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1시 59분, 이태원역 1번 출구로 향했다. 공기가 유난히 더 차가웠다. 3년 전 이맘때와는 결이 달랐지만, 하늘만은 말간 유리처럼 맑았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지만, 도로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고 지점 앞에서 조용히 치를 줄 알았던 추모는, 도로 위 커다란 무대와 함께 시작되고 있었다. 앞줄은 보라색 리본을 맞춘 유가족과 관계자들, 중간 이후로는 시민들이 빽빽하게 앉았다. 나는 그 중간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
사회자는 이렇게 운을 뗐다. "1·2주기는 개별적으로 진행됐지만, 3주기는 정부 지원으로 공식 추모가 됐습니다. 새 정부가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외국인 유가족들을 정성껏 모셨고, 시대가 달라졌다는 지표로 보입니다." 말끝에, 사람들 사이로 숨 고르는 듯한 정적이 흘렀다.
외국인 유가족들은 한국 유가족의 배려로 맨 앞에 앉았다. 외국인 희생자 26명 중 21명의 유가족 46명이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이란, 러시아, 중국, 일본, 노르웨이, 미국, 스리랑카, 오스트리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프랑스, 호주 등 12개국에서 왔다. 국적은 달라도, 보라색 옷 위에 얹힌 손들의 떨림은 닮아 있었다.
무대에 선 유형우씨(고 유연주 아버지)는 먼 길 온 이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우리는 그날 사랑하는 가족, 친구를 잃었습니다. 국가는 부재했고 안전은 무능했습니다. 3년 전의 진실은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은 길 위에서 답을 기다렸습니다. 끝까지 밝혀야 정의가 섭니다. 159명의 영령,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도로 위 한기가 조금 더 또렷해졌다.

▲지몽스님(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 무대에서 발언하는 장면“종교는 달라도 생명 앞에서는 같습니다” 발언 이후 들려온 염불과 목탁 소리는 그리움을 더 짙게 만들었다.
ⓒ 이향림
불교·천주교·개신교·원불교 4대 종단이 차례로 올라 지난 정권의 무능과 부재를 지적하며, "국민은 어디든 안전하게 갈 권리가 있다. 진실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연대의 목소리를 보탰다. 목탁 소리와 염불이 이태원 언덕을 타고 번져나가자, 눈을 감은 사람들 사이로 뜨거운 눈물이 조용히 흘렀다. 그 소리는 마치 도로의 심장박동처럼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울렸다.
옆자리의 한 외국인은 한국어를 모른다고 했다. 나는 방금의 발언을 짧게 통역해주었다. 그는 자신을 "모하매드 파라칸드"라고 소개했다. 이란에서 왔고 3년 전 핼러윈의 그 밤, 남동생을 잃었다고 했다. 부모님과 이모는 맨 앞줄에 앉아 있다고 했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행사가 끝난 뒤 그는 가족을 챙기러 서둘러 일어섰고, 우리는 다음날 서면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책임은 사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진실·투명성·정의에서 시작됩니다"
그의 동생 이름은 알리 파라칸드(Ali Parakand). 1986년생. "다정하고, 쾌활하고, 늘 남을 돕던 사람"이었다. 그날, 시차 때문에 다음 날 아침에서야 비보를 접했다. 새벽, '이상한 예감'에 눈을 떴고, 이태원 참사 속보를 보고 전화를 수차례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주한 이란대사관에 확인 전화를 걸려던 그때, 부모님이 깨어나 상황을 알아버리셨어요. 그 순간은 지금도 말로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한국에서의 동생을 "매일이 행복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대학교, 박사과정 지도교수, 배정받은 연구실... 모두 감사해했죠. 한국에 도착한 날이 마침 생일이라 친구들이 깜짝 파티를 준비해줬는데, 그 얘기를 참 많이 했어요."

▲박사 과정을 하러왔다가 이태원 참사에서 희생된 ‘알리 파라칸드(Ali Parakand)'“알리는 삶을 사랑하던 젊은이였습니다” 형 모하매드의 말처럼, 기억은 눈물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이다. ⓒ 모하매드 파라칸드
이번 방한은 한국 정부와 유가족협의회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그는 "새 정부가 유가족의 고통을 마음에 두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동시에 바람도 함께 적었다. "이 비극의 모든 경위를 하루빨리 밝혀주길 바랍니다. 진실을 향한 발걸음이 멈추지 않기를." 10월 25일 저녁 시청광장에서의 추모 현장은 그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적이자 영적인 순간"이었다. 같은 상실을 겪은 한국 유가족들과의 대화는 "위로이자 깊은 슬픔"이었다.
그는 말했다.
"이건 한국만의 비극이 아니라 인류의 비극입니다. 무책임, 생명 경시, 책임 회피가 어디서든 발생하면 위험은 국경을 넘어갑니다. 이태원은 책임지지 않는 리더십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줬습니다. 진실·정의·책임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떤 사회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정부에 전합니다. 책임은 사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진실, 투명성, 정의에서 시작됩니다."
"시민들께도 전합니다. 우리의 고통은 같습니다. 상실의 고통.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도 같습니다."

▲"이태원은 책임지지 않는 리더십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줬습니다"10월 25일 서울 시청광장 이태원 참사 3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한 고 알리 파라칸드의 가족, 형 모하매드, 부모, 이모 (왼쪽부터) ⓒ 모하매드파라칸드
그는 동생을 이렇게 기억하길 바랐다. "단지 희생자 중 한 명이 아니라, 열정과 친절로 가득 찬 젊은이. 삶을 사랑했고 밝은 미래를 누릴 자격이 있던 사람." 그리고 덧붙였다. "그의 기억은 사랑, 자유, 인간성을 상기시킵니다. 어떤 권력도 빼앗아서는 안 될 가치들입니다."
추모식이 끝나 갈 무렵, 보라빛 리본들이 일제히 바람에 떨렸다. 누군가는 조용히 손을 잡았고, 누군가는 눈시울을 훔쳤다. 목탁 소리는 어느새 멀어졌지만, 도로 위에 앉았던 수백 명의 등줄기를 아직도 다독이는 듯했다.
이날, 우리는 또 한 번 배웠다.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은 멈춤이 아니라 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서로의 슬픔을 붙잡는 손은 국경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