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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여유로운 풍경
가을, 여유로운 풍경 ⓒ 형정숙

지난 28일 오전, 임실현 동헌 터에서 참가자 7명이 임실의 옛길 걷기를 출발하였다. 오수역참 터까지 충무공의 백의종군로인 통영별로 12km를 탐방하는 여정이었다. 맑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대봉시가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계절이었다.

향교앞 골목길이 조선 시대 시장 터였다. 옛 읍전교를 건너 임실전통시장을 지났다. 점막과 새터는 이름만 남아 있다. 등기소 앞 골목길을 찾아서, 임실소방서가 위치한 연무재 날망으로 올랐다. 평교 다리 부근에는 평교 점막이 줄지어 있었다. 대곡(한실)의 넓은 고원을 지나서 말재 고갯마루에 이르렀다.

 임실현 운수관 터에서 말재 고갯마루까지 걷기
임실현 운수관 터에서 말재 고갯마루까지 걷기 ⓒ 이완우
 임실 말재 선정비군 팽나무 바위
임실 말재 선정비군 팽나무 바위 ⓒ 김진영

말재(290m) 고갯마루에 이르러 잠시 머물렀다. 팽나무 바위에 조선 시대의 선정비(善政碑)가 새겨졌다. 이 바위가 임실읍(240m), 오수면(130m)과 성수면(200m)의 경계가 되는 삼각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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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재 고갯마루에서 옛길은 계곡을 따라 곧바로 내려갔다. 1920년대에 건설된 신작로는 고갯마루에서 비스듬히 오수면 한암리까지 4km를 천천히 내려간다. 말재 신작로는 1970년대까지 17번 국도의 역할을 했다. 현재는 통행이 거의 없지만, 이 신작로 3km 구간에는 옛 정취가 여전히 남아 있어 영화 촬영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말재에서 성수면 대판이마을로 곧바로 내려갔다. 옛길 흔적을 찾는 약 200m 구간은 풀숲이 무성하여 걷기에 힘들었다. 붉은 대봉시가 매달린 감나무 과수원들 사이로 약 500m 시멘트로 포장된 좁은 임도가 이어진다.

말재 고갯마루에서 대판이마을까지 이어졌던 옛길을 정확히 추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마 이 계곡에 흘러내리는 개울을 따라 이리저리 건너며 옛길이 이어졌을 것이다.

말재 아래 작은 계곡의 개울 이완우
 말재에서 대판이 마을까지 걷기
말재에서 대판이 마을까지 걷기 ⓒ 이완우

말재 고개에서 대판이마을까지 옛길을 찾아 내려오면, 전라선 KTX 열차가 달리는 선로를 만난다. 대판이마을의 모정에 넓은 그늘을 드리운 느티나무가 우람하다. 대판이마을에서 농로를 따라 걸었다. 이 농로는 (구)전라선 철도의 노반이었다. 농로 좌우에는 감나무가 줄지어 서서 가을의 정취를 한껏 조성하고 있었다. 붉게 익어가는 대봉시와 가을 들녘이 풍요롭고 여유로웠다.

 (구)전라선 철길에서 17번 국도 사거리까지 걷기
(구)전라선 철길에서 17번 국도 사거리까지 걷기 ⓒ 이완우

(구)전라선 철길을 계속 따라 내려가서 봉산마을에 도착하였다. 둥치 큰 마을 느티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었다. 봉산마을에서 좌회전하면 폐교된 봉천초등학교 터에 이른다. 작은 주택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공사 현장을 지났다. 조선시대 옛길은 17번 국도 사거리를 건넌다. 둔남천 맑은 물이 흐르고, 억새가 가을바람에 자유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둔남천 억새 풍경 이완우
 (구)전라선 철길에서 17번 국도 사거리까지 걷기
(구)전라선 철길에서 17번 국도 사거리까지 걷기 ⓒ 이완우

둔남천 제방을 따라서 옛길은 냇물 따라 이어진다. 종동 청룡 모퉁이를 지났다. 키 높은 선돌이 우뚝 서서, 옛길의 이정표가 되어 있었다. 옛길은 아쟁이들에 이른다.

아쟁이들(아잔들), 나비 사다리 들녘. 지명이 참 아름답다. 나비(아 蛾)와 잔도(잔 棧)가 이 지역 지명의 중심이었다. 아쟁이들 왼쪽에 아담한 나비산과 화전봉(花田峰)이 있고, 이곳에 나비 명당이 있다는 풍수 설화가 전해온다. 아쟁이들의 3.5km 서남쪽에 노산(540m)이 솟았는데, 이 산 아래에 비아울(飛蛾谷, 나비가 나는 골짜기) 마을이 있다.

아쟁이들, 나비산, 화전봉과 비아울의 지명을 조합하면, 이곳 아쟁이들 지형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노산 비아울의 나비가 나비산 화전봉의 꽃을 향하여 날아왔다. 나비는 가느다란 관 모양의 입(잔도)을 꽃에 내밀며 설렌다. 이 지역 지형이 하나의 나비가 꽃으로 날아오는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아름답지 않은가?
 종동 청룡 모퉁이 장군선돌
종동 청룡 모퉁이 장군선돌 ⓒ 김유미
 한뼘바위, 나비산 기슭, 멀리 임실 말재 방향 둔남천교
한뼘바위, 나비산 기슭, 멀리 임실 말재 방향 둔남천교 ⓒ 이완우

잔도는 비계(飛階)로서 공중으로 설치된 계단이란 의미가 있다. 1931년에 놓인 국평교, 약간 개량한 (신)국평교, 현대화한 둔남천교. 이렇게 점차 개량된 세 개의 교량이 둔남천을 넘어서 나비산 화전봉을 향하여 살짝 치켜 날아오르고 있다.

