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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불 I '태양의 도시(Civitas Solis) II' 폴리카보네이트 판, 아크릴 거울, 260여 개의 LED 조명, 전기 배선가변 설치. 2014 / 이 작품은 17세기 이탈리아의 신학자(철학자)인 토마소 캄파넬라(T. Campanella)의 저서 <태양의 도시(Civitas Solis)>(1602)에서 영감을 받다. 산산이 조각난 유빙이 떠다니는 밤바다의 심연을 연상케 한다
이불 I '태양의 도시(Civitas Solis) II' 폴리카보네이트 판, 아크릴 거울, 260여 개의 LED 조명, 전기 배선가변 설치. 2014 / 이 작품은 17세기 이탈리아의 신학자(철학자)인 토마소 캄파넬라(T. Campanella)의 저서 <태양의 도시(Civitas Solis)>(1602)에서 영감을 받다. 산산이 조각난 유빙이 떠다니는 밤바다의 심연을 연상케 한다 ⓒ 김형순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을 걸어온 작가 이불(1964~)의 대규모 서베이 전시 <이불 : 1998년 이후>전이 리움미술관에서 오는 2026년 1월 4일까지 열린다. 1998년 이후 현재까지 30년 작업이 조망 된다. 조각, 대형 설치, 평면, 드로잉, 모형 등 150여 점을 선보인다. 첨단 디지털 문명 시대 속에서도 인간 존재를 탐구하며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까지 상상해보게 한다.

이불은 그간 한국의 사회정치적 맥락과 맞물린 급진적 작업을 선보여왔다. 신체와 사회, 인간과 기술, 자연과 문명, 이를 둘러싼 권력의 문제를 폭넓게 탐구했다. 회화 중심을 넘어 설치 미술 영역을 개척하면서 태양같이 빛나는 미술 세계를 펼쳤다.

그녀는 또한 현대미술에 건축개념을 새롭게 도입하고 독창적 재료를 개발해 독자적 길을 걸었다. "20세기 현대미술 작가 50인 중 유일한 아시아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더불어 1990년대 전복적인 기획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5년 이후에는 유토피아 비전을 탐구하는 <대서사>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는 예술의 역할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사회와 소통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작가의 사회 저항 메시지는 강렬했다. 그리고 서구 중심의 식민지 오리엔탈리즘을 날카롭게 질타했다. 관객이 불편해도 생각할 거리를 제기하는 그런 작가였다.

 이불 I '벙커[M. 바흐친](Bunker M. Bakhtin) 스테인리스 스틸 골조에 합판, 천 우레탄 폼, 아크릴 거울, 전자 장치. 300×400×280cm 2007~2012. 전후 일본 도시건축의 아버지인 '단게 겐조'의 낭만적 건축 요소를 참조했다. 제목에 바흐친이 첨가된 것은 '인터랙티브 사운드'를 통해 의미가 생성하는 그의 '다성성(polyphony)' 개념 때문이다.
이불 I '벙커[M. 바흐친](Bunker M. Bakhtin) 스테인리스 스틸 골조에 합판, 천 우레탄 폼, 아크릴 거울, 전자 장치. 300×400×280cm 2007~2012. 전후 일본 도시건축의 아버지인 '단게 겐조'의 낭만적 건축 요소를 참조했다. 제목에 바흐친이 첨가된 것은 '인터랙티브 사운드'를 통해 의미가 생성하는 그의 '다성성(polyphony)' 개념 때문이다. ⓒ 김형순

시대와 맞물린 그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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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은 1964년 영주에서 출생했다. 10대였던 1970년대는 유신 체제였다. 부모는 반체제 운동으로 좌익으로 몰렸다. 그녀는 당시 보살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비닐하우스 비슷한 곳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런데 그 주변에 있던 냉전의 산물로 보일 수 있는 벙커를 유토피아로 보았다. 역시 예술가였다. 그런 설치물에서도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받은 것이다. 이번 전시에 벙커 작품이 많은 이유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사회 변혁 사상이 그의 예술적 사유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1990년대 이념과 구습에 빠진 한국 미술계에 도전장을 냈다. IMF 등 경제 불황 속에서도 억압적 가부장제 등 지배 이데올로기에 물음을 던지는 예술을 펼쳤다.

