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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29 08:55최종 업데이트 25.10.29 08:55

혁명가 루쉰에 가려진 이름 두 글자

아내 주안 평전, 차오리화 지음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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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문맹에다 전족을 한 채 종종걸음걸이로 20세기를 맞은 여인이다. 정혼한 집안의 신랑이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스물여덟이 돼서야 혼례를 치렀다. 정혼 후 7년이란 절망의 시간이 흐른 뒤 겨우.

그녀는 구시대의 관습을 척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루쉰의 본처 '주안'이다. 중국 근현대 문학의 대문호이자 사상가 · 혁명가인 루쉰(1881~1936. 대표작 <아Q정전>, <광인일기>)과 결혼했지만 단 한 번도 부인인 적 없는 비운의 여인이다.

그녀는 루쉰에게 그저 '어머니가 강제로 맺어준 여인'에 불과했다. 청나라 말기 낡은 관습이 몸에 밴 시어머니 취향 주안은 마지못해 결혼한 루쉰에게 신혼 첫날부터 홀대를 당했다. 루쉰의 그림자 안에서 늘 무시되어 평생 시어머니 봉양이 자신의 몫인 줄 알고 '며느리'로만 살았던 여인이다. 주안은 일방적 희생과 고립 속에서 생을 마감한 고독한 인물이다.

고독 속에서 살았던 주안의 유일한 평전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주안전>은 세상 사람들에게 잊혔다가 다시 떠오른 한스러운 여인의 슬픈 이야기다. 여성의 고통과 사회적 모순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전족 한 쌍에 눈물 두 동이'란 중국 옛 속담은 그녀의 처절했던 일생을 그대로 노출한 상징이라 보아도 된다. 그녀는 발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묶인 정신적 전족도 견뎌야 했으니까.

 작가 '차오리화'의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주안전》, 파람북 출판.중국 대문호 루쉰의 그늘 속에 오랫동안 가려졌던 본부인 주안의 적막한 삶을 써내려간 유일한 평전
작가 '차오리화'의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주안전》, 파람북 출판.중국 대문호 루쉰의 그늘 속에 오랫동안 가려졌던 본부인 주안의 적막한 삶을 써내려간 유일한 평전 ⓒ 파람북

명분뿐인 주안의 내밀한 삶은 저항의 상징인 루쉰의 흠결로 간주되어 언급조차 금기시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억압된 존재 주안을 재해석하여 우리 곁에 가까이 갖다 놓은 전기적 장르다. 비로소 주안에게 이름을 달아주고, 침묵당한 말을 꺼내 주었으며 외면당한 감정을 돌봐주었다.

외로움에 지친 주안의 삶을 온전히 회복시키기 위해 루쉰기념관 연구원이자 작가인 차오리화는 주변 인물들의 구술 · 문자 · 실물 사료를 종합적으로 다듬어 평전을 완성했다. 주안의 박복한 삶과 우리가 미처 몰랐던 루쉰의 이면이 차오리화의 펜 끝에서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려나간다.

주안의 절규이자 작가의 시선이 응축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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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들은 항상 루쉰의 유물은 보존해야 한다 보존해야 한다 말하는데, 나도 루쉰의 유물이라네! 나도 좀 보존해 주게나!(305쪽)"

생계 때문에 루쉰의 장서를 매각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류하기 위해 방문한 문화계 인사들에게 주안이 던진 말이다. 사는 내내 이방인처럼 소외를 감내했던 비참한 여인이 세상에 대고 처음으로 토해낸 절규다.

사람들은 루쉰이 죽은 뒤 그가 사용하던 책상, 원고, 책 등은 유물로 보전하려 애쓰면서 그의 곁을 지켰던 인간 주안은 기억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루쉰의 장서를 팔이야 할 만큼 장기간의 궁핍한 생활에 지친 그녀를 돌보려는 시도는 어디에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남성 중심 · 성취 중심 가치관은 그녀를 기록에서 삭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기에 주안의 이 말은 존재 회복의 요청이면서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항변이기도 하다. 자신의 존재를 '유물'로라도 상기시키고 싶었던 마음을 이 말로 드러낸 것이다. 살아있는 나를 잊지 말라는 주안의 메시지는 무심한 듯 단호하다.

주안의 이 말은 책을 관통하는 작가의 시선이자 응축된 문장이기도 하다. 이 한마디는 '기억의 정의'를 다시 쓰려는 작가의 시도와 같다. 위대한 인물 곁의 보통 사람, 역사 속 잊힌 사람, 남성 곁의 여성까지 함께 복원해야 마땅하다는 '차오리화'의 윤리적 외침이다. 기억되지 못한 사람도 역사의 일부이며 그들을 기록할 때 비로소 역사는 완성된다고 선언한 것이다.

​낡은 결혼 제도의 피해자 주안과 루쉰의 차이

기록에서조차 배제된 주안의 일생이 비극이라면 이 비극을 만든 사람은 루쉰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견지에서 본다면 논란의 여지도 충분하다. 그러나 루쉰의 어머니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결혼 당시 루쉰은 이미 신문화 운동에 호응하는 지식인으로 봉건 현실과 유교 사상을 비판하며 개혁과 변화를 촉구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강제 중매혼은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잘못된 만남으로 루쉰과 주안 모두에게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생각과 방식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당시 중국 봉건 사회에서 의식화된 결혼 문화의 특징은 '부모님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효도'였다. 루쉰은 이 결혼을 감정적으로는 수용할 수 없었지만 어머니를 거역할 수 없어 시종일관 정중했다. 루쉰도 스스로 선택권이 없었던 낡은 결혼 제도의 희생양이긴 주안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주안의 비극을 초래한 근본 원인은 시대적 · 사회적 · 정신적 구조에서 찾는 것이 옳은 듯하다.

루쉰은 제도의 희생자지만 봉건의 구조적 사슬을 끊어야 한다고 저항한 인물이다. 다만 그 칼날이 밖으로 향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지만 주안의 고통에는 닿지 못했다. 국민은 깨우치려 했지만 가정 속 불행에는 침묵한 셈이다.

반면 주안은 루쉰과 같은 희생자면서도 그 구조 속에서 지워진 무명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녀가 살았던 사회는 그녀에게 비판할 언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정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적 틀 속에 갇혀 구조적 모순의 상징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주안은 루쉰의 사상과 사적인 삶 사이 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주안이다. 늘 루쉰의 이름 뒤에 가려졌던 인물이지만 차오리화의 손 끝에서 비로소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잊힌 여인이 세상의 중심으로 소환된 것이다. 그녀의 감정, 고통, 인내가 드디어 보존의 힘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는 주안에게 존엄의 회복을 선물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민족의 등불인 루쉰에겐 인간적 결함을 드러낸 작품일 수 있다. 그렇다고 작가가 루쉰의 정신을 훼손하려는 건 아닌 듯하다. 그를 더 이해하기 위한 재검토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인간으로서의 루쉰을 구원하려 했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다고나 할까.

작가는 작품 속에서 '보존'의 의미를 물질 넘어 인간으로 확장시켰다. 진정한 유물은 위대한 인물이 남긴 책, 사상, 유품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낸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그 사람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들어줄 때 역사는 지속된다고 힘주어 선고한다. 한 사람을 구할 수 있을 때 세상도 구해지는 것이라고 전하는 작가의 반격에서 사람에 대한 온기와 책임이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주안전

차오리화 (지은이), 김민정 (옮긴이), 파람북(2023)


#루쉰#주안전#차오리화#전족#봉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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