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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①] 찢기고 터진 현대사 온몸으로 견딘 곳, 거기 이해학이 있었다

 6월 2일 성남 주민교회에서 만난 이해학 원로목사와 이재명 후보.
6월 2일 성남 주민교회에서 만난 이해학 원로목사와 이재명 후보. ⓒ 이해학

고난과 아픔에서 열사도 대통령도 나와

- 성남에 유독 열사가 많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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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는 1960~70년대 서울 도심의 도시빈민을 강제이주시키면서 탄생한 지역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도심 미화'가 명분이었으나 실제로는 빈민을 한데 모아 관리·통제하기 위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1980년 5월 당시 전라도 광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성남시를 군인들이 포위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처럼 성남은 국가가 위험지대로 규정하고 관리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한 고난과 아픔에서 열사도 나오고 대통령도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만이 아닙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도 성남에서 노동운동을 했고,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이 헐리고 광주대단지로 이주해 살았습니다."

생존권 투쟁이 곧 민주화운동

- 성남 민주화운동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성남 민주화운동은 도시의 특수한 조건 속에서 형성됐습니다. 철거민과 빈민이 강제로 이주해 온 공간, 일자리와 기반기설이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남 민주화운동은 곧 생활 속의 투쟁이었습니다.

집을 지키기 위한 철거민들의 고공시위, 노동자들의 파업, 학생들의 야학 활동이 모두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주민교회는 이 모든 운동을 잇는 허브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남 민주화운동은 신앙과 생활, 민주주의가 분리되지 않고 맞닿아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성남은 철저히 민중의 삶 속에서 민주화운동이 전개됐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도시 자체가 이재명의 교과서

-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6월 2일 주민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나더러 이재명의 멘토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닙니다. 그에게 진짜 멘토가 있었다면, 그것은 성남의 고난받는 사람들입니다. 이재명은 그 텃밭에서 자랐고, 가난과 억압, 철거와 생존의 현장에서 정치적 기량을 키운 사람이에요. 성남이라는 도시 자체가 그에게 교과서였고, 빈민과 노동자, 철거민들이 그의 스승이었습니다.

그가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토양은 성남의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가진 사람들의 시각이 아니라 바닥에서 피해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문제를 보고, 어떻게 풀 것인가 고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나는 이 대통령에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매 맞고 쫓기는 사람들의 아둘람 공동체

- 이 대통령은 4월 27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 성남시청 앞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우리는 거기서 꼴찌들이 모여 노는 놀이터를 만들었습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다 쫓기면 숨고, 학생운동가들도 와서 숨어 지내고. 빈민들이 철거반대투쟁하다가 쫓겨와서 몇 주씩 있다가기도 하고. 지나놓고 보니까 '소도(蘇塗)'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재명 변호사도 그 시절 쫓기던 중에 우리 교회 지하 기도실에 와서 머물렀습니다. 내가 한 일이라면 그를 고발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그가 거기서 어떤 꿈을 꾸었는지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곳이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던 사람들의 아둘람 공동체였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블레셋 땅까지 도망 다니며 미친 사람인 척하다가 결국 아둘람 굴에 숨어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굴에 다윗만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당시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빚에 시달리던 사람들, 권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하나둘씩 다윗에게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지내며 공동체를 이루고, 그 안에서 고난과 단련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지도력을 키워 나갔지요. 결국 그 아둘람 굴의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고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는 핵심 세력이 됩니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오른쪽)가 사면 후 이해학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겨레살림공동체 사무실을 방문해 대화하는 모습.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오른쪽)가 사면 후 이해학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겨레살림공동체 사무실을 방문해 대화하는 모습. ⓒ 이해학

대통령에게는 '조국 풀어달라', 조국에게는 '형을 끝까지 살라'

- 이재명 대통령에게 조국 전 대표의 사면을 요청했고 그의 사면 후 이 대통령이 지지율이 급락했습니다. 이런 결과를 예측했더라도 사면을 요청했겠습니까?

"나는 정치적 득실과는 전혀 상관없이 원칙의 문제로 사면을 요청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든 내리든 그건 나의 관심이 아닙니다. 내 요구는 단순했습니다. 대통령에게는 조국을 풀어달라는 것이고, 조국에게는 형을 끝까지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에게는 검찰 권력의 상징적 고리를 끊는 결단으로서 조국 사면을 요청했고, 조국 전 대표에게는 영적 수양과 은둔의 시간을 갖기를 요청한 것입니다. 나 역시 첫 번째 징역 때 감옥 안에서 요가를 수련했어요. 그곳에서 나는 몸뿐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조국 전 대표도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의 시간을 통해 내면의 훈련과 성찰을 해야 한다고 본 겁니다. 그 과정이 끝나야 비로소 다음 단계의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정치 일선에 나서지 말고 숨어라"

- 사면 뒤에는 조국 전 대표에게 어떤 조언을 하셨습니까?

