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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9 11:53최종 업데이트 25.10.19 11:53

인터넷도 전화도 없이 여기에서 한 달? 그럴 가치가 충분합니다

미국 몬태나주 글레이셔 국립공원 여행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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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넬 호수 “와, 이럴 수가!” 불투명한 옥빛 호수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린넬 호수“와, 이럴 수가!” 불투명한 옥빛 호수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 백종인

30km가 넘는 산길을 10시간 이상 걸은 다음 날, 다시 15km 이상을 걷는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미친 짓이다. 그 미친 짓을 우리가 했다. 그것도 70이 다 돼 가는 나이에. 원래 의도했던 산행에 비해 좀 쉬운 코스였으나 거의 15km를 걸었고, 산행을 마치고 나니 계단을 오르는 데도 힘에 부쳐 등산용 스틱을 이용해야 했다.

이 같은 무리수를 둔 데에는 날씨가 크게 작용했다. 지금까지 화창하던 날씨가 하루만 지나면 비가 오면서 기온도 뚝 떨어진다는 예보가 꾸준히 있었다. 글레이셔 국립공원에서 최고의 트레일이라 하는 17km의 그린넬 글레이셔 트레일을 비때문에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글레이셔 공원 동쪽 글레이셔 공원은 로건패스를 중심으로 대륙 분할이 이루어지며 서쪽과 동쪽으로 나뉜다. 단순히 물의 흐름만이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원의 전체적인 전망, 자생하는 나무, 야생동물의 번식, 날씨, 빙하 등도 다르다.
글레이셔 공원 동쪽글레이셔 공원은 로건패스를 중심으로 대륙 분할이 이루어지며 서쪽과 동쪽으로 나뉜다. 단순히 물의 흐름만이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원의 전체적인 전망, 자생하는 나무, 야생동물의 번식, 날씨, 빙하 등도 다르다. ⓒ 백종인

그린넬 글레이셔 트레일 입구까지 가려면 고잉-투-더-선로드를 따라 글레이셔 공원의 동쪽 끝에 있는 세인트 메리(Saint Mary)로 가서 다시 북서쪽으로 32km를 가야 한다. 숙소가 공원 동쪽에 있지 않은 한, 입구까지 운전해서 가는 데만도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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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이셔 공원은 로건패스를 중심으로 대륙 분할이 이루어지며 서쪽과 동쪽으로 나뉜다. 단순히 물의 흐름만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원의 전체적인 전망, 자생하는 나무, 야생동물의 번식, 날씨, 빙하 등도 다르다.

아무튼 글레이셔 공원의 동쪽, 특히 매니 글레이셔(Many Glacier)에는 하이커들이 놓칠 수 없는 그린넬 글레이셔를 포함한 아이스버그 호수와 크래커 호수 등의 긴 트레일이 즐비하고, 유서 깊은 매니 글레이셔 호텔과 맑고 아름다운 호수들이 자리하고 있어, 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하이커들에게는 천국이다. 그곳에서 적어도 트레일 하나를 걷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그린넬 글레이셔 트레일은 주차장까지 가는 길부터 만만하지 않았다. 80km의 고잉-투-더-선로드를 넘은 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비포장도로를 거쳐야 했다.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5~7시간이 걸린다는 17km의 트레일을 완주하기에 빡빡한 일정이었다.

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매니 글레이셔

한낮의 스위프트커런트 호수 투명한 스위프트커런트 호수와 그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건너편의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보며 앞으로 펼쳐질 트레일을 기대했다.
한낮의 스위프트커런트 호수투명한 스위프트커런트 호수와 그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건너편의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보며 앞으로 펼쳐질 트레일을 기대했다. ⓒ 백종인

늘 그렇듯 초반은 순조로웠다. 전날의 피로로 다리는 묵직했지만, 시작부터 펼쳐지는 투명한 스위프트커런트(Swiftcurrent) 호수와 그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건너편의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보며 앞으로 펼쳐질 트레일을 기대했다. 호수를 낀 숲길을 따라 1.8km를 걸으니 조그만 개울이 나오고 또 다른 호수인 조세핀(Josephine) 호수가 이어졌다.

우리는 계속 직진했다. 성수기에는 보트가 다녀 등산객들을 호수 건너편으로 실어다 주니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대로 걸어 나갔다. 큰 실수였다. 조세핀 호수가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야 했는데, 그리고 안내판도 있었는데. 무슨 연유였는지 앞으로만 나아간 것이다.

그린넬 호수로 가는 길 개울을 건너 그린넬 호수로 가는 길 역시 가을의 정취를 풍기며 매우 아름다웠다.
그린넬 호수로 가는 길개울을 건너 그린넬 호수로 가는 길 역시 가을의 정취를 풍기며 매우 아름다웠다. ⓒ 백종인

호수를 낀 오솔길이 끝나자, 길은 약간의 오름이 있는 산길로 변했다. 그리고 개울이 나타났다. 신발을 벗고 차디찬 물에 온몸을 떨면서도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개울을 건넜다.

