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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인에 '투자'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니 무모한 '도박'이었습니다.
코인에 '투자'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니 무모한 '도박'이었습니다. ⓒ Pixabay

"국장(국내 주식) 좀 담으렴. 국장이 미쳤다."

친구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코스피 4000 시대, 국내 주식 시장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더불어 '빚투 열풍'이 불고 있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죠. 예전에는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그럼 나도?"라며 마음이 쉽게 동요되었는데, 이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역시 경험은 스승입니다.

평범한 직장인인 제가 '한탕'의 유혹에 넘어가 순식간에 2억 2천만 원을 탕진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코인의 '코'자만 들어도 치를 떨었는데, 마음을 좀 추스르고 나니 '이 무모한 도전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돈을 날린 얘기가 아닙니다. 욕심과 조급함이 만든 함정에 빠져 무너진 중년의 마음, 거기서 건져 올린 비싼 교훈에 관한 기록입니다. 왜 무모한 투자를 하게 되었는지, 투자하면서 지켜야 했던 것들 그리고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중년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초라한 노년이 기다릴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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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딸, 중3 아들을 키우는 직장생활 19년 차 중년입니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이 월급의 약 22%, 두 아이 교육비가 약 36%를 차지합니다. 생활비, 보험료, 관리비 등등 차 떼고 포 떼면 남는 건 없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불안이 하루가 다르게 커졌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중년기는 삶의 중앙인 동시에 경제적인 늪에 빠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정년은 코앞이고, 이마저 채우기 버거운 현실에서 책임과 부담만 계속 늘어납니다. 부모를 부양하고 자녀 교육까지 감당하는 와중에 은퇴를 준비합니다. 직장에서도 위태로운 시기, 퇴직 불안에 '당장 뭔가를 해야 한다'라는 압박도 받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초기,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코스피 4000시대처럼 코인, 주식 열풍이 불었죠. 약 1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바로 급락을 맞았고, 마이너스 70%~80% 구간에서 수년을 머물렀습니다. '제발 본전만이라도'라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버텼습니다.

2024년 말, 미 대선 시즌 트럼프의 상승세와 함께 코인 시장이 과열됐습니다. 유튜브에는 "코인으로 수억 벌었다", "취임 전이 마지막 기회다" 같은 말이 넘쳤고, 여기저기서 수익 인증이 이어졌습니다. 마이너스였던 투자금이 본전을 넘어 플러스로 전환되자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몰라', '곧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겠다'라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수익률이 높은 코인 선물거래로 갈아탔습니다(선물 코인이란, 코인값이 오를지(롱) 내릴지(숏)를 예상해서 수십 배의 돈을 거는 거래다).

탐욕의 다른 이름, '본전만'

약 2주 동안 선물 기초를 훑고, 한 유튜브를 통해 리딩방에 가입. 새벽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금리 등 각종 발표를 챙기고, 차트 흐름을 살피며 선물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유하고 있던 코인 현물에서 약 2천만 원을 빼서 조심스럽게 투자했습니다. 진입 2주 만에 2천만 원이 5천만 원이 되었습니다.

나머지 현물 코인도 조금씩 선물 계좌로 밀어 넣었습니다. 약 한 달간 순차 투입한 원금이 1억 원 이상. 한동안 순조로웠지만 크리스마스이브와 연말에 연쇄 청산(강제 종료)을 당하고 잔고는 0원이 되었습니다(청산이란, '오를 거다(롱)' 또는 '내릴 거다(숏)'에 돈을 걸었을 때, 코인 가격이 예상과 반대로 너무 많이 움직이면 거래가 강제로 끝나고, 결국 잔고가 0원이 되는 것).

본전 생각에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전 직장 퇴직금, 성과급, 연말정산, 금덩어리, 수천만 원의 주식까지 정리해 추가 증거금을 넣었습니다. 또 청산, 결국 신용대출까지 손대게 되었고, 올해 6월까지 누적 투입 원금은 약 2억 2천만 원이 되었습니다(사실 정신 없이 쏟아부어 정확히 얼마인지도 모릅니다. 이 이상일지도).

