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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10 15:38최종 업데이트 25.10.10 15:38

최고령 은행나무가 준 묵시의 가르침

[치악산 일기] 제 259화 - 국내 최장수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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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의 국내 최고령 은행나무
은행나무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의 국내 최고령 은행나무 ⓒ 박도

오랜 한가위 연휴 기간 내내 꼼짝달싹치 않고 집안에서만 지냈다. 그러자 엉덩이가 들썩 몸부림이 날 찰나, 이웃에 사는 문화관광 해설사가 바람이라도 쐬자고 하여 연휴 마지막 날 오후 따라나섰다.

그분이 안내한 곳은 국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은행나무가 있는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였다. 이 은행나무 수령(樹齡, 나무 나이)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800~1000 년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렇게 볼 때, 아마도 고려 시대에 심겨진 이 나무는 고려의 멸망, 조선의 건국,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해방, 6‧25전쟁 등 숱한 굵직한 국난을 모조리 다 겪었다 할 수 있겠다.

그 나무를 한참 완상(玩賞, 즐거이 구경) 하고 돌아오는 내내 어떻게 1천 년이나 가까운 세월 동안 한 자리에서 생명을 부지하고 살아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골똘히 추리한 바, 일체 불평 불만은 스스로 삭이면서 자신의 감정은 한 마디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온갖 수난의 세월을 감내하면서 지냈기 때문일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 내 생각을 토로하자 핸들을 잡은 문화관광 해설사는 자기 생각도 나와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좀 더 오래 살려면 앞으로도 저 은행나무처럼 주어진 분수에 만족하면서 입은 닫고 살라는 묵시의 계시를 넌지시 일깨워 주었다. 그동안 내가 체험한 바,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듣기도 하고, 실제로 격변기에 자기 감정을 솔직히 토로하거나, 또는 용감하게 행동으로 옮긴 이들은 젊은 날 역사의 격변기에 희생이 된 분을 많이 봐왔다.

은행나무 반계리 은행나무 안내판
은행나무반계리 은행나무 안내판 ⓒ 박도

불평 불만을 속으로 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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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편에서는 그런 사람을 비겁한 사람, 또는 비 양심적이라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역사의 기록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마도 역사의 기록자는 입은 닫고 올곧은 기록은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몰래 적어 간직한 뒤, 사후에 그 후손들이 남기는 것이 현명한 처사로 판단 된다.

반계리 국내 최고령 은행나무를 완상하고 돌아오는 내내 나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그와 함께 앞으로의 삶은 가능한 현실의 불평불만은 가능한 속으로 삭이면서 그 정곡을 꿰뚫는 진실은 촌철살인의 필치의 은밀한 기록으로 남겨, 후세인의 거울이 되게 하는 게 이 시대 지식인의 가장 바람직한 자세일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오늘 본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의 국내 최고령 은행나무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묵시의 한 그루 나무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박도 페북에도 실립니다.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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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parkdo45) 내방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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