우리가 이불 작가 하면 떠올리는 것은 1997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장엄한 광채(Majestic Splendor)> 전시다. 이 작품은 눈부시게 화려한 사회 이면에 숨겨진 부패와 부조리를 고발했다. 이불은 당대 희생의 상징인 여성을 '날생선'으로 비유했다. 그 썩어가는 냄새가 전시장을 진동하자 미술관 측이 철거를 요구했다. 이런 소동으로 오히려 그녀의 이름은 뉴욕에서 더 빛났다.

이불의 키워드 중 하나는 '신체와 사회'다. 이불은 여성의 몸을 단지 생물학적 것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정치적 관점에서 봤다. '젠더 정치학'이 도입된 것이다. 몸을 과장하거나 기괴하게 변형시켜 고정된 성 역할이나 기존의 미적 기준을 전복시켰다.

그럼 이제부터 이번 전시의 중요 작품을 감상해 보자.

 이불 I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Willing To Be Vulnerable-Metalized Balloon)' 천 PET필름 송풍기 전기 배선 300×1700×300cm. 2015~2020. 1937년 독일에서 만든 비행선 체펠린 전성기를 누렸지만 힌덴부르크 참사 후 사라졌다. 이 상징적 비행선을 거대하게 재현하여 2016년 제20회 시드니 비엔날레에 처음 선보였다
이불 I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Willing To Be Vulnerable-Metalized Balloon)' 천 PET필름 송풍기 전기 배선 300×1700×300cm. 2015~2020. 1937년 독일에서 만든 비행선 체펠린 전성기를 누렸지만 힌덴부르크 참사 후 사라졌다. 이 상징적 비행선을 거대하게 재현하여 2016년 제20회 시드니 비엔날레에 처음 선보였다 ⓒ 김형순

 이불 I '롱 테일 헤일로(Long Tail Halo): CTCS #1' 스테인리스 스틸, 에틸렌-비닐 아세테이트, 탄소 섬유, 페인트, 폴리우레탄 275×127×162cm. 2024.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구 설치된 커미션 3개 중 하나이다
이불 I '롱 테일 헤일로(Long Tail Halo): CTCS #1' 스테인리스 스틸, 에틸렌-비닐 아세테이트, 탄소 섬유, 페인트, 폴리우레탄 275×127×162cm. 2024.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구 설치된 커미션 3개 중 하나이다 ⓒ 김형순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천장에 17m에 달하는 은빛 비행선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이 관객을 맞이한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 금속 골조 안에 가스를 채운 '체펠린' 비행선을 참조한 것이다. 기술 진보에 대한 인류의 열망과 좌절을 동시에 전한다.

또 한쪽에 전시된 '롱 테일 헤일로(Long Tail Halo)'는 지난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구에 전시된 작품을 이번에 가져왔다. 이 입상은 BC 190년경 조각 '니케'에서 20세기 피카소, 레제 조각 등을 혼합한 것이다. 작가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백과사전적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라운드 갤러리'를 배회하며

 이불 I '천지' 2007~2025. 1987년 박종철 열사 사망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백두산의 천지를 목욕탕에 빗대다
이불 I '천지' 2007~2025. 1987년 박종철 열사 사망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백두산의 천지를 목욕탕에 빗대다 ⓒ 김형순

이번에는 리움미술관 <그라운드 갤러리>로 가 보자.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관객이 이곳을 배회하다 보면, 개인과 집단의 기억, 분단 시대의 절망, 다양한 사회적 문제 등에 관해 묻게 된다.

