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희 교수는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에 걸쳐 드러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강한 성찰과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 김명희
[인터뷰] "자녀 살해, 노인 살해, 간병 살인... 한국 사회, 가족의 위기다" ①
한국 사회의 높은 자살률과 고독사 문제가 개인의 심리적 차원을 넘어 사회 구조적 병폐로 대두되고 있는 건 비단 어제오늘일만은 아니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경쟁 시스템이 심화시키는 세대·계층 간 불평등은 우리 사회의 양극단, 즉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에게 치명적인 실존적 위험으로 작용하고 있다.
삶의 기반이 위협받는 청년들은 이러한 경쟁 구조에서 비롯된 깊은 상대적 박탈감과 항구적인 불안에 시달리며 자살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노년 세대 역시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자살률과 높은 상대적 빈곤율이라는 믿기 힘든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경제적 빈곤, 만성 질환, 돌봄의 공백, 심리사회적 고립이라는 중층적인 위험 요인 속에서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건, 여러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 동안 강조해왔던 사실이다. 특히, 농촌 및 인구감소지역 고령 인구의 높은 자살률은 지역 사회의 빈곤과 고립 문제가 노인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전 세대에 걸쳐 나타나는 구조적 절망의 징후는 한국 사회 전체의 근본적인 성찰과 제도 개혁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김명희 교수는 "'불평등한 경쟁 구조가 청년들의 자살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여러 차례 제시됐다"며, 이는 단순한 개인의 심리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강조했다. 전 시간에 이어 더욱 심도 있는 이야기를 김 교수와 주고 받았다.
구조적 편견 먼저 해소해야 본질 접근
-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 경쟁 시스템' 속에서 특히, 청년 세대가 느끼는 압박과 위험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나.
"보건복지부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취업난과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는 20·30대 고독사 사망자는 지난 5년간(2019~2023년) 매년 200명을 꾸준히 넘어서고 있다. 청년 고독사의 경우 병사(病死)에 의한 비율이 높은 노년층과 달리 자살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청년 세대의 삶에 대한 압박이 곧 생존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급증한 20·30대 여성의 자살률은 이 같은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청년들이 겪는 실존적 위기와 불안은 현재의 일자리 문제와 미래의 노동 불안정성과 맞닿아 있다. 일자리의 문제는 곧 '살 자리'와 '설 자리'의 문제로, 이를 단순히 심리적 치유나 마음건강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때문에, 청년 자살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자체에는 구조적 편견이 깔려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청년을 복지 제도 바깥의 존재, 즉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과도기적 존재'로 본다. 이런 위계적이고 차별적인 인식이 청년의 고립과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 관련 정책으로 주로 '정신건강 관리'나 '힐링'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런 '개인 심리치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는데.
"자살을 예방하려면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정신건강 관리나 고위험군에 대한 심리·의료적 지원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세대별, 계층별, 위기집단별 자살 위험 요인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실효성 있는 사회적 예방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의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 인권침해적 업무환경과 차별 규제, 경쟁체제 완화와 돌봄·건강 강화는 서로 관련된 과제다. 때문에 자살의 근본 원인과 과정을 깊이 이해하고 이에 맞는 장기적 해법 마련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2023~2024년 시·도별 자살 사망자 및 자살률2024년도 자살 사망자 수는 1만4,439명으로,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28.3명이었다. ⓒ 보건복지부
- 한국은 고령화 사회 속에서 노인 자살률도 높다. 지역 간 편차도 크고.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으며, 전체 연령대보다도 현저히 높다. 올해 8월 3일 보도된 <경향신문>에 따르면 매년 약 3000명, 하루 평균 10명가량의 노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노인 자살은 청년층과는 다른 원인과 특성을 지니기에, 그에 맞는 별도의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주목해야할 지표는 OECD 국가 가운데 노인들의 상대적 빈곤률도 38.2%로 압도적인 1위라는 점이다. 2023년 기준 농촌 자살률은 도시보다 1.2배 높고, 인구감소지역의 89곳 중 67곳의 고령 인구 자살률은 평균 자살률보다 높다.
이 같은 여러 지표는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 복지 지원망의 공백과 의료 불평등이 맞물려 노인 자살을 방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인간은 서로 의존하는 관계적 존재다. 노인 일자리 확대와 함께 지역사회 돌봄 중심의 통합적 건강(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을 모두 포괄) 증진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걸 나타낸다."
핀란드와 영국의 사례
- 해외의 자살률 감소 사례를 보면, 사회 정책과 안전망 확충이 빠지지 않는다.
"자살률의 단기적 감소보다, 어떤 사회적·정치적·경제적·문화적 조건에서 낮은 자살률이 나타나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OECD 국가 중에서는 사회복지 지출이 높을수록 자살률이 낮은 경향을 보이는데, 주로 북유럽과 서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이에 해당한다. 핀란드는 탄탄한 복지시스템 위에 연구 기반의 자살예방 전략을 결합해 자살률을 낮춘 대표적 국가다. 최근 많은 국가가 유엔(UN)과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 따라 국가 정신건강 정책과 자살예방 계획에 권리 기반 원칙을 통합하는 추세기도 하다."

▲영국은 노인의 외로움을 사회 문제로 보고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를 신설했다. ⓒ Pixabay
- 전 시간에 답변하신 대로 자살을 사회정의 문제로 보고 근본 원인 해결을 촉구하는 '비판적 자살학'적 접근과 예방 실천이 중요해 보인다.
"이 질문에 적합한 사례로 영국을 들 수 있다. 영국은 노인의 '외로움'을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보고, 2018년 1월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설립했다. 루이스 애플비(Louis Appleby) 교수는 자살 예방을 정신 건강 문제를 넘어 사회정의 실현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관점은 사회적 불평등과 취약성이 자살 위험을 높인다는 인식에 기반해,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자살 예방 전략을 강조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 서이초 사태와 이태원 참사 등에서 드러난 교사와 소방구조대원의 집단적 고통을 극복하려면, 책에서 말한 '연대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제도나 방안이 필요할까?
"자살은 우울증을 앓는 개인의 문제나 불운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생명권과 안전권, 사회권과 행복추구권의 문제다. 이에 맞는 정책적 실천을 촉구하고, 시민들이 연대와 참여로 책임을 나눠야 한다. 국가와 사회가 자살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고, 기존의 전문성 중심 관행을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자살을 '극단적 선택'으로 명명하던 오랜 보도 관행에 대한 반성과 문제제기가 시정의 노력을 낳은 것처럼, 자살을 개인 질병으로 보는 기존 법과 관행을 사회적 재난과 인권 관점에서 재정의하고, 이에 맞는 제도적 실천이 필요하다."
-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처음에 언급했듯, 이 책은 토론을 위해 쓴 책이다. 이러한 토론이 필요한 이유는 기존 자살 연구와 예방 실천 과정에서 학문적, 사회적, 분야별 전문가 간의 경계가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자살 문제를 나누어 온 여러 칸막이를 넘어서는 토론에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앞서 김명희 교수와의 인터뷰 1편에서는 우리 사회의 높은 자살률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불평등과 경쟁의 산물임을 짚어봤습니다. 2편에서는 그 연장선에서 청년 세대가 느끼는 사회적 압박과 함께,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노인 자살률 문제를 다뤘습니다. 노년층의 높은 자살률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위기 신호로, 세대 전반의 삶의 불안을 보여줍니다. 이번 글을 통해 우리는 이 현실 속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가야 할지 여러분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