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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대입구에 76개 노점중 50개의 노점을 철거하자 상인들은 그자리에 천막 농성장을 만들었다.
건대입구에 76개 노점중 50개의 노점을 철거하자 상인들은 그자리에 천막 농성장을 만들었다. ⓒ 문세경

"저는 죽을 때까지 싸울 겁니다."

전국민주노점상연합 광진 성동지부 부지역장을 맡고 있는 박기용(가명, 60)씨가 내뱉은 말이다.

황금 연휴 끄트머리였던 지난 9일, 서울 건국대 입구 노점상 철거 현장을 찾았다. 마침 그날은 건대 앞 노점이 강제 철거를 당한 지 딱 한 달이 되는 날이다. 천막 농성장에서는 문화제가 예정되어 있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이음나눔유니온도 연대하기로 결의를 모았다. 머릿수라도 보탤 마음으로 지하철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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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수단인 자신의 부스가 강제 철거되는 장면을 지켜본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부스는 하루의 생계를 책임지는 목숨줄이다. 거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노점 마차를 점유형 박스로 바꾼 것이 10년 전이다. 박스로 바뀌기 전에는 하루의 장사를 위해 집 근처에 세워둔 마차를 끌고 장사를 하는 곳으로 갔다가 장사가 끝나면 다시 마차를 끌고 집 근처에 갖다 놓았다.

먹고살기 위해서 매일매일 마차를 끌고 다녔다. 이력이 날 만도 하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었다. 마차가 아니면 먹고살 만한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 일을 수십 년 동안 했다. 박기용씨가 이어서 말했다.

"제가 노점을 한 지는 올해로 21년 됐어요. 닭꼬치를 팔았어요. 노점 부스를 철거한다는 소식을 듣고 새벽에 달려왔어요. 부스를 못 가져가게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 없었어요. 용역들이 발로 누르고 힘이 세니까 당할 수가 없어요. 제 박스가 철거되고 제 몸에 쇠사슬을 걸었어요. 저를 잡아가려면 잡아 가라는 일종의 시위죠. 옛날에도 철거를 당할 뻔 했거든요. 그때는 6개월 동안 장사를 못하게 했어요. 생계가 너무 힘들었어요. 죽으려고 몸에다 휘발류 뿌리고 라이터에 불을 붙였는데 라이터가 안 켜져서 못 죽었어요."

이제는 마차를 집과 장사하는 곳으로 끌고 왔다 갔다 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났다. 한시름 놓고 생계형 부스를 받아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광진구청은 지난 9월 8일 새벽, 건장한 용역 250명을 동원하고 포클레인을 이용해 부스를 떴다(노점 부스를 포클레인으로 철거하는 것을 상인들은 "뜬다"고 표현한다 - 기자 주).

자신의 목숨과 같은 부스를 포클레인으로 '뜨는' 걸 지켜보는 당사자의 심정은 어떨까. "가슴이 찢어진다"는 표현 말고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다. "벼랑 끝에 내몰렸다"는 것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때 쓰는 말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구청이 노점상을 철거하고 펜스를 쳐놓았다.
구청이 노점상을 철거하고 펜스를 쳐놓았다. ⓒ 문세경

"하필이면 장사가 제일 안 되는 계절(여름)에 부스가 철거되어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는 박기용씨는 아들 하나를 홀로 키웠다. 자신은 온갖 고생을 다 해도 아들만 건강하게 자라준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다행히 아들은 건강하게 잘 커서 무사히 군생활을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단다. 그는 건국대 앞에서 노점을 하기 전에도 남대문과 동대문에서 마차를 폈다 접었다 하면서 노점을 했다.

"구청은 노점상하는 저희를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쓰레기 보듯 해요."

'쓰레기'라는 단어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 사람이 '쓰레기'처럼 보일 때는 어떤 때일까. 먹고살기 위해 길거리에서 노점을 한 것이 죄라고 치자, 그렇다고 더럽고 냄새나고 버려야 하는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노점은 가장 오래된 직업이고 도시의 거리 문화를 정착시킨 대표적인 행위다. 천막 농성장에는 건국대 학생들이 손으로 쓴 피켓이 붙어 있었다. 피켓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중간고사 끝나면 놀러 와서 분식 먹고, 어버이날에 꽃 사 가던 우리의 일상이 왜 치워져야 하나?"

농성 천막 안쪽에는 간이 주방이 있다.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견디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식사 때문이다. 간이주방에 상인 한 분이 들어 오셨고 '잠시 대화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흔쾌히 응해 주셨다.

"저는 호떡을 팔았어요. 이곳에서 장사한 지는 30년 정도 됐어요. 예전에도 종종 철거를 당했지만 이번처럼 크게 당한 건 처음이에요. 너무 놀랐어요. 갑자기 용역들이 들이닥쳐서 마차를 에워싸고 있더라고요. 마차에 중요한 게 있어서 꺼내야 한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못 들어가게 막았어요. 방법이 없었죠.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아요. 호떡만 팔아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요. 코로나19가 터지면서부터는 장사가 더 안 돼서 오전에는 청소를 하러 다녀요. 여름에는 특히 장사가 안돼요. 9월부터 장사해서 여름에 안된 걸 메꾸려고 했는데 마차를 철거해버리니 막막해요. 마차를 찾아야 하니까 싸움에 결합한 거예요. (청소일) 조퇴하고 왔어요."

