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50년이 지나서 상담을 요청하는 피해자도 있고, 공소시효가 지나도 피해자나 가해자의 기억이 또렷한 경우가 많아요. 공소시효를 넘어 진실을 말할 수 있고, 피해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죠."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5년간 친족관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약 200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가운데 기소율은 매년 절반 수준에 그쳤고, 피해자 다수가 성인이 된 이후에야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등 공소시효의 벽이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준태 국민의힘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접수된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강제추행·준강간·준강제추행 사건은 총 1992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기소율은 매년 50% 안팎으로, 2021년 51.6%, 2022년 48.8%, 2023년 54.3%, 2024년 55.6%였다. 올해는 7월 기준 54.4%로 집계됐다. 이는 일반 형사 사건의 기소율(40%대)보다 높지만 여전히 절반 가까운 사건이 재판에 넘겨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불기소 사유는 ▲기소유예 ▲혐의없음 ▲죄가 안 됨 ▲공소권 없음 등으로, 최근 5년간 친족 간 성범죄 사건의 불기소율은 평균 약 15% 수준이었다.
피해 드러나기까지 10년 이상... 공소시효에 막힌 현실
친족 성범죄의 특성상 피해가 수년에서 수십 년 뒤에야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미성년기 동안 침묵하거나 성인이 된 이후 신고를 결심하더라도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이 불가능한 사례가 적지 않다.
현행법상 13세 미만 아동이나 장애 아동 대상 성범죄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13세 이상 미성년자가 친족에게 피해를 입은 경우에는 성인이 된 날부터 10년 이내에만 고소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 피해시 연령대 ⓒ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박아름 활동가의 상담 통계에 따르면, 공소시효가 만료된 친족 성폭력 피해자 중 최소 48명(64.9%)은 상담을 받기까지 17년 이상 걸렸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 중 38.8%가 피해 당시 14세 이상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관계는 친형제·의형제·부모·사촌·삼촌 순으로 많았으며, 가해자의 가해시 연령대는 20~60대가 절반을 차지한 반면 피해자의 피해시 연령대는 8~13세가 절반에 달했다.
한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는 이미 UN이 권고한 사안으로, 피해자들이 수십 년이 지나서야 상담을 시작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친족 성폭력은 가정 내에서 은폐되기 쉬운 범죄로, 가족 관계 안에서 발생한 폭력에 경찰이나 이웃이 개입하지 않으려는 문화 역시 문제"라며 "법 체계에서 공소시효는 여전히 형식적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어 피해자의 시간 감각이나 트라우마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소시효 폐지 외에도 "성폭력 피해자는 가족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주거·생계·신분 등록 제도 등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며 "공소시효 폐지와 함께 실질적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합의 부재"…국회 계류 중인 법안들
국회입법조사처는 올해 6월 발간한 '미성년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적극 검토해야' 보고서에서 미성년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75~90%가 성인이 될 때까지 피해 사실을 숨기며 살아간다며 피해 신고가 지연되는 현실을 고려해 공소시효 폐지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또 미국 대규모 아동 성학대 조사 결과, 피해자들의 피해 공개 평균 연령이 52세에 달한다고 인용하며, 가족 내 권력관계와 심리적 억압, 사회적 낙인 등이 피해 은폐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5년간 미성년 친족성폭력 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거나 연장하는 법안이 다수 발의됐으나, 모두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법무부와 여성가족부는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 '개정 실익 부족' 등을 이유로 신중 검토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미성년 친족 성범죄의 공소시효 폐지나 연장 법안이 계류 중인 이유는 국회 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일부 의원들은 '세월이 지난 범죄를 예외적으로 취급할 필요가 있느냐'는 입장을 보이는 반면, '친족 성범죄는 피해 구조가 특수해 별도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맞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적 담론 형성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점도 논의가 지연되는 이유 중 하나"라며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 현실을 국회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허 조사관은 "친족 성폭력 사건의 경우 아버지가 가해자인 사례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며 "보호시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양부·친부가 가해자인 비율이 약 71%에 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가해자인 친부가 다시 피해 아동을 데려가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는 친권을 정지하거나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피해 아동을 국가가 직접 보호하고 양육할 수 있는 시스템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