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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 봄부터 오도이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골 쉼터 '느루뜰'로 향합니다. 평일의 복잡한 일들을 뒤로 하고 시골로 내려오면 신기하게도 쉽게 도시의 삶을 잊게 되고, 자연을 닮은 듯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집니다. 적정한 노동 후에 읽고 쓰는 일에도 집중이 더 잘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시골 쉼터에서 '사는 이야기'입니다.
금요일만 되면 내 몸과 마음은 들썩인다. 시골 쉼터에 있는 대봉감, 배, 호박, 가지, 고추 그리고 얼마 전에 씨 뿌린 가을 상추가 잘 있는지 안부가 궁금하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주말 동안 먹거리를 주섬 주섬 챙겨 쉼터에 도착하면 시골은 고요한 어둠에 싸여 있다. 손에 든 짐을 내려 놓기도 전에 밭두렁에 핀 상추의 얼굴을 먼저 살핀다(관련 기사 : 남편 은퇴 4년 남았는데 밭을 덥석 사버렸다).

"씨 뿌린 상추가 더 잘 자라네! 모종 심은 로메인 상추는 삐쭉 키만 컸네!"

남편이 공들인 가을 무 농사는 기어이 실패하고 말았다. 남편은 가을 무가 싹을 틔우고 키를 키울 때 솎아 주고, 벌레가 달라붙지 않게 그물을 키에 맞게 조절해주며 사랑을 쏟았다. 그 보드라운 잎이 어지간히 맛있었겠지. 벌레들이 귀신같이 알고 무 잎을 야금야금 빈틈없이 갉아먹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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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뽑아 버려야겠어. 잎이 하나도 없어."
"아니야, 그냥 둬. 뿌리가 굵어질지도 모르잖아."

농사에 'ㄴ'도 모르는 초보 농부인 남편은(요즘 유튜브로 농사 공부에 열심이다) 자신이 사랑을 쏟은 무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무는 잎이 싱싱해야 뿌리도 튼튼한 법이야." 사실 나도 무 농사에 대해 무지하지만 상식적으로 그럴 것 같아서 우겼다. 학교 텃밭에서 무를 키워본 경험을 들이대며 나름의 논리로 반박했다. 그리고 벌레가 몽땅 잎을 갉아먹어 버린 무를 뽑아 정리했다.

남편은 아침 잠이 많은 사람이다. 잠을 깨는데 시간이 걸리는 타입으로, 알람 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나지만 자동으로 소파에 가서 다시 눕는다. TV를 틀어 놓은 채 몽롱한 상태로 30분은 족히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일어난다.

'밭 사길 잘했어!' 생각한 이유

그런데, 시골에만 오면 아침 일찍 벌떡 일어난다. 조금의 지체도 없이 일할 채비를 한다. 일할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 장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팔토시로 무장한다. 고운 주황으로 물들어가는 대봉감을 솎아 내기도 하고 웃자란 풀을 낫으로 쳐내며 부지런을 떤다. 반면에 나는 그런 남편의 움직임을 감지하면서 '밭을 사길 잘했어!' 하고 혼자 흐뭇해한다. 평생 아침 잠 깨우기가 과제였는데, '좋아하는 일'이 생기니 저절로 해결되었다.

"장에 가 보자. 지금 심을 수 있는 모종이 있을지 모르잖아. 무 뽑은 곳에 심게."

지역 시장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사람들이 어디서 모여드는지 장터는 늘 북적북적하다. 농자재상 앞 좌판에 파릇한 모종들이 진열되어 있다. 쪽파 뿌리와 대파, 배추 모종이다.

"무 모종은 없나요?"
"지난주까지 있었는데, 이제 없어. 쪽파 심어 봐."
"저는 조금만 있으면 되는데요, 한 소쿠리는 너무 많은 것 같은데..."

망설이고 있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모종을 사러 온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이 배추, 좀 자라면 잎 따서 쌈 싸 먹으면 맛있어. 나도 그럴려고 이거 사."

아저씨가 권해 준 쌈 배추와 대파 모종을 몇 개 샀다. 고작 5천 원으로 해결되다니 그야말로 '득템'한 기분이었다. 해가 뉘엿해지길 기다렸다가 무를 뽑아낸 자리에 쌈 배추와 대파 모종을 심었다. 물도 듬뿍 주었다. 조그만 모종들이 귀엽고 예뻤다.

'꽃도 아닌데, 단순한 요 녀석들이 왜 이렇게 귀엽고 예쁘지?'

속으로 중얼거리게 된다. 무처럼 벌레들이 잎을 갉아먹지 못하도록 막걸리와 사카린을 섞어 뿌려주었다.

쌈 배추와 대파 모종 가을무 농사에 실패하고 그 자리에 쌈 배추와 대파 모종을 심었다.
쌈 배추와 대파 모종가을무 농사에 실패하고 그 자리에 쌈 배추와 대파 모종을 심었다. ⓒ 이정미

지난 주말 오후, 언니에게 전화했다.

