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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5 10:22최종 업데이트 25.10.15 10:22

출생의 경로를 묻지 말라

비혼 출산 시대의 가족 윤리

baby 경계에 선 아이들
baby경계에 선 아이들 ⓒ reneeellisdesigns pixabay

경계에 선 아이들

정부는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세웠다. 보건복지부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전년 대비 약 6.4% 증가한 규모로, 2025년 인구 위기와 고령화 대응을 위한 예산 88.5조 원을 편성했다. 영ㆍ유아 및 부모 지원금을 포함한 출산 향상을 위한 사업 예산 28조 6천억 원을 포함한 액수였다. 지난 4월 출산율 통계에 따르면, 여성 1명의 평생 출산 예상 평균 자녀 수가 0.79명이었다. 전년에 대비하여 0.06명 증가했다고 하나,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으로 미미하다.

왜 그동안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을까.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기를 주저하는 사회에서 사는 것이 아닐까. 인구 문제는 단순한 지원 정책이나 주거 복지 문제를 넘어섰다. 그것은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감수성과 윤리의 문제다. 아무리 많은 예산이 편성되어도, 사회가 생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재정 집행은 관성적 행정에 불과하다.

혈통 중심주의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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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혼인을 '정당한 탄생의 조건'으로 간주해 왔다. 이는 유교적 가족 질서에 깊이 뿌리내린 통념이다. 아이는 사랑의 결실이기 이전에 가문의 계보를 잇는 존재였고, 혼인 밖에서의 출생은 '결함 있는 탄생'으로 여겨졌다. 조선 후기까지 서자는 과거시험조차 응시할 수 없었고, 사생아라는 낙인은 한 사람의 존엄을 탄생의 조건으로 가늠하던 문화적 위계를 지금까지도 남겨 두었다.

법적으로 등록 가능하다고 해도,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단단한 문턱 위에 놓여 있다. 우리는 여전히, 어떤 존재가 사회로부터 환영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붙들려 있다. 지난달 초,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전제로 비혼 출산과 관련한 제도 개선'을 검토하라는 관계 부처에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비혼 출생아 비율이 5.8%(2024' 기준)로 증가한 것에 대응하여, 현실을 반영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탄생 탄생의 수용,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철학적 전환
탄생탄생의 수용,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철학적 전환 ⓒ beauty_of_nature, pixabay

제도의 경직성과 배제

태어남의 경로가 다양해졌으나, 제도는 여전히 경직되어 있다.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의 부성(父性) 인지가 없으면 '무부(無父)' 상태로 기록되며, 보육, 건강보험, 상속, 교육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이 발생한다. 사회는 그 존재를 환영하기보다, 그 탄생의 '형식'부터 검열한다.

출생의 권리가 가족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는, 사실상 국가가 생명의 가치를 차별하고 있는 셈이다. 이보다 더 명백한 윤리의 왜곡이 없다. 태어나는 존재를 이야기하면서도, 누구에게 태어났는지를 먼저 따지는 사회에서, 생명의 존엄은 출발부터 계층화된다.

탄생의 수용, 프랑스와 북유럽

프랑스에서는 혼인 외 출생이 전체의 63%를 넘어섰고, 스웨덴ㆍ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도 50% 이상이다. 이들 국가는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아이의 권리와 부모의 법적 책임을 동등하게 다룬다. 프랑스의 'PACS' 제도는, 동거하는 커플이나 사실혼 관계의 세제, 의료, 상속 등 핵심 권리를 보장하며, 법적 형식보다 돌봄의 실천을 중심에 놓는다.

이러한 정책은 단지 제도의 개선이 아니었다.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철학적 전환의 결과였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방향성이다. 제도를 고치기 전에, 존재를 받아들이는 정서적 사고의 기반부터 새롭게 전환해야 한다.

stork 우리는 여전히, 어떤 존재가 사회로부터 환영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붙들려 있다.
stork우리는 여전히, 어떤 존재가 사회로부터 환영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붙들려 있다. ⓒ Mystic Art Design pixabay

도덕주의, 가족의 재정의

한국에서 혼인 밖 출생에 대한 저항감은 종종 종교적 도덕주의와 맞물려 있다. 일부 보수적 신앙 담론은 '정상 가족'이라는 도식 아래, 생명의 탄생을 판단하고 위계를 매긴다. 하지만 생명이 어떤 경로로 태어났는지를 근거로 그 가치를 구분하는 것은, 윤리적 판단이라기보다 도덕적 권위주의 사고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는 가족의 개념을 다시 써야 한다. 가족은 혼인과 혈연이라는 형식보다, 돌봄과 책임이라는 관계적 윤리로 재정의해야 한다. 제도가 인간 존재를 분류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존재 가치가 제도보다 더 앞서야 한다. 비혼으로 태어난 아이도, 입양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도, 조손가정의 손자도 모두가 사회의 소중한 일부로 존중해야 한다. 출생의 형식이 아니라, 존재적 삶을 판단의 중심에 둘 때, 사회는 비로소 출생률이 아니라 생명력으로 충만해진다.

양육을 책임지는 사회

생명의 가치를 자격으로 매기는 사회가 아닌지, 이제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과연 공동체는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새로운 생명을 단지 통계로 다루면서, 그 존재의 조건과 배경을 따지는 관습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떤 생명도 진심으로 환영할 수 없을 것이다.

출생은 한 개인의 일이지만, 그 이후의 삶은 더 이상 가족만의 몫일 수 없다. 교육과 건강, 돌봄과 안전은 한 가정이 감당할 '사적인 의무'가 아니라, 공동체가 나누어야 할 '공적인 책임'의 구조다. 태어남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국가 시스템을 정교하게 구조화해야 할 때다. 한 생명이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오더라도, 그를 지켜줄 윤리적 책임과 양육할 과제는 국가와 사회에 있다. 출생 장려를 위한 예산을 집행하기에 앞서, 우리는 진지하게 본질적인 질문을 먼저 던져야만 한다.

'국가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 누구의 아이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이 왜 소중한가를 묻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출생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야 할 때다.

'출생하는 아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면, 모든 논쟁은 사라진다.'

feet 출생하는 아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면, 모든 논쟁은 사라진다.
feet출생하는 아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면, 모든 논쟁은 사라진다. ⓒ andre andre, pixabay

#출생#비혼#생명#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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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중부일보 [주용수 칼럼]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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