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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도 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엄마, 어제 통화 못했네. 오늘 저녁에 통화할까?" 미국에서 근무하는 딸과 나는 매일 영상통화를 한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내가 바빠서 전화를 놓칠 때가 생긴다. 책을 읽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고, 글을 쓰다 보면 약속을 깜빡한다. 예전 같으면 딸의 전화를 손꼽아 기다렸을 텐데, 이제는 내가 바쁜 사람이 되었다.
외로움에 대한 대비

▲영화 <사람과 고기> 스틸 컷 노인들의 연대 ⓒ 영화사 도로시
2025년,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에 들어섰다. 65세 이상 인구가 천만 명을 넘고, 그중 229만 가구가 홀로 산다. 혼자 사는 고령자 가운데 다섯 명 중 한 명은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지난해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사람은 3661명. 이 숫자 속에는 누군가의 조용한 밤과 텅 빈 식탁이 숨어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마주한 '위기적 외로움'의 실체다.
나 역시 처음부터 이 고립을 환대한 것은 아니었다. 평생 누군가와 연결되어 살다가 남편과 아이들이 각각 해외에 떨어져 거주하다 보니, 현관의 정적은 숨쉬기 어려울 만큼 거대했다. 하루 해가 저물고 혼잣밥을 먹으며 '정말 홀로 남겨졌구나' 하는 서늘한 외로움이 나를 덮쳤다. 이 외로움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 수도 있는 두려운 이름이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연락을 기대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섰다. ⓒ joshua_hoehne on Unsplash
노인들이 많지만, 마음 한쪽이 허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녀들의 전화는 뜸해지고, 평생 나를 규정하던 '누구의 부모', '어떤 직책'이라는 이름표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간다. 이근후 교수의 말처럼, 노후대비는 연금만큼 '외로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처음엔 관계가 멀어지는 것에 서운했지만, 곧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이름없는 시간, 외로움의 무게를 두려워하는 대신 마주보기로 결심한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외로움 그 자체가 자유인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이 해방의 서막을 열었다. 이제 나는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의무에서 벗어나, 오직 '나'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온전한 정신적 독립을 얻었다.
마침내 나는 기다림을 멈추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연락을 기대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섰다. 새벽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가까운 문화원의 독서 모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나이 들어 눈이 나빠지는 이유는, 책을 많이 보아 앞에 나서지 말고 조용히 뒤에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라는 책 속의 유머처럼, 기꺼이 뒤로 물러나 조연으로 살되, 그 시간을 능동적으로 채우기로 했다.
외로울 틈이 없다
진정한 자유는 홀로 고립되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선택'하고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과거의 관계가 의무와 혈연에 기반했다면, 이제는 즐거움, 배움, 취미로 연결된 새로운 공동체를 찾아 나선다.
나는 매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뜬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창가에 앉는다. 새벽의 고요가 좋다. 책을 펼치고 한 줄 한 줄을 천천히 읽는다. 생각이 떠오르면 글을 쓴다. 오늘 본 구름의 모양, 창밖의 새소리, 차를 마시며 스친 잡념들. 그 모든 것이 오롯이 나를 위한 활동이다.
언젠가 독서모임의 멤버 중 한 분이 자신이 손수 구운 쿠키를 나누어 주었다. "집에 혼자 있으니 여유있게 만들어 봤어요." 그 한 마디에 모두 웃음이 번졌다. 그렇게 서로의 외로움이 닿고, 서로의 하루를 조금씩 덜어내며 이어지는 건강하고 따뜻한 연결이다.

▲손수 구운 쿠키. ⓒ rjh07 on Unsplash
이 관계들은 서로의 '필요'가 아닌 '자발성'으로 엮여있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내면 깊숙한 곳의 '진짜 나'와 재회하는 시간이다. 앞만 보며 달리느라 잊었던 꿈, 미처 해소하지 못했던 호기심, 나만의 가치관을 이제야 마주할 여유가 생겼다. 시간이 줄어든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외로울 틈이 없다.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어떻게 늙을 것인가'라는 마음의 근육이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능력. 스스로 행복한 삶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우리도 잘 지내니까 너희는 너희 인생을 살아'라고 말할 수 있는 노년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오늘도 딸에게 메시지가 온다. "엄마, 저녁에 통화할까?"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연락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는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답장한다.
"오늘은 엄마가 바빠서 저녁 늦게 할게."
외로움이라는 거대한 여백 속에서 찾은 이 온전한 여유와 충만함이야말로, 내 노년의 황금기를 빛나게 하는 진정한 자유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