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7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산사태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산림산업과 정책을 근거 중심으로 재평가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명령을 넘어, 숲을 경제 논리가 아닌 과학과 생태 원리로 관리하라는 국가 정책의 전환 신호로 해석됐다.

이후 국정기획위원회 재난안전소위는 실제로 산림청이 추진해온 숲가꾸기, 임도 설치, 사방댐 사업 등이 산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킨 것은 아닌지 현장 조사를 벌였다. 이는 우리나라 산림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점검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뒤 국회에서 통과된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특별법'(이하 산불특별법)은 대통령의 기조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과학적 복원이 아닌 개발 중심의 특별법, 빗물의 복원이 아닌 리조트 조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항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재난 복구의 이름으로 추진된 개발특례법

AD
지난 9월 25일 국회를 통과한 산불특별법은 이름만 보면 산불 피해 주민을 돕고 산림을 복원하기 위한 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산림투자선도지구' 지정, 관광단지 개발, 인허가 간소화, 규제 완화 등 개발 특례 조항이 포함돼 있다.

80여 개의 환경단체가 10월 2일 대통령실 앞에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라"고 촉구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린피스,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이 공동성명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법은 "피해 복구라는 본래 취지를 훼손한 채 난개발 특례를 끼워 넣은 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즉, 불에 탄 산을 복원하는 법이 아니라, 개발지로 전환하는 법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경상북도는 "폐허에서 경북의 재창조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피해지역에 리조트·레포츠 단지·스마트농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산불특별법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산림투자선도지구 지정과 규제 완화를 담았다.

산불특별법은 단기적으로 지역 경제 회복이라는 명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산림 재난의 근본 원인을 악화시킬 위험이 크다.

산불은 단순한 화재 문제가 아니다. 건조한 산림, 낮은 토양수분, 침투율 저하, 얇아진 표토층 등이 근본 원인이다. 이런 환경에 콘크리트 기반의 리조트나 도로가 더해지면 토양의 수분 저장 능력은 더욱 저하되고, 다음 산불 발생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 결국 이 법은 산불피해 복구법이 아니라 '다음 산불 준비법'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진짜 복구의 기준은 경제가 아닌 '수분'

지금 숲에 필요한 것은 개발이 아니라 수분 복원이다. 산이 마르면 불이 나고, 산이 촉촉하면 불은 꺼진다. 이 단순한 원리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지표는 이미 존재한다. 서울대학교 빗물연구센터 등 연구기관에서는 산림관리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5대 핵심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 물순환분야 (산이 비를 머금는 능력): 토양 함수율 회복률(SMR), 침투율(IR), 유출계수(RC)
· 산불분야 (불에 대한 저항력과 회복력): 산불취약도·NDVI 회복지수(FVRI)
· 산사태 분야 (토양 안정성): 표토유실 저감률
· 생태 분야 (생태 복원력): 생물다양성·토착종 비율
· 기후 분야 (기후위기 대응능력): 탄소저장량·순흡수량

이 지표들을 종합한 것이 바로 '국가 산림관리 종합 평가 매트릭스'다. 산불특별법의 주요 조항을 이 매트릭스에 적용해보면 대부분의 항목이 '마이너스 점수'로 평가된다.

· 산사태 위험(표토유실 증가) 악화
· 유출계수(빗물 흘러내림) 상승
· 함수율(토양 수분) 저하
· 생물다양성 감소
· 탄소흡수능력 하락

즉, 숲이 건강해지는 법이 아니라 숲을 병들게 할 가능성이 큰 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림수분복원특별법'

산불의 진짜 원인은 불씨가 아니라 건조한 환경이다. 이 환경을 바꾸는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빗물의 순환 복원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발특례법이 아니라 산림수분복원특별법이다. 다음과 같은 제도적 조치가 포함되어야 진정한 회복이 가능하다.

· 산불복구 지역의 함수율 회복 모니터링 의무화
· 리조트·임도 대신 빗물저류지·소규모 물모이 조성
· 위성 NDVI와 토양수분 데이터의 공공 공개 플랫폼화
· 주민참여형 '산 촉촉 지수(Soil Moisture Index)' 공표

이런 제도들이 법에 포함되어야 산불은 줄고, 가뭄은 완화되고, 생태계는 회복된다.

과학의 길에서 벗어난 법을 바로잡아야 한다

7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은 산림정책을 두고 "왜 이 문제가 과학적으로 결론 나지 않느냐"며, 공개적이고 과학적인 검증을 통한 논쟁 정리를 지시했다. 이는 숲을 정치적 이해나 산업 논리가 아닌,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으로 다루라는 분명한 메시지였다.

그러나 산불특별법은 그 기조에서 명확히 벗어나 있다. '산림투자선도지구' 지정과 '규제 완화'는 결국 토양 수분을 빼앗고 생태를 단절시키는 개발 중심의 논리다. 대통령이 강조한 '과학적 산림관리'의 철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숲은 불탄 자리에서 다시 자라지만, 잘못된 법은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수분입니다."

이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산림정책을 다시 과학의 길로 돌려놓는 것, 그것이 산불 복구의 본질이며, 재난의 재발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이 기사는 카드뉴스로도 보실수 있습니다: https://link24.kr/CM0BDRN

덧붙이는 글 | 숲은 단순히 나무의 집합이 아니라,
비와 바람, 흙과 미생물이 함께 만드는 하나의 생명 순환계다.

산불이 일어나면 나무만 타는 것이 아니라,
토양의 수분·유기물·씨앗이 함께 사라진다.
그 복구의 핵심은 ‘개발’이 아니라 ‘수분의 회복’이다.

이번 산불특별법은 피해 주민을 돕겠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그 방향이 빗물의 순환과 과학적 관리가 아닌
토지개발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이 글이 다시 한 번 “숲을 살리는 법은 과학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잊혀진 진리를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산불특별법#과학적산림관리#물모이#기후위기대응#산불예방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오마이 물모이


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