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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은 준비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문장은 지난 한 달 동안, 병원 복도와 요양원을 오가며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린 말이다.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27일 시어머니가 또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요양원에서 병원으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 일이 어느새 우리 가족의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의식은 없고, 숨만 이어지는 시간들. 눈을 뜨셔도 그게 '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마지막 손어머님 손을 꼭 잡아본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의 온기를 기억해 두겠다는 다짐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 구혜은
사실 우리 가족은 오래전에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정리해 두었다.
"그때가 되면 기계에 매달리지 않겠다."
건강하시던 시절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함께 남기신 말이다. 나는 그 약속을 기억했다. 그래서 올봄, 시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어머님이 받고 계신 게 바로 연명의료예요."
그러나 그 말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이미 작년, 시어머니는 응급실에서 기관삽관을 하셨고 그날 이후로 목소리를 잃으셨다. 1년 넘게, 침상 위에서 눈만 뜬 채 하루하루를 버텨오시던 중이었다.요양원에 계시는 긴 시간 동안 나는 종종 생각했다.
'이게 사는 걸까, 아니면 남아 있는 걸까.'
응급실에서 이틀, 중환자실에서 2주를 보낸 시어머니에게 의사는 인공호흡기와 승압제 중단을 권했다. 치료의 의미가 없어서다. 그날로 시어머니는 임종실로 옮겨졌다. 아버님은 "마지막이라도 편하게 보내드리고 싶다"며 1인 병실을 고집하셨고 남편은 회사도 안 가고 어머님 옆을 지켰다. 혹시나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할까 봐 불안한 마음에서였다. 나 역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대기했다. 마치 완벽한 '임종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하지만 어머니는 모든 연명치료를 중단 한 뒤에도 묵묵히 자기 리듬으로 숨을 이어가셨다. 임종실로 옮겨진 2주 동안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장은 여전히 일정한 박동을 유지했다. 병원에서도 의례적인 일이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임종을 준비한다는 건, 죽음의 순간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의 관계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평소의 말 한 마디, 따뜻한 눈길 하나. 그 일상이 곧 죽음을 준비하는 예행 연습이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남는 건, 우리가 평소에 나눈 그 마음 뿐이었다.
임종을 준비한다는 건 어쩌면 인간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죽음은 인간의 계획이 아니라, 하늘의 몫이기 때문이다.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그것이 곧 임종을 맞이하는 태도다. 그 사실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다만, 그 배움을 내 삶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자신이 없다.
의료진은 아무 치료나 조치 없이 입원은 어렵다며 퇴원을 권했고, 결국 어머니는 결국 27일 다시 요양원으로 오셨다. 마음이 편치 않다. 2주 동안 임종실에 머물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