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와 고 오요안나 유족 측간 잠정합의문 조인식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지 13개월 만인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본사에서 열린 MBC와 유족 측 간의 잠정합의문 조인식에서 고인의 모친인 장연미 씨가 MBC 안형준 사장으로부터 전달받은 고 오요안나 명예사원증을 들고 있다. ⓒ 이정민
MBC가 고 오요안나씨가 떠난 지 1년 1개월 만에 유족에 공식 사과하고 명예사원증을 수여했다. 안형준 MBC 사장이 직접 "다시는 안타까운 일이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대국민 기자회견까지 열면서 정작 구체적인 재발방지책 언급이 빠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에서 안형준 MBC 사장과 오씨의 어머니 장연미씨가 합의문을 조인하는 합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오씨 사건 해결을 촉구하며 MBC 본사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던 장씨가 지난 5일, 단식 28일 만에 회사와 잠정 합의에 이르면서 마련된 자리였다. 이 자리엔 장씨를 조력해온 '엔딩크레딧'(방송 비정규직 노동단체) 관계자와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씨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안형준 MBC 사장은 "꽃다운 나이에 이른 영면에 든 고 오요안나씨의 명복을 빈다"며 "헤아리기 힘든 슬픔 속에서 오랜 시간 견뎌오신 고인의 어머님을 비롯한 유족께 진심으로 위로와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그러면서 "MBC는 4월 상생협력담당관 직제를 신설해 프리랜서를 비롯해 MBC에서 일하는 모든 분의 고충과 갈등 문제를 전담할 창구를 마련했고,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대우 등의 비위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도 수시로 시행하고 있다"며 "책임있는 공영방송사로서 문화방송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조직문화, 그리고 더 나은 일터를 만들어 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했다.
명예사원증 품에 안고 울음 터진 어머니..."알맹이 없는 선언에 그쳐선 안돼"

▲MBC와 고 오요안나 유족 측간 잠정합의문 조인식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지 13개월 만인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본사에서 열린 MBC와 유족 측 간의 잠정합의문 조인식에서 고인의 모친인 장연미 씨가 MBC 안형준 사장으로부터 고 오요안나 명예사원증을 받고 있다. ⓒ 이정민

▲MBC와 고 오요안나 유족 측간 잠정합의문 조인식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지 13개월 만인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본사에서 열린 MBC와 유족 측 간의 잠정합의문 조인식이 마친 뒤 MBC 안형준 사장이 MBC 본사 앞 고 오요안나 분향소를 방문,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 이정민
조인식은 오씨를 추모하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단식 후유증에서 회복 중인 장씨는 안 사장의 부축을 받아 단상에 올랐고, 두 사람은 ▲ 고인에 대한 명예사원증 수여 ▲ 이날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한 MBC의 재발방지대책 및 제도개선책 수립 약속 ▲ 고 오요안나 2주기 전까지 MBC 사옥 내 분향소 마련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했다.
오씨에 대한 명예사원증 수여도 이뤄졌다. 안 사장이 직접 오씨의 사진과 이름이 담긴 명예사원증을 건네자 장씨는 이를 가슴팍에 꼭 끌어안고는 크게 오열했다. 안 사장이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장씨를 끌어안아 위로하기도 했다.
이후 양측은 차례로 발언에 나섰다. 안 사장의 공식 사과 직후 단상에 오른 장씨는 내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울먹이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장씨는 "많은 분들의 응원과 염려, 도움 덕분에 단식 28일 만에 끝날 것 같지 않은 MBC와의 합의에 이르게 됐는데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돼야겠다고 생각하고 곡기를 끊고 회사에 재발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다"면서 "이 싸움을 하며 힘들게 일하면서도 프리랜서 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젊은이들이 많고 이것이 개인의 싸움이 아닌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 요구는 딸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제2의 요안나가 나타나지 않기 위함"이라면서 "딸의 억울한 죽음 이후 투쟁을 거치며 얻어낸 결과가 알맹이 없는 선언이 돼서는 안 된다. 하늘에 있는 요안나와 함께 MBC의 제도의 개선의 노력을 지켜보겠다"고 전했다.
조인식과 기자회견이 끝난 뒤 장씨는 안 사장, 김 이사장과 함께 나란히 MBC 사옥 앞 오씨 분향소에서 오씨를 조문하기도 했다.
조인식 뒤 이어진 '쓴소리'..."소극적 대응으론 제2의 요안나 못막아"