그러고 한 1km 남짓 걸었던 것 같다. 호수가 보였다. 전날 힘겹게 올랐던 전망대에서 보았던 그린넬 호수가 앞에 있었다.

그린넬 호수 앞에서 의도한 바와 다르게 도착한 그린넬 호수. 길을 잘못 들었다는 당혹감 속에 찍은 사진이라 그린넬 호수 전체가 나오지 않아 아쉽다.
그린넬 호수 앞에서의도한 바와 다르게 도착한 그린넬 호수. 길을 잘못 들었다는 당혹감 속에 찍은 사진이라 그린넬 호수 전체가 나오지 않아 아쉽다. ⓒ 백종인

이상한 느낌이 든 것은 이때였다. 우리의 목적지는 호수가 아니라 그린넬 글레이셔, 즉 그린넬 호수와 그 주위의 빙하를 가까이 볼 수 있는 또 다른 전망대였던 것이다. 당황하며 지도를 찾아보고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방향을 물어봤다. 또 헛걸음한 셈이었다. 2km를 잘못 왔으니 다시 2km를 돌아가야 했다.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미루고 무조건 그린넬 글레이셔로 향했다.

또 헛걸음... 일단 다시 가자

조세핀 호수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한 청록의 조세핀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조세핀 호수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한 청록의 조세핀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 백종인

조세핀 호수까지 되돌아가 다리를 건너 산길로 오르니 그제야 그린넬 글레이셔까지 가는 산행에 합류할 수 있었다. 등산로는 제법 가파른 것이 한국 산에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한 청록의 조세핀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호수가 끝나면서 보이는 전경 또한 장관이었다.

숨을 헉헉거리며 산길을 돌아서는데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보였다. 바로 아래 그린넬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와, 이럴 수가!" 불투명한 옥빛 호수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잠시 후 모여있던 등산객들은 윗길을 향해 출발했다. 전망대는 여기서 4km 이상을 더 올라가야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멈췄다. 어제와 다른 풍광이겠지만 우리는 이미 그린넬 전망대를 다녀왔고 더 이상 올라갈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시계 역시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쉬움 속에서 산길을 내려가는데, 저만치 보이는 덤불이 흔들렸다. 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했다. 다행히 빅혼이었다.

빅혼 아쉬움 속에서 산길을 내려가는데, 저만치 보이는 덤불이 흔들렸다. 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했으나 다행히 빅혼이었다.
빅혼아쉬움 속에서 산길을 내려가는데, 저만치 보이는 덤불이 흔들렸다. 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했으나 다행히 빅혼이었다. ⓒ 백종인

그린넬 호수 전망이 끝나자 다시 조세핀 호수가 나타났고, 다리를 건너 숲길을 걸으니 출발할 때 만났던 스위프트커런트 호수가 오전과는 다른 빛깔을 띠고 있었다. 바람이 일어 산이 호수에 반사되는 호사는 놓쳤으나 조용하고 호젓한 분위기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한 아저씨가 우리가 다녀온 그린넬 호수로 가는 길에서 곰을 봤다며 사진을 보여 주었다.

매니 글레이셔 호텔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알프스 풍의 호텔로 우리가 방문한 9월 29일은 2025년 시즌을 마감하는 날이었다. 주차장이 한가하다.
매니 글레이셔 호텔1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알프스 풍의 호텔로 우리가 방문한 9월 29일은 2025년 시즌을 마감하는 날이었다. 주차장이 한가하다. ⓒ 백종인

차가 주차된 매니 글레이셔 호텔로 향했다. 2025년 매니 글레이셔 호텔이 문을 닫는 날(9월 29일)이어서 그런지 호텔 주변은 한산했다. 110년의 역사를 가진 호텔은 알프스를 닮은 자연을 배경 삼아 알프스 풍으로 지어졌다. 주변에 상업시설이라고는 없는 산속에 인터넷은 물론 전화도 안 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날마다 주변을 산책하고, 날씨와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15km 정도의 하이킹을 하면서 한 달 정도 지내는 꿈을 꿔본다. 그런데 곰을 만나면 어떡하지?

덧붙이는 글 | 글레이셔 국립공원은 7월과 8월이 성수기로 9월 이후는 많은 서비스가 중단됩니다. 그럼에도 Going-to-the-Sun Road는 서쪽에서 진입할 때 9월까지 예약을 해야 합니다. 여행 계획을 세우기 전 https://www.nps.gov/glac/index.htm을 반드시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린넬글레이셔#매니글레이셔#조세핀호수#스위프트커런트호수#아이스버그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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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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