선보이게 됐거든(웃음). 상영만 하는 게 아니라 정책 입안자들과 토론도 할 예정이다. 이렇듯 우린 영화를 통해 굉장히 넓은 범위로 활동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예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가치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런 이유로 지난 20년간 인권 문제를 다루는 영화를 해왔고, 현재는 생태계 위기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페트르 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