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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들의 모습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들의 모습 ⓒ EBS

요즘 학교엔 무기력한 아이들이 너무 많다. 청소년 우울증 환자들이 크게 늘었다더니, 그들이 그들인가 싶기도 하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거나 일과 중에 약을 챙겨 먹는 아이도 흔하다. 학년 초 학부모 상담 때 부러 자녀의 병력을 알리며 담임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무기력한 아이들은 어디서든 쉽게 눈에 띈다. 종일 표정의 변화가 없고, 말수가 턱 없이 적으며,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대개 체육 수업 때 스탠드에 홀로 앉아 있고, 점심시간에 식사도 외따로 혼자 먹는다. 질문에 답하는 걸 귀찮아하고, 수업 시간 교사와 눈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한다.

그들은 수업 시간은 물론, 그 어떤 일에도 의욕이 없다. 잘하는 게 뭐고, 좋아하는 게 뭔지 물어도 항상 답변은 "없어요"다. 그나마 "잘 모르겠다"는 답변은 적성과 흥미를 찾기 위해 나름 애를 쓰고 있다는 뜻이어서 다행이지만,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자르면 분위기가 순식간에 데면데면해지고 만다.

자기의 생각을 물어봐도,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모른다"고 답한다. 그냥 대답하기 귀찮다는 뜻이다. 남도 아닌 자기의 생각을 모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상대방의 이야기를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예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셈이다.

자라면서 몸에 밴 '훈련된' 무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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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그랬을 리 없다. 무기력이 유전된다는 이야기는 여태 들어본 적이 없다. 자라면서 시나브로 몸에 밴, 이른바 '훈련된' 무기력이다. 어려서부터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반복되고 누적되다 보니,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작은 장애물조차 회피하고 애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세월 가는 대로 사는 아이들이다.

무기력은 '배가 산으로 가는' 우리 공교육이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악화시킨 병증이다. 성격도 재능도 각양각색인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 점수와 등급을 매겨 온 교육 제도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들은 자기 성적에 무관심하고 언제 시험을 치르는지도 모른다. 채점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시험 기간은 차라리 '방학'이다.

무기력이 치유되지 않고 장기화하면 위험하다. 자기 몸과 마음을 방치하면 자존감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스스로 무능하고 지질한 사람으로 낙인찍고, 친구들의 무시와 조롱을 당연시하고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유 없이 왕따를 당해도, 자기가 못난 탓으로 돌린다. 견디다 못해 자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마저 있다.

당장 '숨 쉴 구멍' 터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아이들의 무기력을 극복하는 특효약은 '효능감'이다. 이를 모르는 교사는 없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쉽진 않다. 학교에서 일과 중에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북돋아 주면 된다. 그러자면 아이들 각자의 특성에 맞게 개별 지도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두고 교육하면 된다.

이론상 그렇다는 이야기다. 늘 이론은 현실과 '안드로메다'만큼 멀리 있다. 거창하게 '효능감' 운운할 게 아니라 당장 '숨 쉴 구멍'을 터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거나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식의 조언은 이제 더는 통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건넸다간 기성세대의 흰소리라며 되레 발끈한다.

일단 종일 책상에 앉아 기출 문제집과 씨름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공부를 엉덩이로 하는' 시대는 지났다. 혈기 왕성한 10대 아이들을 교실에 옴짝달싹하지 않고 앉아 하루를 보내도록 하는 건 차라리 고문이다. 교실 밖에서도 얼마든지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한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이는 시험 성적으로 한 줄 세우는 상대평가 방식만 사라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두 문제 더 맞혔다고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을뿐더러 그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대입의 공정성을 위해 상대평가가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그로 인해 '4세 고시'라는 아동 학대가 버젓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고.

설령 상대평가로 대입의 공정성이 확보된다고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지금의 공교육은 아이들에게 만연한 무기력을 극복하는 게 급선무다.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활력을 심어주는 게 핵심 목표로 재설정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등교하고 싶은 학교, 방학보다 개학을 기다리는 학교로 만드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예체능 과목과 수학여행 등 단체활동 늘려야

교육과정에서 예체능 과목의 시수를 늘리는 일도 중요하다. 사범대의 교원 양성 과정과 수급 문제가 연동되어 있다고 해서 세월아 네월아 할 상황이 아니다. 현재 인문계고등학교에서 예체능 과목은 시험을 앞두고 자습 시간으로 활용될 정도로 존재감이 아예 없다. 아이들조차 교과서를 왜 배부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젓는 지경이다.

그러나 예체능 과목은 아이들에게 대표적인 '숨 쉴 구멍'이다. 시험과 성적에 대한 부담 없이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땀 흘려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다. 대입에 불필요한 기타 과목이 아니라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을 부추기는 대입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적어도 치료제는 아닐지언정 진통제는 된다.

학교 울타리 바깥 공기를 쐬게 해주는 것도 무기력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소풍과 수학여행 등 단체활동이 교육 활동에 꼭 필요한 이유다. 혹자는 해외여행까지 보편화한 마당에 소풍과 수학여행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다. 어디를 가서 뭘 보느냐보다 숨 막히는 교실을 벗어난다는 데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배정된 숙소에서 아이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교실에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하룻밤 사이에 서먹했던 관계가 친밀해지기도 하고, 평소 무기력하던 아이가 잠재된 끼를 드러내기도 한다. 학교 밖 단체활동은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깔아주는 더 없는 '멍석'이다. 그때의 아이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초중고의 학교 밖 단체활동이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다. 교육적 효과가 없어서라기보다 단체활동 중에 일어난 사고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인솔 교사에게 전가되는 현실 때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교사로 칭찬받지만, 일단 사고가 나면 덤터기를 쓰게 되는 '복불복 게임' 같은 게 돼버렸다.

학교마다 '수학여행 활성화위원회'가 조직되어 있지만, 교사들의 우려와 반발 속에 이미 기능부전 상태다. 교육청의 지원금까지 반납하며 수학여행을 교내의 체험활동으로 돌린 학교가 적지 않다. 법적인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시행할 수 없다는 게 교사들의 대체적인 입장이어서 정치권에 공을 넘긴 형국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아이들 사이에서 빠르게 전염되고 있는 무기력을 해소하는 데 당장 뭐라도 해야 하는 시점이다. 쾌도난마의 묘책을 기대하는 건 힘들다 해도, 전가의 보도처럼 과도기 운운하며 애꿎은 시간만 허비하는 건 비겁하다. 오늘도 아이들의 자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누구의 책임인지 따질 만큼 지금 우리 공교육은 한가하지 않다.

#청소년우울증#상대평가#4세고시#예체능교과#수학여행활성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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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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