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말 |
| 예전과 달라진 폭우와 폭염의 기세에 기후위기가 우리 곁에 도달해 있음을 느낀다. 개인의 불안과 피해를 넘어 우리동네, 지역에서 시작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충남 천안지역의 활동가 몇 명이 숫자(예산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타지역에는 있는 정책이 왜 우리동네에는 없는지 의구심을 갖게 됐다. 그 공백에 대한 답은 기후위기 대응을 우선순위에 두고 예산을 반영하는 의지와 지금 우리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상상력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적응하며, 서로를 돌보는 삶에 대한 희망을 담아 5주간 '슬기로운 기후생활'을 연재한다. 우리의 상상력을 모아 세상을 바꿀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흘러간다. 이런 날 직장인에게 가장 큰 고민은 단연 점심 메뉴다. 한없이 열려있는 선택지를 앞에 두고 온도와 습도, 계절, 동료들의 기색까지 살피다 보면, 끝내 그 무엇도 선택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래서 일까, 치열한 메뉴 선정 토론 끝엔 으레 "급식이 그립다"는 푸념이 나오곤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것은 사무실의 모두가 완전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급식이 전면 도입된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는 고작해야 두어 명 정도이니까.
1962년 학교급식법이 제정되며 급식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지만, 전국적으로 학교급식이 보편화된 것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이다. 2010년, 일부 지자체에서 시작한 무상급식이 격렬한 사회적 논쟁 끝에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이즈음 친환경 급식도 함께 자리 잡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지역 여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최소한 하루 한 끼만큼은 차별 없이 건강하게 먹여야 한다는 사회구성원들의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국민 영양과 식생활 개선에서 출발한 학교급식은 보편적 복지와 국가의 책무,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지속가능한 농업과 지역 생태계로 논의의 폭을 넓혀왔다. 학교급식의 제도화 과정은 마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성숙해가는 과정,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지향해온 가치를 비추는 거울처럼 보인다.
이제 학교급식은 또 한 번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학교와 공공기관에서는 '채식급식'이 확대되고 있다. 전국의 17개 시·도교육청에서는 학교에서 월 1~2회 채식 급식을 제공하거나 채식선택 급식을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전남과 서울, 경기는 각각 전라남도 채식환경 조성 조례, 서울특별시 채식환경 조성 지원에 관한 조례, 경기도 채식실천 지원 조례를 통해 공공기관 및 학교가 채식의 날을 지정해 운영할 것을 권장할 수 있고, 부산과 제주에는 학교 채식급식 활성화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충청남도 교육청도 '2030 환경교육 종합계획'에 따라 2021년부터 '저탄소 초록(채식) 급식의 날'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의 다양성과 선택권 존중 뿐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과 교육의 측면에서 채식급식을 도입한 것이다.
경기도는 채식급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공공급식을 기후위기 대응형 급식, 즉 '기후급식'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기후급식은 탄소·환경 발자국을 최소화 하는 급식 운영을 뜻한다. 지역에서 생산된 제철 식재료를 우선 사용하고, 육류 소비를 줄이며, 식품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유통과 조리 단계에서 에너지전환을 이루는 것 또한 지향점이다. 더 넓게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식재료 조달체계까지 포함한다.

▲기후위기 시대, 제철 식재료로 밥상을 차리는 일이 큰 도전이 된다. ⓒ 기후행동NOW
경기도는 올해 기후급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철에 수확한 친환경 시금치를 냉동보관 했다가 가격 급등 시기에 학교급식 재료로 시범공급했다. 이상기온으로 농산물 공급의 불안정이 반복되는 데에 대응하기 위해 적기에 수확한 농산물을 냉동보관하고 필요할 때 공급하여, 농가에는 안정적 판로를, 학교에는 예산 절감 효과를, 지역에는 식품 폐기물 감소 효과를 주기 위한 시도이다.
한편 경기도농수산진흥원은 학교급식 부산물을 자연에서 생분해되는 플라스틱 제품으로 업사이클링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급식 식자재들을 전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농산물의 껍질, 줄기 등을 재가공해 농업용 멀칭필름, 마대, 식품용 비닐 등의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품으로 개발해 학교급식용 자재로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전의 학교급식이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지역농업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면, 이제는 이상기후에 대응하는 안정적인 먹거리 체계를 만들고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공공 먹거리 시스템인 학교급식은 그 규모와 전달력에서 기후위기 대응의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UN 푸드시스템 정상회의에서도 학교급식이 미래세대의 건강과 환경보호를 위한 필수적 요소라고 강조하고 있다.

▲급식을 통해 먹는 것을 넘어 기후환경 교육까지 가능하다 ⓒ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기후급식으로의 전환은 식자재의 생산과 조달, 공급기준 등의 커다란 변화를 필요로 한다. 교육과 농업, 지역경제를 아우르는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충분한 논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직면한 기후위기 앞에서 전환은 필연적이다. 경기도와 같이 지역에서도 적극적인 준비와 시도를 해나가야 한다. 그와 동시에,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기후급식은 공급체계를 바꾸는 일임과 동시에 미래세대의 식습관과 가치관을 바꾸는 교육이다. 급식이 단순한 식사 제공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의 변화를 실천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식생활 교육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천안시는 충남교육청의 '저탄소 초록 급식의 날'과 연계해 '학교급식데이'를 운영한다. 올해 5천만원 예산으로 72개 학교에서 지역 농산물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 초록 급식 홍보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천안시는 보도자료에서 "지역에서 생산되는 신선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학교급식에 적극 활용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산시에서도 올해부터 '저탄소 학교급식의 날'을 시범운영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급식 프로젝트로 '남기지 않는 한 끼 인증샷', '저탄소 식생활 퀴즈' 등의 캠페인과 탄소중립교육을 진행한다. 또 저탄소 식단 구성을 위해 농산물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균 10% 이상 감축한 저탄소 인증 축산물을 활용한 식단을 구성하는 시범사업도 병행한다.
학교급식에 대한 천안시의 관점이 단순히 '친환경 로컬푸드'의 차원을 넘어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의 관점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지역 농산물 소비가 단지 지역경제 활성화가 아니라, 탄소를 줄이는 실천, 그리고 기후시민교육과 이어질 때 진정한 기후급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천안아산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