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누구나 '열심히 사는 법'을 알고 있다. 스마트폰은 매일 할 일을 쏟아내고, 생산성 앱은 분 단위로 우리의 효율을 관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점점 더 지쳐간다. 할 일을 줄이기보다 스스로를 다그치며 완벽한 하루를 만들려 애쓴다. 그런 나에게 피터 홀린스의 <나태한 완벽주의자>는 뜻밖의 위로였다.

▲나태한 완벽주의자책표지 ⓒ 넥서스BIZ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하루가 저문 적이 있다. 내일은 꼭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또 내일이 되면 "지금은 컨디션이 안 좋아"라며 미루곤 했다. 나는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라 생각하며 자책했다. 책을 읽고 난 후, 게으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책은 게으름을 '의지 부족'이나 '성격 문제'로 보지 않는다. 홀린스는 "게으름은 잘못된 감정 관리와 비효율적인 사고 습관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한다. 해야 할 일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미 부담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싫은 일'로 규정하고, 감정적으로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회피를 택한다는 것이다. 즉, 게으름은 나약함의 결과가 아니라 두려움과 부담이 만들어낸 심리적 방어에 가깝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완벽주의가 게으름을 만든다는 지적이었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시작을 막는다. 나 역시 글을 쓸 때마다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해'라며 미뤘던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홀린스는 말한다.
"완벽은 시작의 적이다. 완벽하게 하려는 순간, 행동은 멈춘다."
그 문장을 읽으며 마음이 뜨끔했다. 결국 미루는 이유는 게으름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는 완벽주의였던 것이다.
홀린스가 제안하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완벽한 계획이나 높은 동기부여보다 중요한 건 '작게 시작하라'는 것이다. 단 5분이라도 책상 앞에 앉고, 한 줄이라도 써보는 것. '시작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 중요하다. 실제로 그렇게 해보면 놀랍게도 흐름이 생긴다. 그는 완벽한 계획보다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행동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또한 '게으름에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라고 강조한다. 죄책감은 에너지를 소모시킬 뿐,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나태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다. 저자는 "자기비판은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 뿐, 행동을 바꾸지 못한다"라고 단언한다. 대신 '게으름도 인간의 일부로 받아들이라. 그리고 다시 시작하라"라고 말한다. 이 조언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조언은 "자기비판 대신 자기수용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우리는 조금만 나태해져도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홀린스는 죄책감은 에너지를 갉아먹을 뿐,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신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진짜 출발점이다.
"게으름을 인정하라. 그리고 다시 시작하라."
이 문장은 요즘처럼 번아웃이 일상화된 시대에 더 크게 다가왔다.
책이 제시하는 실천법들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해야 할 일 작게 쪼개기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루틴 만들기
*에너지 흐름을 인식하고 관리하기
*일의 '의미' 보다 '시작' 에 집중하기
이런 방법들은 완벽한 의지나 결심이 없어도 행동할 수 있게 돕는다. 결국 게으름의 반대말은 부지런함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쉬어야 한다'는 말조차 계획표에 넣어야 하는 시대다. 쉼은 게으름으로 오해받고, 여유는 뒤처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홀린스의 말처럼, 나태는 게으름이 아니라 인간의 회복 본능일지 모른다. 잠시 멈춰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스스로에게 조금 너그러워졌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떠올렸다. 완벽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고, 미뤄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사실이 마음을 가볍게 했다. 나태는 게으름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일 수도 있다. <나태한 완벽주의자>는 지금 이 시대 피로한 완벽주의자들에게 "괜찮다, 다시 해보자"라고 말해주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