 상인들이 천막 농성장에서 추석 차례를 지내는 모습
상인들이 천막 농성장에서 추석 차례를 지내는 모습 ⓒ 민주노련광진구회원

이야기를 해주신 분은 올해 70세라고 했다. 30년 동안 노점으로 생계를 이어 왔다. 10년 전만 해도 장사가 잘 돼서 남편이랑 같이 호떡을 구워 팔았다. 그런데 사스 전염병이 돌고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장사가 안되자 혼자 호떡을 구웠다. 그래도 생계가 힘들어서 청소일을 한다. 학교 앞이라서 돈 없는 학생들은 1500원짜리 호떡 한 개를 사서 둘이 나눠 먹는단다. 재료값이 많이 올라서 본전 건지기도 힘든 날이 많다고 했다.

"끝까지 싸워야죠. 76개의 노점이 지금 29개밖에 안 남았어요. 남은 박스에서도 장사를 못 해요. 구청에서 장사를 못 하게 방해를 하니까요."

건대입구의 노점은 그 역사가 40년이 넘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보내고 거리 문화를 정착시킨 곳이다. 그러나 김경호 광진구청장은 지난 9월 24일 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건대입구역 일대 불법노점 정비 관련 브리핑'에서 "30년 이상 보도를 불법으로 차지하며 불공정한 경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추석맞이 한마당에서 윳놀이를 하는 상인들
추석맞이 한마당에서 윳놀이를 하는 상인들 ⓒ 문세경

추석 당일, 상인들이 추석 차례를 농성장에서 지내는 모습이 단체 톡방에 사진으로 올라왔다. 추석 당일엔 농성장에 가지 못했다. 문화제를 하는 9일에서야 농성장에 갔다. 약 30명의 회원이 천막에 모여 명절 지낸 소감을 얘기했다. 곧이어 윳놀이를 했다. 신나게 윳을 던지고 모판의 말을 이리저리 옮기는 상인들의 얼굴엔 어린아이 같은 웃음꽃이 폈다.

곧이어 노래자랑이 이어졌다. 노래자랑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같은 곡을 불렀다. 곡명은 '님을 위한 행진곡'. 같은 노래를 불렀지만 생김새가 다르고 목소리가 다르고 박자가 다르니 노래를 부를 때마다 새로운 노래를 듣는 것 같았다. 아무렴 어떤가, 오늘은 모든 시름을 잊고 신명나게 한판 노는 날이다.

윳놀이 할 때 흥을 돋우고, 노래 자랑할 때는 뒤편에서 분위기를 이끈 젊은 여성이 보였다. 이번 싸움에서 엉겁결에 총무를 맡았다는 이현주(가명, 49)씨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원래 9월 8일 오후 2시에 구청과 면담을 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새벽 1시 경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경찰이랑 공무원, 용역이 노점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놀라서 바로 건대입구로 달려 갔어요. 부스가 있는 곳에 갔더니 이미 통제가 되어서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더라고요.

저는 타로를 봐요. 이곳에서 타로를 본 지 7년 정도 됐어요. 그날 새벽, 용역이 부스를 뜨려고 할 때 저는 부스에서 노트북 및 귀중품을 꺼내야 한다면서 부스에 들어갔어요. 밖에서 '사람 있는데 (부스를) 뜨지 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덕분에 제 부스는 철거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장사를 못 해요. 사건이 터지고 얼떨결에 총무를 맡았어요. 회원들에게 힘이 된다면 무엇이든 할 생각이에요."

이야기하는 내내 그는 눈물을 훔쳤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전쟁보다 더한 상황에 놓인 탓일 게다. 공무원들은 매일 천막에 와서 상인들이 붙여 놓은 현수막을 떼어 간다. 수시로 상인들을 감시한다. 상인들은 개인정보가 다 털렸다면서 분노하고 있다.

 9월 8일 새벽, 광진구청은 용역을 동원해 포클레인으로 노점 부스를 뜨고 있다.
9월 8일 새벽, 광진구청은 용역을 동원해 포클레인으로 노점 부스를 뜨고 있다. ⓒ 최인기

건대입구역 노점상들은 2010년부터 광진구청과 협의하에 1인당 1천만 원 이상을 내고 부스(규격노점)를 설치했다. 매년 도로점용료를 내고 열심히 노점상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2024년 5월 갑자기 광진구청은 도로를 원상회복 하라고 했고, 노점상들은 행정소송을 내서 현재까지 도로 점용이 적법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법무법인 다산 권용 변호사에 따르면, 건대역 노점상 80명에게 부과될 과태료는 1억2천만 원이고 현재까지 25억 원이 넘는 과태료가 있다고 한다.

먹고살기 위해 한평생을 거리에서 보냈는데 명절마저 거리에서 보내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상인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정성스레 차례 음식을 만들었다. 조상님께 절을 올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을 것이다. '제발, 전쟁같은 이 상황이 하루 속히 마무리 되기를 바란다'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보름달만 같아라'고 한 덕담이 무색하게 들리는 2025년 추석이었다.

 천막농성장에 붙인 손 피켓
천막농성장에 붙인 손 피켓 ⓒ 문세경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음나눔유니온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건대입구#광진구청#노점상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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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사우, 2021)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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