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목원에서 확인한 대륙검은지빠귀의 모습 ⓒ 김호열
지난 5일, 대전 한밭수목원에서 낯선 방문객이 대전환경운동연합 탐조소모임에 의해 포착됐다. 유리처럼 맑은 눈동자와 은은한 회갈색 깃, 검은빛을 띠는 날개를 가진 새 바로 대륙검은지빠귀(Turdus mandarinus)였다.
낯선 새의 등장, 자연 회복의 신호
중국 남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동남아시아까지 이동하는 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도래 개체가 관찰될 뿐 상시 서식하는 종은 아니다. 이런 대륙검은지빠귀가 도시 한가운데, 인공적으로 조성된 숲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밭수목원은 본래 대전 엑스포 부지의 남단, 정부청사와 도심 사이의 '빈 터'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식재된 나무들이 이제는 30여년이 되었고, 초기의 조림지 이미지를 넘어 '성숙한 2차림'의 형태를 띠고 있다.
느티나무, 참나무, 단풍나무가 어우러지고, 하층에는 다양한 관목과 초본 식생이 자리 잡았다. 도시의 중심에 있지만, 계절마다 특별한 새들이 꾸준히 확인되는 공간이다.
조림지의 시간이 축적되면 인간이 설계한 구조 위에서도 자연의 자생력이 발현된다. 낙엽층이 쌓이고, 곤충이 돌아오고, 버섯과 이끼가 다시 생태계를 짜맞춘다. 그 결과 도시의 인공숲은 조금씩 '자연의 얼굴'을 회복하게 된다. 대륙검은지빠귀의 한밭수목원 방문은 바로 그 '회복의 시간'을 증명하는 것이다.
대륙검은지빠귀는 검은지빠귀(Turdus merula)의 아종으로 분류되던 새다. 그러나 2021년 국제조류학회(IOC)에서 독립 종으로 인정되었다. 이 새는 중국 동부와 남부에서 주로 번식하며, 겨울에는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남하한다. 한국에서는 전북 어청도, 강화도, 제주도 등지에서 산발적으로 관찰되다 최근 여러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내륙 도시의 공원에서 발견된 것은 드문 사례다.
조류학적으로 보았을 때 이번 관찰은 기후 변화와 도시 생태계의 변화를 함께 반영한다. 대륙의 겨울이 점차 따뜻해지고 한국 남부와 중부의 기후대가 변하면서, 이 새가 '임시 방문자' 이상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이동의 기록이 아니라, 기후 변화 시대의 생태적 변화를 상징하는 신호로 읽힌다.
계획된 녹지에서 자율적인 생태로
한밭수목원은 계획적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식재 설계도, 식물군 배치표, 관리 계획이 존재한다. 그러나 수십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의 설계를 넘어선 생태적 진화를 낳았다. 도시의 미세먼지를 걸러내고, 곤충과 새들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인간의 산책로와 생명의 통로가 교차하는 하이브리드 숲이라고 표현 할 수 있을 듯 하다.
이러한 숲에서 대륙검은지빠귀가 관찰되었다는 사실은 인공적인 공간 속에서도 자연의 회복과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설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경계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 생명에게 무너진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대륙검은지빠귀의 한밭수목원 출현은 여러 학문적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이동 중 들른 개체인지, 아니면 도시숲을 중간기착지로 이용하기 시작했는지의 문제다. 도심의 인공 녹지가 어떤 방식으로 이동 조류에게 '대체 서식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도시화는 종종 생물다양성을 위협하지만, 반대로 오래된 조림지와 녹지는 조류에게 '예상치 못한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특히 한밭수목원처럼 수목의 층위가 발달하고, 먹이자원이 풍부한 곳은 일부 이주종이나 나그네새에게 임시 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록은, 대륙검은지빠귀가 한국 내 도시 생태계의 안정성과 회복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가져본다.
한밭수목원의 숲은 인간이 심었지만, 이제 인간의 손을 벗어나 자연의 질서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볼 수도 있다. 대륙검은지빠귀는 마치 문명과 자연의 경계 위를 걷는 상징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인공의 땅에서 시작된 숲이 생명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생명이 다시 인간에게 '자연의 복원력'을 가르쳐준다는 사실은 철학적 울림을 남긴다. 한밭수목원은 1993년 엑스포 당시 대규모 주차장으로 조성되었고, 주차장을 다시 숲으로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한 것이다.
회복 가능한 자연,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
자연은 인간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회복할 수 있다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개발의 광풍을 멈추고 다시 복원하면 생명과 자연은 스스로 다시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도시의 생태계는 더 이상 '자연의 대체물'이 아니다. 그곳에서 자라난 나무, 살아가는 새, 흐르는 바람이 모두 생태적 순환의 일부가 되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대륙검은지빠귀의 출현은 바로 그 경계 위에서 공존의 가능성을 묻는 것이다.
한밭수목원은 더 이상 단순한 도시녹지가 아니다. 그것은 인공의 시간을 지나, 생태적 자율성을 획득한 숲이다. 그 숲에 날아든 대륙검은지빠귀는, 인간이 잃어버린 자연의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존재다. 한밭수목원의 숲은 그렇게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자연'이 되어가고 있다. 자연은 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