"그가 출소한 뒤 직접 나를 찾아와 이 자리에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때 내가 한 말은 단호했습니다. 정치 일선에 나서지 말고 숨어라, 사람들이 '조국은 어디 있느냐'고 궁금해 하더라도 나타나지 마라, 국내에 숨을 데가 없으면 KOICA(한국국제협력단) 같은 곳을 통해 아프리카 자원봉사를 가든가 해라.

나는 그에게 인도의 예를 들었습니다. 간디가 폭력에 맞서 비폭력으로 인도를 해방시켰다면, 그의 제자 비노바 바베는 땅을 걸으며 나누는 '봉헌 운동'으로 존경받았어요. 또 독립운동가 오르빈도는 감옥에서 요가를 수련하다 도(道)를 터득했고 그의 사상은 '오르빌 공동체'라는 이상도시로 실현됐습니다.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권을 잡는 정치가 아니라 인간을 살리는 성자의 길을 가라. 정치보다 더 큰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그는 '제가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까'라고 하더군요. 지금도 나는 그가 세상과 자신을 모두 치유할 수 있는 내면의 정치를 배우길 바랍니다."

 2019년 10월 11일 <윷놀이의 남북공동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발대식>에서 윷을 던지는 모습. 왼쪽에서 네 번째가 이해학 목사.
2019년 10월 11일 <윷놀이의 남북공동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 발대식>에서 윷을 던지는 모습. 왼쪽에서 네 번째가 이해학 목사. ⓒ 이해학

통일, '신문지 합봉법'에서 배우자

- 겨레사랑북녘동포돕기운동 공동의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통일운동을 오래 하셨고 현재도 겨레살림공동체 이사장으로 계십니다. 통일운동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원칙은 있습니까?

"양봉에서 사용하는 '신문지 합봉법'이 있습니다. 벌통 두 개를 바로 합치면 서로 다른 냄새 때문에 벌들이 싸워 죽지만, 신문지를 사이에 두면 냄새가 천천히 섞여 싸움이 멈춥니다. 그때는 신문지를 제거하더라도 더는 싸우지 않고 함께 살아갑니다.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이념'의 냄새만 넘어서면 됩니다. 이념 때문에 80년을 싸웠지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남과 북이 손을 잡으면 동방의 등불이요, 아시아의 중심국이 됩니다. 그때는 일본, 러시아, 중국, 미국을 끌어안고 화해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됩니다."

'길 위의 민주주의' 작은 투쟁, 작은 정의가 중요

- 지금 시대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오늘날 민주주의는 제도적으로는 크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철거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정치권력은 종종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합니다. 저는 늘 말합니다. '민주주의는 멀리 있지 않다. 작은 정의에서 시작된다.' 썩은 계란 사건처럼, 일상에서 불의에 저항하고 작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입니다.

지금 청년들이 해야 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대한 정치의 장에 휘둘리기보다, 생활 속에서 약자의 편에 서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모습입니다. 저는 오늘의 민주주의가 제도적 완성에 도취되지 말고, 여전히 길 위의 민주주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목사는 감옥에서 가장 참기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썩은 계란 사건'이라고 했다. 밥과 함께 썩은 계란이 나온 것에 항의해 단식 투쟁에 들어갔고 11일째 되던 날 끝내 교도소 당국이 물러났다. 이후 모든 계란에는 생산일자 표시가 붙게 됐다. 감옥이라는 억압적인 공간에서 작은 투쟁과 작은 승리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한 손에는 예수, 한 손에는 김종태

- 삶 전체를 통해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제 삶을 돌아보면,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아이스케키 통을 메고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성남 주민교회, 민주화운동, 감옥과 고문, 그리고 오늘날까지 모든 순간이 '꼴찌들과 함께한 길'이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잘난 사람, 권력자, 가진 자가 아닌 가장 가난하고 가장 억눌린 이들과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그 길 위에서 한쪽 손목은 예수가, 다른 한쪽은 김종태가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쓰러지지 않고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합니다. '민주주의는 멀리 있지 않다. 작은 정의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정의는 언제나 민중과 함께하는 데서 나온다.' 이것이 제가 남기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이해학 목사.
이해학 목사. ⓒ 임미리



#이해학#이재명#조국#성남시#주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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