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 전 전북도교육감이 1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본인 허락을 받아 <오마이뉴스>에 싣습니다.

▲김승환 전 전북도교육감. ⓒ 윤성효
대략 30년 전 무렵 서울의 몇몇 교수들을 만나서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어느 장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자리를 함께한 교수들은 해당 장관이 학부 시절 자신들을 직접 가르친 분은 아니지만, 매우 존경하며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 장관은 교수 시절 교수들 중 교수라고 할 정도로 학문적으로 뛰어났고,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한 칼날 같은 논평을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그런 분이 장관으로 발탁되자 아무런 이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진영을 달리하는 쪽에서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저와 함께 대화를 나누던 교수들은 공통의 문제로 여러 해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차에, 마침 그 장관이 자신들의 문제와 직무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분이어서, 면담 신청을 거쳐 면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젊은 교수들의 하소연을 듣고 난 장관의 입에서 "이 사람들아! 자네들은 나랑 일하는 저 관료들을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저 사람들이 얼마나 지독한 사람들인 줄 알아?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야"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장관 자리에 들어가는 즉시 장관은 만사를 제치고 직무 파악과 관료 파악 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동안 해당 부처의 관료들이 해 오던 일 중에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 관료들의 실적 쌓기에 이용된 일, 관변 교수들의 먹잇감이었던 일, 기득권을 유지 또는 강화하는 수단이었던 일 등을 과감하게 삭제해 버려야 합니다.
장관은 해당 부처가 이와 같은 일을 하는 데 첨병 역할을 했던 관료들에게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인사상의 불이익을 가해야 합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그러한 불이익 처분들이 관련 법률·시행령·시행규칙에 위반하지 않는지를 외과 의사의 메스처럼 정밀하게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들어오는 외부의 개입이나 압력에 대해서는 그가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과감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수십 년 닳고 닳은 관료들이 새로 들어온 장관에게 이 틈을 줄 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생사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관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장관을 조기에 포획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알고 나면 뻔한 것입니다.
장관을 계속 띄워주고, 장관이 참석해야 할 행사를 찾아내고 만들어 주고, 끊임없이 립서비스를 하고, 모임 자리 자주 만들어 주고, 때로는 (장관이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 자료를 주고, 언론에 장관의 이름과 얼굴이 빈번하게 나오도록 작업하는 것 등입니다.
립서비스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장관님! 오늘 오전에 있었던 행사에서 하셨던 축사를 듣고 저 감동했습니다, 제 평생 그런 축사를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건 저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아마 오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거의 모두가 저와 같은 감동을 받았을 겁니다, 존경합니다, 며칠 전 직원들한테 하신 말씀 있으시지요? 장관님처럼 유식하고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또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관료들이 장관을 포획하기 위해서 쓸 수 있는 수단을 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장관이 난공불락일 때는 장관에게 흠이 될 만한 것을 외부로 흘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장관이 여론의 도마에 올라 난도질을 당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게 직무 태업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이 장관의 시선에 잡혀야 합니다. 관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인사권입니다. 오늘 아침까지 관료 사회에서 군림하던 사람일지라도 장관의 인사 명령만 떨어지면 그 자리는 즉시 날아갑니다. 아침까지 자신을 따르던 후배 관료들도 장관의 눈치를 보며 갓끈 떨어진 선배 관료를 외면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장관이 권력에 중독되는 것입니다. 대체로 권력 중독에 소요되는 기간은 6개월~1년입니다. 일단 권력 중독에 빠지면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늘이 내린 명의(名醫)도 치료할 수 없습니다. 권력의 자리에 들어가서 권력 중독에 빠지지 않는 사람은 1백 명 중 1~2명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