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연대 발언을 하는 방현석 작가작가는 집회 참석 전에 팔레스타인 작가들이 쓴 산문집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다시 꺼내 볼 것이라고 개인 sns에 남긴 바 있다. 이 책의 대표 작가이자 팔레스타인 대표 작가인 무함마드 자카리아도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도 전했다. ⓒ 이향림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침략과 학살에 맞서 싸운 항일 무장투쟁 <범도>를 쓴 작가가 아니라 살인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지난 12일 오후 2시, 서울 열린송현녹지광장 입구에서 열린 '가자 학살 2년, 전국 집중 행동의 날' 집회에서 소설 <범도>의 작가이자 아시아문화네트워크 이사장 방현석씨가 마이크를 잡자 광장은 숨죽였다. 그의 첫마디는 단호했고, 서늘했다.
"24개월 동안 6만8천 명, 15분마다 한 명씩 죽었다."
방 작가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 이후 2년간의 상황을 "살인 그 자체"라고 규정했다.
"이스라엘은 2023년 10월부터 지금까지 24개월 동안 날마다 사람을 죽였다. 6만8천 명이 살해당했다. 15분마다 한 명씩, 쉬지 않고 죽어갔다."
그는 "병원에서 첫 울음을 터뜨린 아기, 학교에서 책을 읽던 아이, 그 모든 이들이 이유 없이 살해당했다"며 "그들이 죽은 이유는 단 하나, 1만 2천 년 동안 자기 고향 팔레스타인을 떠나지 않았다는 이유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이 저지른 일은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며, 히틀러를 능가한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하면서 "이 끔찍한 범죄가 팔레스타인만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살인의 공범으로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4개월 동안 6만8천 명이 죽어가는 걸 지켜본 우리가 살인 방조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스라엘의 학살이 계속되는 한, 우리가 아무리 선행을 해도, 아무리 이웃을 돕고 착하게 살아도 우리는 살인 공조범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해방을"
방현석 작가는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소설가가 아니라,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 섰다"며 행동을 촉구했다. 그의 외침은 구체적이고 직설적이었다.
"우리는 세계 모든 언어로 외치고 행동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학살을 중단하라.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떠나라. 미국과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과 단교하라.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팔레스타인에 해방을!"
그의 발언이 끝나자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침묵과 환호 사이에는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한 윤리적 다짐"이 응축되어 있었다.
"가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증언

▲발언하는 가자 지구 출신의 살레흐 란티시 씨그의 가족사는 1948년 팔레스타인 점령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믈라 남쪽 이브나 마을에서 쫓겨난 할아버지는 난민으로 가자 지구에 정착했으나, 수차례의 봉쇄와 폭격 속에서 삶은 끊임없는 피난의 연속이었다. 살레흐 란티시 씨는 결국 2022년 말, 지옥 같은 땅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향했다. ⓒ 이향림
이날 현장에는 팔레스타인 가자 출신 살레흐 란티시씨도 참석했다. 그는 폭격 속에서 가족을 잃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전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수많은 건물과 인프라가 파괴되고, 7만 명이 학살됐다. 할아버지는 1948년 시온주의 군대가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나크바(대재앙) 때 이브나(Yibna) 마을에서 강제로 추방당했다.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흩어졌고, 할아버지는 가자 지구로 피신했다. 이제 그 손자인 내가 폭격으로 할아버지와 가족, 고향을 잃었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그는 "휴전 발표로 잠시 기쁨을 느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슬픔은 여전히 크다"고 말하며 두 가지 메시지를 전했다.
첫째, 팔레스타인의 고통에 연대해 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둘째,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중심은 '가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점령이 끝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말아달라.
"7만 개의 세계가 사라진 사건으로 바라봐야 한다"

▲연대 발언하는 '이소선 합창단'의 단원 김우진 씨'이소선 합창단' 베이스 김우진 씨는 “추석 연휴가 끝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두려웠지만, 일상이 꿈일 수도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떠올리면 부끄러워졌다”고 말했다. ⓒ 이향림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뜻을 이어받아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노래하는 '이소선 합창단'의 단원 김우진씨는 합창에 앞서 연대 발언을 이어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의 한 영화감독은 말했습니다. '이 사건은 5만 명이 사망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1명 1명이 세상을 떠난 5만 개의 사건으로 바라봐야 한다.'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7만 명이 넘는 생명이 사라졌다는 것은 7만 개의 세계가 하나씩 꺼져간 끔찍한 사건입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이 평화를 되찾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라며, 네타냐후를 비롯한 학살자들이 단죄받는 그날까지 우리의 연대가 끝나지 않기를 다짐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합창단은 '그날이 오면',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민중의 노래', '먼 훗날' 노래를 잇달아 부르며, "팔레스타인 민중이 평화를 되찾을 때까지 노래로 연대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한 연대"
10월 7일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이 시작된 지 2년째 되는 날이었다. 참가자들은 "2년 전 그날, 진정한 학살자가 누구인지 전 세계가 보았다"고 외치며 팔레스타인의 자유와 점령의 종식을 요구했다.
그날의 광장은 분노의 외침이 아니라, 양심의 선언으로 채워졌다. 방현석 작가의 말처럼, 그것은 단순한 연대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윤리적 행동이었다. "우리는 살인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 행동한다." 그 한 문장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