순천-완주 고속도로가 높은 교각을 타고 나비산 화전봉을 지나가고 있다. 전라선 KTX 선로가 나비산 화전봉을 터널로 통과하고 있다. 하천에 세워진 교각을 딛고 넘어가는 교량들, 높은 교각에 사다리처럼 얹힌 고속도로, 연속된 침목에 평행 레일이 놓인 철도 선로. 이 세 부류의 도로는 옛길이 시대 따라 잔도로 진화한 생명체 같았다.

이곳 아쟁이들을 지나 나비산 아래로 옛길 통영별로가 지났다. 나비산 그늘 옛길 옆에 커다란 바위가 우뚝하다. 한뼘 바위이다. 전진(前進) 바위라고도 했다. 바위에 절리로 틈이 나 있다.

 (좌상) 국평교와 (신)국평교 (우상) 국평교 (좌하) (신)국평교 (우하) (신) 국평교
(좌상) 국평교와 (신)국평교 (우상) 국평교 (좌하) (신)국평교 (우하) (신) 국평교 ⓒ 이완우
 임실 둔남천교
임실 둔남천교 ⓒ 이완우

한양으로 과거 보러 올라가는 선비들이 이 한뼘 바위에 막대기를 적당히 잘라 이 바위틈에 대 보았다. 딱 맞으면 과거에 합격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점친 바위라고도 하였다. 이 바위 앞을 지나가며, 한양으로 향하는 선비(애벌레)들은 나비(과거 급제)가 되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작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하늘(세상)을 자유롭게 날고 싶다'라는 구절의 어느 가수의 '나는 나비' 노래가 들리는 듯했다.

나비들이 꽃으로 모여들듯이, 이 지역은 예로부터 여러 길이 모여드는 교통의 길목이었다. 아쟁이들 동남쪽으로 2.5km 위치는 천 년 동안 교통의 중심지인 오수 역참(驛站)이었다. 이렇게 여러 도로가 모이는 미래를 예견하며, 이러한 지명들이 전해져 왔을까? 옛사람들이 이름 지은 땅이름에 거듭 감탄하게 된다.

 전해산 의병장 비석과 순우평 마을
전해산 의병장 비석과 순우평 마을 ⓒ 이완우
 (구)전라선 철도 건널목 자리, 마을회관, 대명암 암각서, (구)전라선 철도 옹벽
(구)전라선 철도 건널목 자리, 마을회관, 대명암 암각서, (구)전라선 철도 옹벽 ⓒ 이완우

국평리는 조선 시대에 국화들(구홧들)이라고 하였다. 이곳은 구한말 전해산 의병장의 출생지이다. 전라선 철도 상신(메추라기)마을을 지났다. (구)전라선 철도 건널목 자리를 앞에 두고 언덕에 오래된 마을회관 건물이 남아 있었다.

(구)전라선 철도의 옹벽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옹벽 위 높은 곳 큰 바위에 '대명암(大明嵒'이란 암각서가 보였다. '바위 암(嵒)' 글자는 '뫼 산(山)' 위에 '입 구(口)'가 셋(品) 있는 모양이다. 산의 높은 곳에 있는 바위를 나타내는 한자란다. 참 흥미롭다. 만약 바위가 산의 낮은 곳에 있으면, '山 산' 아래에 '品 바위' 글자를 놓아 표현했다고 한다. 옛사람들의 여유와 해학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구)전라선 오수역
(구)전라선 오수역 ⓒ 천정영
 오수역참지와 은행나무, 임실행 버스
오수역참지와 은행나무, 임실행 버스 ⓒ 이완우

오수역참터. 천 년 역사의 오수역참은 흔적도 없다. 가을 하늘을 노란 잎으로 장식한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오수역참을 기억할까? 노거수 은행나무 아래에 오수역참지(獒樹驛站址) 표지석이 덩그렇게 놓였다. 수십 마리의 역마(驛馬)들이 이곳 역참의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1597년 4월에 충무공이 걸었던 백의종군로 옛길을 걸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충무공이 걸었던 충성과 희생의 역정을 백의종군로 옛길에서 체험하고 싶었다. 잊힌 옛길도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찾는 이 없어도 역사와 설화는 전승되고 있었다.

오수역참 터에 오수 버스정류장이 있고, 시내버스와 시외버스가 출발하고 도착했다. 오수 버스정류장에서 그 옛날 역마들이 오갔던 오수역참의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시외버스를 타고 임실읍으로 향했다. 옛길을 걸었던 여정을 버스 차창의 풍경으로 되돌아보았다.

말재 고갯길과 봉천 들녘의 옛 전라선 철길에 줄지은 감나무의 붉은 대봉시가 인상적인 가을 정취 풍경이었다. 옛길 걷기는 가을 소풍처럼 가볍고도 의미 깊은 하루의 여정이었다.

 가을 황금 들녘과 감나무 풍경
가을 황금 들녘과 감나무 풍경 ⓒ 형정숙

덧붙이는 글 | 2025년 10월 28일. 충무공 백의종군로 임실현 동헌 터에서 오수역참 터까지. 임실옛길걷기모임 김유미, 김진영, 박성근, 배순남, 이소영, 이완우, 천정영. 함께 걸었습니다.


#충무공백의종군로#감나무대봉시#임실현동헌#오수역참#형정숙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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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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