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 가장 오래 살았던, 지금도 살고 있는 도시다. 그런 만큼 부산을 사랑하는 마음도 각별하다. 혈기 왕성했던 나의 청춘 시절, 부산도 활기와 생동감이 넘치는 도시였다. 골목마다 아이들이 울고 웃고 떠드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시내 중심가는 인파로 뒤덮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도시 전역에 쭉쭉 뻗어 나갈 것 같은 성장의 기운이 가득했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에 휩싸여 젊은 시절, 인생의 미래를 설계하며 꿈에 부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30~40년 전, 그랬던 부산이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날로 쇠퇴하고 고령화되는 거리 풍경이 쓸쓸하기만 하다.
'임시수도' 흔적을 찾아보며 감상에 젖어

▲임시수도 기념거리 표지석(위), 임시수도 정부청사 건물, 현재는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아래) ⓒ 곽규현
며칠 전 지난날 활력이 넘쳤던 부산의 모습을 떠올리며,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부산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게 하는 의미 있는 장소 두 곳을 찾았다. 먼저 찾은 곳은 임시수도 기념거리,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지만, 부산도 과거 한때 대한민국의 수도였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이후, 1차로 1950년 8월 18일부터 10월 27일까지, 2차로 1951년 1월 3일부터 1953년 8월 15일까지 총 1023일간 부산은 대한민국의 수도 역할을 했다. 엄혹한 전쟁 시기에 부산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외교, 행정, 교육 기능이 집중된 임시수도였다. 게다가 전쟁을 피해 모여든 수많은 피란민들이 억척스럽게 삶을 이어갔던 피란수도이기도 했다.
부산 시내에는 임시수도와 피란민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임시수도 기념거리에 남아 있는 임시수도 정부청사와 대통령 관저도 그런 흔적 중의 한 곳이다. 임시수도 정부청사는 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국가등록문화재 제41호로 지정돼 외관은 해체와 복원을 거쳐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2층의 붉은 벽돌로 건축된 임시수도 정부청사 건물을 바라보니, 과거 '한국전쟁 중에는 저기가 우리나라 국가 운영의 중심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

▲공사 중인 임시수도 기념관과 전시관 외부 모습(위), 전시관 내부와 전쟁 중 피란학교를 재현한 천막학교 모습(아래) ⓒ 곽규현
발길을 옮겨 근처에 있는 임시수도기념관으로 향했다. 임시수도기념관은 부산이 임시수도이던 시절, 당시 대통령 관저였다. 오래전 아들딸과 함께 찾았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는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건물 외부가 공사 천으로 가려진 채 보수 작업이 진행 중이라 관람할 수 없었다. 다행히 옆에 딸려 있는 전시관은 관람이 가능해 둘러볼 수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인 부산 시내를 거니는 문화 예술인의 모습,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의 생활상을 보면서, '부산이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거점이었구나'하는 감상에 젖었다. 국가 위기 시에 부산이 우리나라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되새기니 '부산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은근히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해수부 임시청사 현장에서 '해양수도'의 성공을 바라며

▲해양수산부 임시청사 공사 현장, 연내 이전을 위한 공사가 분주하다. ⓒ 곽규현
'부산사람'으로서 자긍심을 안고, 이번에는 과거가 아닌 부산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해양수산부 임시청사 현장을 찾았다. 부산은 다시 한번 새로운 수도를 꿈꾸고 있다. '해양수도 부산!',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으로 '해양수도 부산'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부산이 국가 발전의 핵심 지역으로 부상하기를 염원하며 찾아간 해수부 임시청사 현장은 이전 준비를 위한 공사로 분주했다. 해수부 연내 이전을 서두르는 공사 소리가 힘차게 들렸다. 공사가 진행 중인 빌딩을 쳐다보며 부산이 해양수도로서 우리나라를 해양강국으로 이끌어주리라는 기대가 현실이 되기를 바랐다.
해수부 임시청사 바로 근처에 있는 수정전통시장 입구에도 해수부 이전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배가 출출하여 점심을 먹으러 전통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부산의 현주소를 보여주듯이, 수정전통시장 역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한산하기만 했다. 소문난 보리밥집 간판에 이끌려 보리밥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보리밥을 먹으며 70대로 보이는 식당 사장님과 해수부 이전과 관련해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보리밥 식당을 운영한 지 40년 가까이 됐다고 한다.

▲수정전통시장 입구에 해수부 이전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위), 보리밥 식당 주변의 수정전통시장 모습(아래) ⓒ 곽규현
"요즘 장사하시기는 어떠세요?"
"보시다시피 손님이 없어요.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되죠. 단골손님 덕분에 그럭저럭하고는 있는데, 먹고 살기가 힘들어요."
"바로 앞에 해수부 청사가 들어오면 좀 낫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좀 나을 거 같기는 한데, 얼마나 나을지는 모르겠네요. 우리 같이 나이 많은 사람은 그냥저냥 산다지만, 젊은 사람들 살기가 걱정이죠."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40대로 보이는 젊은 사장님에게도 물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몇 마디를 쏟아냈다. 그도 그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한 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해수부가 들어오면 당연히 좋긴 하죠. 해수부 이전에 기대를 걸고 있긴 한데, 해수부만 달랑 들어와서는 지역 경제에 크게 도움이 안 돼요. 지금 여기 원도심 상권이 말이 아니에요. 부산이 살아나려면 해수부를 따라 서울에 있는 해운대기업들도 본사가 부산으로 내려와야 해요. 해양산업이 부산으로 모여야 일자리도 늘어나고 젊은이들도 수도권으로 안 빠져나가죠. 지역 경제가 살아나야 우리 같은 소상인들도 먹고 사는데, 해수부 이전으로 부산이 제대로 부활하면 좋겠네요."
상인들의 희망처럼 '해양수도 부산'의 위상과 역할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해양관련 정책들이 부산으로 이전하는 해수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해양관련 산업과 기관들이 부산으로 집중해 명실상부한 '해양수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라는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부산이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임시수도로서 재기의 발판이 되었던 것처럼, 다시 한번 해양수도로서 지방 소멸을 극복하는 저력을 발휘하도록 국가적인 역량을 모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