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충남 홍성군의 한 논에서 콤바인이 벼를 수확하고 있다. ⓒ 이재환
가을 수확기이지만 충남 지역의 농촌은 비상이다. 최근 연일 내리고 있는 비 때문에 논이 마르지 않아 벼 베기를 늦추는 농가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수확을 앞둔 벼와 파종을 앞둔 마늘에서는 싹이 자라서 상품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9월 초에 심어둔 김장 배추도 병이 들어 시들고 있다.
지난 15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한 논에서는 콤바인이 기계음을 내며 벼를 베고 있었다. 모처럼 맑아진 날을 틈타 벼를 수확하고 있는 것. 하지만 잦은 비로 물이 빠지지 않은 논은 마치 바닷가 갯벌처럼 진흙탕으로 변해 있었다. 홍동은 젊은 귀농인이 많은 마을이다. 기계 작업에 익숙한 젊은 농민에게도 진흙탕이 된 논은 작업하기가 쉽지 않다.
콤바인을 운전하고 있던 농민 A씨는 기계를 멈춰 세웠다. 그는 기자에게 "평소보다 작업이 더디다. 작업 시간이 1.5~2배 정도 더 걸리고 있다"라며 "여기는 물이 많은 논이다. 여름에 잘 말리면 괜찮은데 요즘 비가 많이 와서 논이 좀처럼 마르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상당수의 농민들은 벼 수확 날짜를 잡지 못 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충남 서부 지역은 오는 18일까지 비 예보가 있다. 농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9월 김장을 위해 심은 배추가 무름병에 걸려 썩었다. ⓒ 이재환
김오경(홍성) 농민은 "벼 베는 날짜도 못 잡고 있다. 계속 비가 와서 볏대와 이삭이 마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논에 콤바인이 들어가는 것도 어렵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 절반 정도 수확을 했을 텐데, 전혀 수확을 하지 못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벼를 수확해도 예년해 비해 수확량이 현저히 떨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김희봉 전 당진시 농민회장도 "10월 말경이면 벼 수확이 거의 끝나야 한다. 하지만 올해는 11월 초는 돼야 벼 수확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산골 수렁논(진흙 웅덩이 논)의 경우에는 수확을 포기하는 논도 나올 것 같다. 논에 기계가 들어갔다가 자칫 빠지기라도 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파종을 위해 망에 담아둔 마늘에 싹이 났다. 싹이난 마늘은 심을 수도 없고, 깐마늘로 팔 수도 없다. ⓒ 이재환 -독자제공
가을에 심고 이듬해 봄에 수확하는 마늘은 파종조차 못 하고 있다. 파종을 하지 못 한 마늘에서는 싹이 돋아나고 있다. 이 또한 비 때문이다.
임병택(청양) 농민은 "마늘 농사를 1만 평 정도 짓고 있다. 하지만 요즘 비가 많이 와서 마늘을 심을 수가 없다. 이미 마늘을 심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라며 "파종 시기가 늦어지면서 마늘에 이미 싹이 나 있다. 모두 버려야 하는 상황이다. 싹이 난 마늘은 밭에 심을 수도 없고 깐마늘로도 팔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벼농사도 비상이다. 쓰려진 벼에도 싹이 났다. 벼를 베지도 못 하고 있다. 싹이 난 벼를 수확해도 도정을 하면 가루가 돼 사라져 버린다"라고 덧붙였다.
올해 김장도 '비상'이다. 김장의 주재료인 배추와 쪽파도 피해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농해 20년 이상 농사를 짓고 있는 베테랑 농민도 한숨 쉬고 있다.
곽현정(홍성 장곡) 농민은 "김장을 하려고 9월 초에 심은 배추에 무름병이 와서 잎과 뿌리가 썩고 있다. 쪽파도 자라기도 전에 끝이 노랗게 변하고 있다. 쪽파 파종을 다시 하는 농가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밭이나 논이나 요즘은 비가 오면 안 되는 시기다. 때 아닌 비로 난리가 난 상황이다. 올해 같은 흉년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정말 큰일 났다는 가을장마 그후 #흉작
이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