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12월 20일 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제10회 선고 공판에서 김재규 피고인이 법정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고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이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보안 유지를 당부하며 "북괴가 알면, 오판하고 쳐내려오면 큰일"이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변호인단은 이 발언 등 여러 정황을 토대로 '내란 목적 없음'을 입증하고자 애썼다.
22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재판장 이재권 부장판사)는 김재규 부장의 재심 4차 공판에서 당시 그의 운전 담당 유석문씨의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유씨는 10.26 사건 당일 궁정동 안가에서 대기하다가 오후 7시 45분경 '차를 대라'는 지시를 받았다. 서둘러 차를 준비하자 김재규 부장과 수행비서관 박흥주 대령, 김정섭 중정 2차장보, 그리고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 1명이 올라탔다. 유씨는 추후 정승화 총장임을 알게 됐다.
"남산 막 들어섰는데... '육본으로 가자'로 바뀌었다"
첫 행선지는 중정 사무실이 있는 남산이었다. 유씨는 "박흥주가 빨리 가자고 해서 광화문 사거리를 건너면서 광교 쪽으로 나가니 좌회전이 금지돼 있는데 위반했다"며 "(삼일)고가도로로 해서 남산 우리 정보부 입구로 막 차가 들어섰는데 '육군본부로 가자'로 바뀌어서 거기서 차를 돌려서 육군본부로 갔다"고 말했다. 그는 김재규 부장이 '박 대령 어디로 가지? 남산? 육본?' 했고, 정승화 총장이 '육본으로 가자'고 했고, 박흥주 대령도 동의하면서 행선지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육본으로 가던 중 김 부장이 정 총장에게 '이건 꼭 보안을 지켜야 된다. 북괴가 알면, 오판하고 쳐내려오면 큰일이다'라고 얘기한 내용을 들었다. 그는 과거의 진술을 재차 유지하며 "그때까지도 대통령이 돌아가신 줄은 몰랐다. 북괴가 오판한다는 얘기는 '대통령이 계신데 갑자기 왜 그러지?' 의아하게는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다만 김 부장이 정 총장에게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웠다가 아래로 내리는 동작을 취하는 모습은 운전석 거울로 목격한 상태였다.
육본으로 차를 돌린 다음, 김재규 부장은 체포됐다. 유씨는 여전히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10월 27일 오전 3시경 박흥주 대령이 뛰쳐나왔다. 유씨는 박 대령의 집에 들렀다가 행당동, 금호동, 잠실 등 서울 시내 이곳저곳으로 운전대를 몰았다. 유씨는 "박흥주 대령이 김재규 장군 있는 데서 분위기를 보고 빠져나와서 가족을 보고 피신하는 것 같이 돌아다녔다"며 "'큰일이 났구나' 짐작으로만 알다가 새벽 뉴스 나오는 것을 보고 그때 (박정희 대통령 사망을) 알았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한참 서울 시내를 배회할 당시 박 대령은 유씨에게 '총을 달라'고 했다. 유씨는 "'자기 총을 놔두고서 왜 내 총을 달라고 그러나' 굉장히 의아스럽게 생각했다"며 "5시반 뉴스를 듣고 나서 알았다. 자기들이 (대통령 등을 저격하느라) 총을 다 쏴서 총알이 없었다. 그런데 아마 내 총으로 자결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설득시켰다. '이러면 되나. 어차피 대통령은 돌아가셨는데 우리 이문동(중정 본청)으로 가자'고"라고 증언했다.
북 도발 걱정한 김재규, 정말 내란 목적? 불법 수사 정황도
김재규 부장 재심의 핵심 쟁점은 '내란 목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했는가' 여부다. 변호인단은 그가 박 대통령 사망 후 북한의 도발을 걱정했고, 갑작스레 행선지를 중정이 아닌 육본으로 바꾼 모습 등에 비춰볼 때 '내란'을 일으킬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지난 9월 24일 3차 공판에선 "자유민주주의를 해야 할 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하지 않고 독재를 하는데"라며 박 대통령의 유신독재를 비판한 김 부장의 군사법원 최후진술 녹음파일도 증거로 제출했다.
변호인단은 당시 수사와 재판의 위법성도 주장하고 있다. 유석문씨는 1979년 10월 27일 오후 이문동 본청에서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10월 31일 군사경찰 조사를, 11월 19일 군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기록돼있다. 유씨는 "나한테 위협하거나 폭력적인 건 없었다"면서도 체포 후 군검찰 조사를 받을 때까지 줄곧 서빙고 분실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20여일 간 구금된 후 "석방되고 나서 정신적으로 굉장히 심각해서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도 진술했다.
중정 소속 궁정동 안가 경비원으로 김재규 부장 등과 함께 재판을 받았지만, 유일하게 사형을 피한 유석술씨도 이날 증인으로 나와 불법 수사 정황을 증언했다. 그는 10.26 사건에 가담한 팀장 이기주씨의 부탁에 김재규 부장의 총을 숨겼던 혐의로 기소됐다가 전후 사정을 몰랐던 점이 참작돼 징역 3년을 살았다. 그런데 사건 이틀 뒤인 10월 28일 보안사로 연행됐던 유씨는 당일 작성된 자신의 진술서를 보더니 "전체 글씨는 제 글씨가 아니고, 사인(서명)은 제가 했다"고 말했다.
- 검사 "그 당시 진술한 것을 다 읽어보고 서명날인을 했는가?"
- 유석술씨 "전체적으로는 읽어보지 않은 것 같다."
- 검사 "본인이 기억나는 대로 쭉 불러주고... (수사기관에서 받아적었고) 내용은 확인했는가."
- 유석술씨 "전체적으로 보진 않은 것 같다."
유석술씨는 폭행이나 회유, 협박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진술서를 반복적으로 쓰는 상황이 이어졌다. 유석문씨도 보안사가 "1년 전부터 내가 한 것, 김재규를 태워갖고 어디를 갔는지 등 내 행동에 대해서 모든 것을 쓰라고 했다. 쓰고 나면 또 쓰라고 했다"고 말했다. 불법감금, 진술 강요 등은 위법한 수사방식에 해당하며 당사자가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을 수 있다. 이 또한 김재규 부장 재심의 주요 쟁점이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인 11월 26일에는 10.26 사건 현장에 있었던 가수 심수봉씨와 김재규 부장을 내란목적 살인으로 기소했던 전창렬씨의 증인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 부장은 재판 과정에서 '각하,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고 한 다음 총을 쐈다고 했지만, 심씨는 저서 등에서 해당 발언을 들은 적 없다고 얘기해왔다. 전씨는 2004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출석해 '김재규가 민주화를 위해서 10.26을 했다는 행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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