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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6 11:34최종 업데이트 25.10.16 11:34

고무장갑에 푸바오 인형까지, 분실물이 말하는 기억들

일정 마친 관광버스 안에서 짐작하는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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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을 마치고 차고지로 돌아온 버스를 정리하다 보면, 가끔 그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발견한다. 좌석 밑이나 선반 위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물건들. 지갑이나 우산, 이어폰 같은 익숙한 분실물도 많지만, 작은 로봇이나 분홍색 고무장갑, 김치 한 통, 쟁반, 각도기 세트, 인형처럼 뜻밖의 것들도 종종 눈에 띈다. 그럴 때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을까.'

청소를 마친 전세버스 내부. 운행을 마치고 차고지로 돌아온 버스를 정리하고 남긴 사진.
청소를 마친 전세버스 내부.운행을 마치고 차고지로 돌아온 버스를 정리하고 남긴 사진. ⓒ 오지은

전세버스는 대부분 '특별한 날'을 실어 나른다. 학교 체험 학습, 효도 관광, 단체 나들이처럼 평소엔 잘 가지 않던 길을 향하는 사람들. 그래서 버스에 남는 물건들은 그 하루의 온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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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엔 김장 체험을 다녀온 듯한 기모 고무장갑이, 봄에는 아이들이 만든 태양열 로봇이 좌석 밑에서 발견된다. 에버랜드에 다녀온 날엔 손바닥만 한 푸바오 인형이, 어느 날은 관광지 마그넷이 굴러다닌다. 그 물건들만 봐도 그날의 풍경과 사람들의 표정이 그려진다.

흥미로운 건, 잃어버린 물건의 종류에 따라 주인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지갑이나 블루투스 이어폰처럼 늘 쓰던 물건은 금세 찾으러 온다. 하지만 체험 활동 중 만든 작품이나 여행지 기념품은 그대로 남는 경우가 훨씬 많다. 당연히 물건마다 가치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 하루의 경험이 이미 마음속에 충분히 남았기 때문 아닐까.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물건들은 내가 근무하는 여행사 사무실 한편에 일정 기간 보관된다. 사무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을 바라보면 그 안에서 흘러나왔을 웃음 소리, 설레며 집어 들었을 순간, 집중해서 만들었을 손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누군가의 하루가 그렇게, 작은 물건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만든 태양열로 움직이는 미니 로봇들. 분실물로 접수된 지 5년이 훌쩍 넘은 태양열 로봇들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찍어둔 사진. 만들 당시 꼬마였을 로봇의 주인들은 이제 청소년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만든 태양열로 움직이는 미니 로봇들.분실물로 접수된 지 5년이 훌쩍 넘은 태양열 로봇들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찍어둔 사진. 만들 당시 꼬마였을 로봇의 주인들은 이제 청소년이 되었을 것이다. ⓒ 오지은

버스 안 분실물은 어쩌면 사람들의 '하루 기록'이다. 평범한 일상이 아닌, 조금은 특별했던 하루의 흔적. 그 하루가 지나면 사람들은 떠나고, 그 여정의 작은 단서들이 조용히 남는다. 버스는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를 싣고 달린다. 그리고 그 하루는 때때로 물건의 형태로 다시 돌아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전세버스#여행#관광버스#분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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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omarron) 내방

10년째 여행사를 운영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길 위 이야기를 기록해왔습니다. 일상의 작은 경험에서 사회적 의미를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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