이곳 여기저기 작품들은 현대사의 비극을 연상시킨다. 위 작품 '천지'는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장엄하게 죽어간 '박종철' 열사가 주인공이다. 그가 물고문을 당할 때, 사용한 욕조를 하단에 설치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받아들이기 힘든 역사의 모순과 부조리를 총체적으로 녹여냈다.

 이불 I '혀의 스케일(Scale of Tongue)' 네오프렌, 실크, 리넨, 울, 스팽글, 알루미늄 코팅 원단, 합성 섬유, 아크릴 물감, 가변 크기. 설치 전경, 2017~2018.
이불 I '혀의 스케일(Scale of Tongue)' 네오프렌, 실크, 리넨, 울, 스팽글, 알루미늄 코팅 원단, 합성 섬유, 아크릴 물감, 가변 크기. 설치 전경, 2017~2018. ⓒ 김형순

위 작품은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국제관)' 출품작이다. 이 설치물의 검은색은 격렬한 역동성과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동해의 거대한 파도와 백두산이 뿜어내는 민족의 정기 같은 것도 연상된다. 그 어떤 역경과 난관도 강력한 의지로 극복해 보겠다는 힘찬 에너지도 느껴진다.

작품명이 '혀의 스케일'이다. 그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고래, 그 혀의 아랫부분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거대한 덩어리는 가라앉는 배의 마지막 흔적처럼 출렁인다. 그리고 뱃머리는 거품과 먹물처럼 검은 바닷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사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추모한 작품이다.

'대서사(2005년~)' 시리즈

 이불 I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 목재, 아크릴 거울, 양방향 거울, LED 조명, 우드 스테인, 290×600×600cm 2012~2022. 미국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J. Jaynes)의 저서에 나오는 말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이불 I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 목재, 아크릴 거울, 양방향 거울, LED 조명, 우드 스테인, 290×600×600cm 2012~2022. 미국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J. Jaynes)의 저서에 나오는 말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 김형순

이제부터 이불이 2005년 이후 작업해온 <대서사 : 거대담론(Mon Grand Récit)> 시리즈를 감상해 보자. 이 용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 '리오타르(J. F. Lyotard)'가 만든 것으로 양면성을 띤다.

위 작품명은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다. 라틴어로 '부정의 길'을 뜻한다. 진리가 아닌 것을 제거해 나가는 걸 말한다. 이곳을 들어가면 사방팔방 거울 효과를 줘 관객의 얼굴이 수천 가지로 다르게 보인다. 중심과 주변, 시작과 끝의 구분이 없다. 다층적이고 비선형적이다. 그 속에서 관객은 산산 조각난 자신의 허상과 만나 당황해 한다. 그러면서 출구를 찾아 헤맨다.

이불은 거울과 조명이 주는 혼란한 미로를 통해 역설의 길을 제시한다. 신체가 파편화된 이미지는 작업의 한 과정으로 흡수되거나 분리되기도 한다. 인간 의식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와 환경, 언어 발전 속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암시한다.

 이불 I '바위에 흐느끼다(Weep into stones)' 폴리우레탄, 포멕스, 합성 점토, 스테인리스 스틸 및 알루미늄 막대, 아크릴 패널, 합판, 아크릴 물감, 바니시, 전기 배선, 조명 280×440×300cm. 2005. 17세기 영국의 토머스 브라운(T. Browne)이 삶과 죽음을 성찰하며 쓴 철학적 에세이 <호장론(Hydriotaphia(1658)>에서 인용한 구절이 작품 속에서 깜박인다.
이불 I '바위에 흐느끼다(Weep into stones)' 폴리우레탄, 포멕스, 합성 점토, 스테인리스 스틸 및 알루미늄 막대, 아크릴 패널, 합판, 아크릴 물감, 바니시, 전기 배선, 조명 280×440×300cm. 2005. 17세기 영국의 토머스 브라운(T. Browne)이 삶과 죽음을 성찰하며 쓴 철학적 에세이 <호장론(Hydriotaphia(1658)>에서 인용한 구절이 작품 속에서 깜박인다. ⓒ 김형순

위는 <대서사> 시리즈 2번째 작품이다. 서로 다른 유토피아적 비전이 충돌하는 지형도를 보여준다. 작품 중심부에는 산을 닮은 백색 구조물이 있다. 이건 도시를 인간이 만든 신전이라 한 '휴 페리스(H. Ferriss)'가 쓴 <내일의 메트로폴리스(1929)>에서 상상한 미래형 건물을 참조한 것이다.

