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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3 15:05최종 업데이트 25.10.13 15:05

왕실과 산림이 금지한 공간... 영월은 왜 '금표의 고장'인가?

조선시대 금지의 역사가 살아있는 영월의 금표 유적들

금표(禁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대부분은 '그게 뭐지?'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금표는 한자 뜻 그대로, 특정 행위의 금지를 알리는 표식이다. 주로 표석이나 바위에 새겨졌으며, 금지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금표 유적은 역사적·사회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필자가 집필한 <한국의 금표>에서는 금표를 왕실금표, 산림금표, 사찰금표, 제단·신앙금표, 장소 관련 금표, 행위 금지 금표, 기타 금표 등으로 분류한 바 있다.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금표가 확인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필자가 주목하는 지역은 바로 강원도 영월이다. 이곳은 왕실금표와 산림금표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드문 장소이기 때문이다.

영월 청령포 단종의 유배지로 지금도 들어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영월 청령포단종의 유배지로 지금도 들어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 김희태

강원도 영월에서 확인되는 금표는 크게 왕실금표인 청령포 금표비와 철종 원자 융준 태실 금표, 그리고 산림금표인 두산리 황장금표비와 법흥 황장금표 등 총 4기다. 청령포 내에 세워진 금표비는 <매산집>과 <관암전서> 등을 통해 영월부사 윤양래(尹陽來)가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청령포 금표비 전면에 ‘청령포금표’가 새겨져 있다.
청령포 금표비전면에 ‘청령포금표’가 새겨져 있다. ⓒ 김희태

또한, 금표비 옆면의 명문을 통해 1726년(영조 2년) 10월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으며, 후면 명문에는 금표의 범위가 동서 300척, 남북 490척에 해당한다고 기록돼 있다. 청령포에 금표비가 세워진 배경은 1698년(숙종 24년) 단종이 왕으로 추복되면서, 청령포가 유배지가 아닌 왕이 거처했던 공간으로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영월 철종 원자 융준 태실의 금표 현장 안내문에는 철종 왕세자 태실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원자 태실로 정정해야 한다.
영월 철종 원자 융준 태실의 금표현장 안내문에는 철종 왕세자 태실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원자 태실로 정정해야 한다. ⓒ 김희태

또 다른 왕실금표인 철종 원자 융준 태실 금표는 솔샘공원에서 망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다. 2021년 1월 29일 '태실지에 대한 오류투성이 안내문, 이렇게 바뀌었다' 기사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융준(李隆俊, 1858~1859)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원자로, <승정원일기>와 <원자아기씨안태등록>에 따르면 1859년(철종 10년) 2월 25일에 태실이 조성되었고, 금표비는 후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같은 해 9월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영월 두산리 황장금표비 황정교 옆에 세워져 있다.
영월 두산리 황장금표비황정교 옆에 세워져 있다. ⓒ 김희태

한편, 영월에는 산림금표도 두 기 확인되는데, 모두 황장목(黃腸木)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황장목은 현재 금강송으로 불리는 나무로, 강원특별자치도와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자생한다. 이 나무는 왕과 왕비의 관인 재궁(梓宮)과 궁궐 건축 자재로 사용되었으며, 그 보호를 위해 금표가 세워졌다.

영월 법흥 황장금표 해당 금표를 통해 과거 이 지역이 원주에 속한 사실과 사자산의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금표를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영월 법흥 황장금표해당 금표를 통해 과거 이 지역이 원주에 속한 사실과 사자산의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금표를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 김희태

두산리 황장금표비(영월군 무릉도원면 황정길 23-1)는 황정교 옆에 위치하며, 비석 전면에 '황장금표비(黃腸禁標碑)'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또 하나는 법흥 황장금표(영월군 무릉도원면 법흥리 590-9)로, 자연 바위에 '원주사자황장산 금표(原州獅子黃腸山 禁標)'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이 일대가 과거 원주 관할이었으며, 사자산의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한 금표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강원도 영월은 단종의 흔적이 남아 있는 청령포 금표비를 시작으로, 철종 원자의 태실 금표, 그리고 황장목 보호를 위한 산림금표까지, 다양한 금표 유적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금표는 단순한 금지 표식이 아니라, 왕실의 권위와 산림 자원의 보호 등 조선 시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상징물이다. 그렇기에 살아 있는 역사의 공간으로, 영월을 '금표의 고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타워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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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 (bogirang) 내방

역사에 이야기를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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