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국가인공지능(AI) 전략위원회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미국과 유럽, 중국은 물론이고 신흥국들까지 자국 데이터를 보호하고 자체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소버린 AI(Sovereign AI, 주권적 AI)' 전략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습니다. 여기서 Sovereign AI란 단순히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가가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의 데이터와 컴퓨팅 인프라 위에서 독립적으로 AI를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는 역량, 즉 '디지털 자주권'을 의미합니다. 한국 역시 초거대 언어모델과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투자에 박차를 가하며 "우리만의 AI"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전제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습니다. 바로 AI가 전기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대형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모합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전체 소비의 4%를 넘어섰고, 2030년이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도 반도체와 AI 산업을 동시에 키운다면 전력 수요의 급증은 불가피합니다. 문제는 이 전력을 어디서,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통계상 한국의 에너지 자급률은 17~19% 수준으로 보이지만, 이는 수입 연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원자력을 포함한 수치입니다. 원자력을 제외하면 실질 자급률은 3~4%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한국은 사용하는 에너지의 96%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AI와 반도체 산업을 아무리 성장시켜도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거나 공급망이 흔들리면 산업 자체가 치명적 타격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소버린에너지(Sovereign Energy)', 즉 에너지 주권이란 단순히 더 많은 에너지를 확보하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스스로 통제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을 갖추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와 안보를 지켜내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최대 활용이 필요합니다. 태양광과 풍력, 해상풍력뿐 아니라 수열, 지열, 폐기물 에너지까지 통합적으로 개발해 산업단지와 도시, 농촌에 이르기까지 분산형 발전을 확산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저장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배터리 에너지저장시스템(BESS)과 양수발전, 수소 저장 등 다양한 기술을 조합해 안정성을 높여야 합니다.
또한 지능형 계통 혁신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재생에너지 클러스터와 마이크로그리드, HVDC 에너지 고속도로 같은 설비가 전력망을 뒷받침하고, 지역과 산업별로 맞춤형 계통을 구축해야 합니다. 여기에 AI 기술을 접목한 수요 관리도 핵심입니다. 데이터센터와 공장, 빌딩 단위에서 실시간 전력 사용을 최적화하고, 피크 수요를 분산시킴으로써 계통 비용과 탄소 배출을 동시에 줄일 수 있습니다.
해외는 이미 빠르게 움직이는중
해외는 이미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럽은 데이터센터 신규 인허가를 재생에너지 조달 계획과 연계하고 있으며,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RE100 달성을 위해 자가 발전소와 장기 전력구매계약(PPA), 에너지저장시스템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산업단지를 설계하는 단계부터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공급을 하나의 패키지로 결합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AI를 기술 문제로, 전력을 전력회사의 문제로 따로 떼어놓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큽니다.
결국 AI 산업과 전력정책, 기후정책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패키지로 다뤄져야 합니다. 재생에너지와 저장, 계통 혁신을 통해 에너지 주권을 확보할 때만 Sovereign AI 전략도 완성될 수 있습니다. Sovereign AI가 국가 전략으로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Sovereign Energy라는 토대가 필요합니다. AI 시대의 진정한 주권국가로 서려면, 우리는 에너지 주권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아시아개발은행 컨설턴트입니다. 이 기사는 굿모닝 충청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