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길 위의 인문학' 수업이 안양역에서 시작되었다. '안양의 길을 걷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시 쓰기 강좌로 다섯 번째 수업이었다. 도서관에서 밖으로 나와 안양의 역사와 시인의 흔적을 답사하는 일정이었다.
한명원 시인은 수강생을 인솔해 안양의 역사와 기형도 시인의 시작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한 수리시 동인회에서 기형도 시인과 함께 활동한 조동범 안양작가회의 회장이 참석해 진행을 도왔다. 답사에 참여한 수강생은 석수도서관에서 준비한 간식과 자료를 받고 송수신기를 착용했다.
길에서 만난 시인의 흔적

▲안양일번가에서 시인의 흔적을 따라 가는 길기형도 시인은 안양에서 군 생활을 하며 수리시 동인회 활동을 했다. ⓒ 김은진
한 시인이 기형도의 시작 메모를 낭독하면서 안양원도심을 향했다.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시작 메모
기형도 시인은 안양에서 군 생활을 하며 안양의 작가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수리시 동인지에 <사강리> 등을 실었고 <안개>, <폐광촌>, <나리나리 개나리> 등 초창기 작품을 안양에서 습작했다고 한다. 그때 시인들이 자주 다니던 다방과 찻집은 현재 다른 업종으로 변경됐지만 장소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카페 '그날 저녁 꽃놀이 떨어지는 하늘을 배경으로'와 '안양다방'이 시인들이 자주 모이던 장소였는데 이름만 들어도 그 시절의 낭만적인 감성이 느껴졌다. 이곳에서 수리 시 동인회 사람들은 시 낭송회를 하고 독서 모임도 진행했다고 한다. 당시 수리시동인에 참여했던 조동범 시인의 시를 읽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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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은 간판만이 심야를 밝혀주는,
은빛 조각 서늘하게 빛나던 심야 아이스크림 판매점
위로 하현달이 하늘을 가르고 있다.
깊고 깊은
심야의 아이스크림 판매점.
- 조동범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중에서
잠시 그 시절의 암울한 분위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더 힘겨운 역사의 흔적으로 향했다.

▲서이면사무소22일, 석수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수업 중 김정남 안양시문화관광해설사가 서이면사무소의 연혁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 김은진
일제 강점기 안양, 서이면사무소에 보존된 수탈의 기록
일행은 안양일번가에 있는 서이면사무소에 도착했다. 김정남 안양시문화관광해설사가 서이면사무소의 연혁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1914년 4월 1일 과천군 상서면과 하서면이 통합하여 서이면으로 불렸고, 면사무소가 호계도서관 부근에 위치했다고 한다. 1917년 7월 6일 현 위치로 이동되었고, 1941년 10월 1일 시흥군 안양면사무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일제강점기 면사무소는 조선총독부의 최하위기관으로 징용대상자를 관리하고 지역의 산물을 수탈하는 업무를 했다고 한다.
이 공간은 2003년 안양시에서 용지를 매입하고 복원을 통해 재탄생했고, 일제강점기 수탈과 안양지역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국민들은 토지를 빼앗기고 징용에 끌려갈 때 적극적으로 친일에 가담해 부를 축적한 사람이 있다. 바로 친일 반민족행위자 박흥식이다. 그는 화신백화점을 기반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안양에 비행기 공장과 비행장을 건설하려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서이면사무소에는 식량배급통장이나 뽕나무밭 품평회 상장 등이 보존되어 전시 중이었다. 김정남 안양시문화관광해설사는 당시 우리 국민들은 토지를 다 빼앗긴 상태에서 농사를 지으면 쌀은 일본으로 가져가고 잡곡을 배급 받았다고 했다. 뽕나무밭 품평회는 많은 군수 물품이 필요했던 일제가 더 많은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대회라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안양지역 독립운동가의 활동이 이곳에 잘 전시되어 있고 영상으로도 볼 수 있었다.
김구 선생의 특명으로 일본군 내 한국인 포섭 등 공작 활동을 전개하고 홍콩에 파견되어 상해 지하 활동을 전개한 이재현 지사, 화랑사를 조직하고 화랑보를 발행하며 김구 선생의 지도 아래 한국상해소년동맹조직위원장에 취임한 이재천 지사, 1905년 이토 히로부미가 열차에 탑승했을 때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트려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에 여러 상처를 입힌 원태우 지사, 안양 지역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한 이영래 지사, 안양과 시흥 지역의 농민 수천 명이 참여한 농민 봉기를 주도한 하영홍 지사 등 목숨을 걸고 일제에 맞선 독립 운동가들이 많았다.

▲삼덕공원에서한명원 시인이 공장이 많았던 안양의 옛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삼덕공원은 삼덕제지 공장이 있던 곳으로 기부를 통해 이곳은 현재 공원으로 변모되었다. 기형도 시인의 <안개>는 당시 안양천변을 거닐며 탄생했다고. ⓒ 김은진
길 위에서 시를 쓴 기형도 시인
잠시 카페에서 휴식을 취했다. 수강생 몇 분이 기형도 시인의 <안개>와 <엄마 걱정>을 낭독했다. 예전 안양 지역에는 하천을 따라 공장들이 많았다. 특히 섬유 공장과 제지 공장이 많았는데 굴뚝에서 매연이 많이 나고 하천이 오염되어 겨울에도 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기형도 <안개> 중에서
일제강점기 병목안에는 채석장이 있었다고 한다. 채석한 돌을 안양역까지 실어 가가기 위해 화물 열차가 다니는 철길이 있었는데 현재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곳으로 이동해 다시 기형도 시인의 <폐광촌>을 낭독했다.
새벽은 화차 속의 쓸쓸한 파도를 한 삽씩 퍼올렸다.
땅속 깊이 불을 저장하고 우리는 일어섰다.
날음식처럼 축축한 톱밥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곧이어 바람으로 불려갈 석탄에 삽날을 꽂으며 이제는
각자의 생을 퍼 담아야 할 차례였다.
-기형도 <폐광촌> 중에서
한명원 시인은 이날 수업을 통해 좋은 시를 쓰려면 여러 장소를 찾아가 자세히 관찰해 보길 권했다. 한 시인의 경우, 아이가 동물을 좋아해서 자주 동물원에 갔다. 어느 가을날 과천 동물원에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낙엽이 왕관처럼 느껴졌고 그녀의 대표작 <조련사 K>에 그 느낌을 담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한 시인은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일상과 사실 속에 생각이나 느낌을 녹여내는 연습을 하라고 조언했다.
지난 3차시 수업에서는 동양의 자연철학과 서양의 과학적 분석, 개인 중심의 철학이 역사와 함께 글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강의한 바 있다. 동양과 서양의 시를 낭송하고 감상하며 수강생들이 어떤 글을 쓸지 길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사진과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자신의 글에 담아보길 권했다. 또 한 시인은 시를 쓸 때 자칫 감동을 감정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했다. 한 시인의 말이다.
"가수는 자신이 노래 부를 때 곡 해석을 잘해야 청중한테 잘 전달할 수 있듯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수가 노래 부를 때 울면 안 되는 것처럼 글도 감정에 휩싸이면 객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4차시 수업에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영화 <일 포스티노>를 감상했다.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우편배달부는 네루다에게 시를 어떻게 쓰는지 묻는다. 좋은 시를 쓰고 싶은 분들이 참고할 만한 영화다. 매주 수요일 석수도서관에서 열리는 시 강좌를 통해 수강생들의 시에 대한 열정이 단풍처럼 물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