"주말에 뭐해? 아랫집 언니 있잖아, 우리 밭에 와서 노란 호박, 애호박, 호박잎, 대봉감 가득 따 갔어. 언니도 와서 가져 가. 호박잎 쪄서 쌈 싸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라."

볼 일이 많다는 언니를 꼬드겼다. 결국 언니는 한 박스 가득 농산물을 가져 갔다. 이 풍성한 가을의 수확물을 나누는 게 나의 기쁨이자 숙제이다. 남편은 대봉감이 초록에서 주황으로 익어가며 감 따기에 열심이다. 홍시가 될 때까지 두었더니 새들이 쪼아 먹고, 떨어지기도 해서 주황으로 잘 물든 감을 골라 땄다. 그러면 나는 이 감들을 누구와 나눌 지 생각한다. 지난주는 같은 동에 사시는 할머니, 경비 아저씨, 이웃 동에 살고 있는 남편의 지인, 같은 성당에 다니는 자매님과 나누었다.

이번에 딴 대봉감은 마을 이장님, 우리의 쉼터를 지으신 사장님께 직접 갖다 드렸다. 남편은 직장 동료들과 나눌 거라며 따로 챙겨 넣었다. 농약 한 번 안쳤는데 신기하게도 감이 잘 영글었다. 매주 갈 때마다 호박, 가지, 고추가 주렁주렁 잘도 달려서 올해는 정말이지 실컷 먹고 있다. 나물도 해 먹고, 전도 부쳐 먹는다. 가지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전자레인지에 2~3분 간 살짝 돌려서 올리브 오일에 찍어 먹으면 그 자체로 건강식이 된다. 찐 가지를 곁들이면 아침 식사가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

풍성한 수확물 애호박, 대봉감, 배, 밤, 꾸지뽕 수확물을 이웃과 나누니 더욱 풍성하다.
풍성한 수확물애호박, 대봉감, 배, 밤, 꾸지뽕 수확물을 이웃과 나누니 더욱 풍성하다. ⓒ 이정미

시골 텃밭 주변 산에는 야생 밤나무도 많다. 쉼터 이웃 언니가 밤 줍기 좋은 장소를 알려주었다. 잠시 주웠는데 풍성하다. 꾸지뽕 열매도 처음 봤다. 울퉁불퉁 못생겼는데 요즘 각광받는 '슈퍼 푸드'란다. 비타민 C가 풍부해서 면역력 강화, 항산화 효과, 소화 개선, 혈당 조절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데, 나는 그 자체로 잘 말려 차로 끓여 마실 참이다.

텃밭의 돌로 가장자리를 꾸며 만든 소박한 꽃밭

느루뜰의 꽃밭 나의 텃밭 '느루뜰'에 가을꽃이 한창이다.
느루뜰의 꽃밭나의 텃밭 '느루뜰'에 가을꽃이 한창이다. ⓒ 이정미

지난 9월, 이전 근무지에서 함께 일한 선생님이 자신의 세컨하우스에 꽃들이 많이 번졌다며 구근 몇 개, 꺾꽂이한 꽃나무를 분양해 주었다. 나는 텃밭 한 편에, 쉼터 발코니에서 가장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작은 꽃밭을 만들었다. 꽃을 가꾸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밭에 있는 돌들을 모아 가장자리를 꾸미고 작고 소박한 화단을 만들었다. 여름 내내 빈 채로 내년 봄을 기다리던 화단은 선생님 덕분에 가을 꽃을 만나게 되었다.

가을이지만 예년보다 따뜻한 날이 계속되다 보니 구근은 뿌리를 잘 내려 파란 싹을 틔웠고, 사랑초도 곱게 피었다. 동네 어귀에 버려진 듯 뒹굴고 있던 메리골드 순을 데려와 심었더니 튼실하게 자라 화려한 꽃을 피웠다. 꽃을 주신 선생님을 연상시키는 하얀 나도샤프란의 자태가 곱고 고상했다. 사진에 담아 선생님께 안부를 전했다.

"사랑하는 선생님, 당신을 떠올리게 하는 꽃들이 예쁘게 피었어요. ^^"
"오모나! 내년엔 꽃 대궐 만드세요!"

텃밭 '느루뜰'의 저무는 하루 시금치 씨앗을 뿌린 밭두렁에 남편이 물을 주고 있고, 서편으로 해가 저문다.
텃밭 '느루뜰'의 저무는 하루시금치 씨앗을 뿌린 밭두렁에 남편이 물을 주고 있고, 서편으로 해가 저문다. ⓒ 이정미

서툴지만 텃밭을 일구며 배움도 기쁨도 크다. 좋은 이웃들도 많이 만났다. 부족한 수확물이지만 무농약 건강한 과일과 채소를 나누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우리의 텃밭 '느루뜰'은 노을 맛집이기도 하다. 쉼터의 하루가 저무는 모습을 발코니에 서서 바라보면, 감사한 마음 가득해진다.

#쉼터#시골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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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퇴근 후엔 시골로

책읽기, 글쓰기, 여행을 좋아합니다. 타인과 연결되어 자신의 성장을 너머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며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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