그 구조물 안에는 구성주의와 바우하우스 건축의 잔해물이 얽혀 있다. 그 옆으로는 이스탄불의 소피아 성당의 복제품이 뒤집힌 모습으로 제시되었다. 황량한 지표면은 공사 혹은 철거 중임을 암시하는 그리드 구조로 떠받들어져 있다.

 이불 I '애프터 브루노 타우트 : 사물의 달콤함을 경계하라(After Bruno Taut : Beware the sweetness of things) 스테인리스 스틸 골조에 크리스털, 유리 및 아크릴 비즈, 알루미늄과 구리 철망, PVC, 스틸 및 알루미늄 체인, 거울 필름, 인조모,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및 아크릴 관 258×200×250cm 2007
이불 I '애프터 브루노 타우트 : 사물의 달콤함을 경계하라(After Bruno Taut : Beware the sweetness of things) 스테인리스 스틸 골조에 크리스털, 유리 및 아크릴 비즈, 알루미늄과 구리 철망, PVC, 스틸 및 알루미늄 체인, 거울 필름, 인조모,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및 아크릴 관 258×200×250cm 2007 ⓒ 김형순

"사물의 달콤함을 경계하라"는 독일의 유리건축가로 유명한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의 말이다. 이 건축가의 공상과 비전에 관심을 보여온 이불은 그가 1차 세계대전 당시 판타지 도시 계획서인 <알프스 건축(Alpine Architektur, 1917~1919)>에서 제안한 걸 받아들여 강철, 유리, 항공 기술을 결합해 만들었다. 더 나은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유토피아적 나래를 펼친 설치물이다.

공중에 낮게 떠서 반짝이는 이 구조물은 매혹적이지만 한편 매우 불안해 보인다. 별천지 같은 유토피아 섬과 유영하는 난파선 같은 폐허지 사이를 헤맨다. 이불은 존재도 하지 않는 걸 공상하는 건축가 타우트의 꿈과 비전을, 그가 다 표현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한 것까지 다시 풀어냈다.

이제 끝으로 이불 작품 '소장처와 수상경력'의 소개로 기사를 맺는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뉴욕), LA 카운티 미술관, 테이트 모던(런던), 대영박물관, 캐나다 국립미술관, 도쿄 모리 미술관, M+ 홍콩, 리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그녀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2022년에는 시카고 예술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제9회 루트 바움가르트 상(2023), 호암 예술상(2019),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2016), 광주비엔날레 눈 예술상(2014),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1999) 등을 수상했다. 이불은 동시대의 인류 보편적 문제를 예술로 풀어낸 작가로, 전 세계 젊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선각자로 우뚝 섰다.

덧붙이는 글 | [전시 연계 프로그램 소개]

[하나] 이번 전시는 리움미술관과 홍콩 M+가 공동 기획했으며, <2026년 3월 홍콩 M+등 국제 순회전>도 열릴 예정이다. 관련 프로그램 소개 / 큐레이터 토크 - 강연자 : 곽준영 리움미술관 전시기획실장 - 일시 : 10월 중 / 장소 : 리움 강당

[둘] 강연 - 강연자 : 추후 안내 - 내용: 이불 작가의 을 중심으로, 작가의 건축적 요소를 개인적 서사로 형성하는 표현 방식을 철학, 건축, 미학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연구자의 강연 및 대담 세션 - 일시 : 11월 중 장소 : 리움 강당


#이불#태양의도시#몽그랑레시#신체와사회#장엄한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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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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