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대입 수시 면접 시험이 모여 있는 입시철이기도 하다. 나는 매년 대여섯 명을 지도해 왔다. 보통 면접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예상 질문을 뽑아 예상 답안을 준비하고 실제 상황처럼 두세 차례 연습하며 피드백을 주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학생을 만나 대화하면서 성향을 파악하거나 속마음을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사람 한 명을 알아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알고 지나가는 수많은 학생들과 달리 19년 인생을 들여다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올해는 조금 특별한 '사람'을 도와주게 되었다. 가톨릭대 신학과를 지원한 신부님 지망생 요한(세례명)이다.
신학과를 향한 응답
"왜 신학과를 지원하게 됐니?"
어느 대학, 어느 학과든 빠지지 않는 필수 질문이지만 평소보다 진지한 마음으로 물었다.
"하느님의 응답을 들었습니다."
나는 종교가 없기 때문일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장면으로 설명해 달라고 했다.
요한은 어렸을 때부터 '하느님을 위해 쓰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늘 기도해 왔단다. 하지만 막상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되자 자신이 잘 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되어 '자신이 성직자가 되도 될지' 묻는 기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느님의 음성이 들렸다.
'네가 계속 원한 것을 왜 나에게 묻느냐.'
여전히 내 경험 밖의 일이었지만, 앞의 대답보다는 훨씬 납득이 되었다. 자기가 계속 바라던 일이라 하더라도 정작 눈앞에 닥치면 두려움과 불안감이 밀려온다. 그럴 때 용기와 결단은 결국 나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데 요한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듣게 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 순간 기분은 어땠을까, 궁금한 걸 참을 수가 없어서 계속 질문했다.
"소름이 돋았어요."
다소 진부한 표현이기도 하고, 면접 자리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단어라 다른 어휘로 표현해 보라고 조언했지만, 요한의 표정을 보니 거짓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평생이 될 수 있는 자신의 직업, 삶의 큰 책임을 결정하는 순간에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19살은 많지 않다. 진지했던 얼굴에 살짝 웃음기가 도는 모습을 보니 '충만하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작은 경험이 만든 성직자성
"너의 어떤 점이 성직자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니?"
"식물을 기를 때 세심하게 관찰하고 돌보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요한은 진로 희망으로 원예학자를 적었다. 어릴 때부터 식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했으며, 관심이 점점 커져 지금도 많은 식물을 직접 가꾸는 '식집사'다. 나중에는 원예심리치료사 자격증을 따서 성당 안팎의 사람들과 교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 외에도 성당에서 어린 친구들을 지도해 왔던 경험, 밴드부를 이끌며 사람들을 다독였던 경험을 차례로 말했다.
"너 밴드부였구나!"
조용하고 차분해서 목소리를 더 키우라고 조언했는데, 알고 보니 요한은 우리 학교 밴드부의 드럼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출장이 있어서 여름 방학 공연에 가 보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면접과 큰 상관도 없이 우리는 밴드부 활동에 대해 잡담을 나누었다. 꽃과 나무를 가꾸는 신부님도 멋지지만, 드럼 치는 신부님을 상상하니 뭔가 새롭고 재밌어서 절로 웃음이 났다.
가톨릭대 신학과는 아무나 지원할 수 없다. 지역 교구에서 지원 초기 단계부터 관리를 하며, 마치 예비 신학대학처럼 운영하면서 신앙과 소양을 훈련시킨다. 이후 1박 2일 동안 다양한 선발 과정을 거치지만, 적합한 사람이 없으면 모두 불합격처리할 수도 있다. 요한도 매주 일요일마다 신부님과 가톨릭대 신학과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저는 수능을 안 봐요. 이번에 떨어지면 내년에 다시 도전할 겁니다."
요한은 다른 대학에 원서를 쓰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수능 시험 응시 원서도 안 냈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시험이라도 보지 그러냐고 했지만, 어차피 하나의 길만 남겨두는 게 맞다는 것이다.
퇴로도 우회로도 없는 19살이라니, 이 믿음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 무언가를 의심하지 않고 그 길을 따르고자 한 게 언제였던가. 너무 오래 되어 잊은 건지, 나에게 그런 적이 없었던 건지. 요한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커졌다.
불안과 고민 속의 확신
"너의 단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해 왔니?"
"고민이 많아요. 걱정과 불안이 많은 성격입니다."
진로를 정할 때도 그랬지만, 마음이 힘들 때도 많다고 했다. 자신을 믿기 힘들 때일수록 하느님을 믿으려고 노력한단다. 나는 오히려 조금 안심이 되었다. 확신에 차서 큰 소리로 포부를 밝히는 모습이 아니라서 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학과에 입학하고도 그 후 성직자가 되기까지도, 아마 요한은 계속 흔들리지 않을까.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자신을 찾아가고 하느님을 찾아가는 신부님이 되겠지. 혹시 그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겨 신부님이 되지 않더라도 길고 깊은 고민과 돌아봄의 결과일 테지.
고백하자면 세속적이고 상식적인 어른이자 교사로서 요한을 의심하고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몇 번의 대화였지만 그 노파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요즘 요한 덕분에 <가톨릭평화신문>을 자주 읽게 되었다. 프란치스코 전직 교황과 레오14세 현직 교황의 말을 전하는 내용이 많은데 주된 주제는 사랑과 평화였다. 무기를 버리는 용기, 기후 위기를 구하는 세심함, 난민에 대한 환대, 사람됨을 놓치 않고 미래 사회를 맞이하는 자세 등 좋은 내용이 많았다. 물론 낙태 문제를 비롯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도 있다. 내가 모를 가톨릭 내외부의 문제점이 존재하리라 예상도 된다.
그래도 나는 언젠가 천주교에 귀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리아라는 세례명 엄마와 안나라는 세례명 외할머니를 떠나 보내면서 지녔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요한 신부님(아직 아니지만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다.)을 만나면서 다시 떠올랐다.
"(가톨릭)교회 안에 있는 분과 밖에 있는 분들을 인도해 주고 싶어요."
요한의 바람이다. 다음에 만나면 말해줘야겠다. 예비이긴 하지만 한 명은 이미 성공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