정신을 차리고 깨달은 놀라운 사실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수익금을 인출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돈은 사이버 머니, 모든 순간은 허상이었습니다.

'현실감각', '통제력', '시간' 세 가지를 잃다

 수개월 동안 돈뿐만 아니라 아까운 시간도 탕진했습니다.
수개월 동안 돈뿐만 아니라 아까운 시간도 탕진했습니다. ⓒ Pixabay

수개월간 제가 잃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먼저, 현실감각을 잃었습니다. 수익률이 좋아지자 과도한 이상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금방 부자가 될 거라는 환상에 사로잡혔습니다. 갑자기 손실이 늘어나니 판단력이 흐려졌습니다. 코인 시장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욕심과 본전 생각에 눈이 멀었습니다.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필요한 손절도 외면한 채 무의미한 오기로 일관했습니다.

자제력과 통제력도 상실했습니다. '한 번만 더', '본전만'이란 생각이 탐욕의 다른 이름임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무조건 될 거라는 확증편향에 갇혀 온갖 돈을 끌어 모으기 바빴습니다.

시간의 가치도 무시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붙잡고 살았던 시기입니다. 몇 개월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마다 수시로 깨서 차트를 확인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투자인 줄 알고 하는 투기나 도박에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할 것입니다. 투자에서 진짜 잃어서는 안 되는 건 돈이 아니라 '현실감각', '통제력', '시간'입니다. 이 세 가지를 지키지 못하면, 뼈저린 후회만 남습니다. 시장은 언제나 변하지만 마음의 균형을 지키는 일은 오롯이 개인 몫입니다.

고등학생 딸이 아빠에게 보낸 경고의 메시지

아이들에게 주식, 코인, 선물 투자에 관해 설명한 적 있습니다. 자세히는 아니지만, 아이들도 아빠의 선물 투자와 손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고2 딸이 모의고사 영어 지문을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습니다.

"학원에서 시험 보다가 아빠가 생각났어요."

 이미 투자한 것이 아까워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매몰비용'의 오류를 다룬 모의고사 영어 지문
이미 투자한 것이 아까워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매몰비용'의 오류를 다룬 모의고사 영어 지문 ⓒ 장한이

"우리는 무언가를 낭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너무 고통스러워 나쁜 5년을 나쁜 10년으로 만든다. 천 달러를 잃었다는 걸 못 받아들여 또 다른 천 달러를 넣고, 결국 그것마저 잃는다.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고 멈춰야 한다."

지문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딸이 '아빠, 정신 차리세요!'라고 보내준 경고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폭망'을 공유한 이유는 '쉽게 벌 수 잇는 돈은 없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사라진다'라는 2억 2천짜리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쉬운 진실을, 아빠는 이 비싼 수업료를 내고서야 배웠습니다.

2025년 Acadian Asset Management가 발표한 'The SquidGame Stock Market'('오징어게임 주식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미국 증시가 급등하며 한국 개인들의 고위험 자산도 수익을 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환상일 뿐, 초반에는 게임에 이기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모두 죽는다는 오징어게임처럼 결말은 좋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가상자산 시장과 연동된 레버리지 ETF, 크립토 투자 등 '한탕'을 노린 고위험 투자 전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결국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였죠. 친구에게 며칠 전 카톡이 왔습니다. 코인 시장에서 유명한 한 유튜버가 2년 동안 벌어 놓은 50억을 한 번에 날렸다고 했습니다.

"너 계속했어도 이번 대폭락 때 다 청산됐을 거다."

실제로 지난 10월 10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한 마디에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이 폭락하며, 단 하루 동안 약 27조 원 규모의 선물 포지션이 강제 청산됐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보다는 희망을 찾으려 합니다. 오히려 완전히 손을 뗀 요즘, 마음은 더 후련합니다. 어딘가에 갇혔다가 풀려난 기분입니다. 잠도 편히 잘 수 있고요. 중년의 진짜 자산은 돈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수업료는 비쌌지만, 그보다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고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으니까요.

#선물투자#중년의삶#코인투자#투기#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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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이 (hani1977) 내방

세상의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직장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빠, 매 순간을 글로 즐기는 기록자. 글 속에 나를 담아 내면을 가꾸는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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