▲MBC와 고 오요안나 유족 측간 잠정합의문 조인식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지 13개월 만인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본사에서 열린 MBC와 유족 측 간의 잠정합의문 조인식에서 고인의 모친인 장연미 씨가 유족 측의 바람을 전달하고 있다. ⓒ 이정민
조인식 직후 MBC 경영본부와 유족 측 대리인들이 나선 기자회견에서는 기상캐스터 정규직화 방안에 대한 질문이 빗발쳤다.
이와 관련해 박미나 MBC 경영본부장은 "앞으로 MBC 뉴스 날씨와 관련한 보도는 (정규직) 기상기후 전문가가 맡아서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기존 (프리랜서) 방식으로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현재 기상캐스터들은 계약기간까지 근무하고 업무가 종료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향후 이들(기존 기상캐스터)의 처우에 대해서는 충분히 협의해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협의 내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박 본부장은 "특별히 이들이 불이익을 받을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다른 혜택이 더 있는 것도 아니다. 기존 기상캐스터만을 위한 채용 제도는 아니라는 말씀 드린다"고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이를 두고 유족을 대리해온 김유경 노무사(엔딩크레딧 집행위원)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합의문에 결론적으로 담았다"면서도 "오늘 대국민 기자회견 자리에서 재발방지책과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서 발표한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조인식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나서도 "하다 못해 재발 방지를 위해 MBC 내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를 전수조사 한다든지 포괄적인 조직 진단에 대한 얘기라도 담겼어야 한다"며 "기존에 하고 있던 상생협력관 제도만 담긴 건 새로운 약속이 아닐 뿐더러 대국민 기자회견 치고 무게감 있는 대책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함께한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는 "MBC가 기상캐스터 정규직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을 못하고 있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너무 소극적이다"고 꼬집었다. 이어 "소극적으로 마지못해 하는 식이 아니라 MBC가 나서서 기상캐스터를 비롯한 다른 수많은 직종 방송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장기적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제2의 요안나가 반드시 나온다"고 우려했다.
미디어 매체 '스튜디오 알'의 '진다' 활동가 역시 "오요안나 투쟁에 같이 결합해온 시민의 입장에서 지금 MBC의 약속에는 정확히 MBC가 어떤 방식으로 재발 방지를 하고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나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다"며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박 본부장은 "직장 내 괴롭힘이 근로자에만 국한돼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설계가 힘든 측면이 있다"면서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룰 수 있는 상생담당 협력관 자리를 만들어서 개선하는 자리도 마련했고, 회사는 계속해서 프리랜서들도 안전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노력해갈 예정"이라고 답했다.
"MBC 약속 구체성 없어 유감"... "'무늬만 프리랜서' 해결 출발점" 의의도

▲MBC와 고 오요안나 유족 측간 잠정합의문 조인식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지 13개월 만인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본사에서 열린 MBC와 유족 측 간의 잠정합의문 조인식이 마친 뒤 고인의 모친인 장연미 씨와 시민사회단체들이 ‘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명예회복 투쟁 보고대회’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조인식 직후 오씨의 분향소 앞에서 열린 '고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 명예회복 투쟁 보고대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 노무사는 이 자리에서 "방금 전 기자회견에서 안형준 사장이 발표했던 내용이 너무 유감스럽다"며 "합의문 중 오늘 바로 이행됐다고 볼만한 내용은 명예사원증 수여 한 가지"라고 꼬집었다.
이어 "안형준 사장은 오늘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면서 재발방지책 그리고 제도 개선 방안을 약속하기로 했는데 이미 시행하고 있는 상생협력관만 언급하고 끝내는 등 하나마나한 얘기만 했다"며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이행하는지 반드시 지켜봐야 한다. 구체화 방안이 없다면 합의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핵심은 기상캐스터를 포함해 방송사에서 상시 지속 업무를 하는모든 직종이 정규직이 되고 이 과정에서 기존에 일했던 인력이 갑작스레 해고되는 등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러한 보호 장치를 부속합의서에 마련했는데 연말에 이것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또 싸울 것"이라 경고했다.
김 이사장은 "죽을만큼 아팠을 요안나 엄마의 처절한 투쟁과 굽히지 않는 용기가 있었기에 오늘 MBC와 합의하고 조인식까지 진행할 수 있던 것"이라며 "이번 투쟁이 방송 현장의 '무늬만 프리랜서' 문제를 드러내고, 방송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아 목소리 낼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현철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 이사장도 "이번 합의가 100%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열악한 방송 비정규직 구조 개선의 소중한 한 걸음임은 분명하다"며 "오요안나님의 죽음, 그리고 어머님의 투쟁이 이 방송 비정규직 구조를 바꾸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MBC 프리랜서 기상캐스터였던 오씨는 지난해 9월 15일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의 어머니 장씨가 오씨의 명예회복과 MBC의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지난달 8일부터 MBC 사옥 앞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하자, MBC는 8일 만에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제도를 폐지하고, 기상기후 전문가 제도를 도입해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밝혔다. 내년 9월 15일 오씨의 2주기 전까지 MBC 사옥 내 오씨를 추모하는 분향소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MBC와 고 오요안나 유족 측간 잠정합의문 조인식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지 13개월 만인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본사에서 열린 MBC와 유족 측 간의 잠정합의문 조인식에서 고인의 모친인 장연미 씨가 MBC 안형준 사장으로부터 전달받은 고 오요안나 명예사원증을 들고 있다. ⓒ 이정민

▲MBC와 고 오요안나 유족 측간 잠정합의문 조인식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지 13개월 만인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본사에서 열린 MBC와 유족 측 간의 잠정합의문 조인식이 마친 뒤 MBC 안형준 사장이 MBC 본사 앞 고 오요안나 분향소를 방문,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 이정민

▲MBC와 고 오요안나 유족 측간 잠정합의문 조인식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지 13개월 만인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본사에서 열린 MBC와 유족 측 간의 잠정합의문 조인식에서 MBC 안형준 사장이 고인에 대한 사과, 재발방지 대책 약속, 제도 개선 촉구의 내용이 담긴 입장을 발표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 이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