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명예퇴직 일주일 후 60대 직원 돌연사
2025년 1월 토탈영업TF(부서명) 소속 40대 직원 자살
2025년 5월 토탈영업TF 소속 40대 직원 자살
2025년 6월 KT넷코어(자회사) 전출된 40대 직원 자살
2025년 7월 토탈영업TF 50대 직원 돌연사
2025년 8월 KT넷코어 전출된 50대 노동자 돌연사
지난 10개월간 KT에서 6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 모두 갑작스러운 돌연사 혹은 자살이었다. 저마다 처한 환경은 달랐지만, 한 가지 사실은 같았다. 지난 2024년 10월 단행된 구조조정 대상 직원들이었다.
"죽음의 KT."
지난 9월 17일 <일터>와 만난 김미영 KT새노조(제2노동조) 지부장이 말했다. 그러면서 "대체 어떤 회사에서 사람이 이렇게 죽느냐"며 "지난해부터 시작된 구조조정 없이 설명할 수 없는 문제다. 회사의 책임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KT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9월 17일 서울 영등포동에 위치한 모 카페에서 김미영 지부장에게 지난 1년 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들었다.

▲KT새노조 김미영 지부장은 “대체 어떤 회사에서 사람이 이렇게 죽느냐”며 “지난해부터 시작된 구조조정 없이 설명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 손가영
회사에서 벌어진 협박과 모욕... "가만 놔둘 거라는 생각은 오산"
KT는 지난 2024년 10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전체 대상자는 5750명, 대부분 기술직 직원이었다. 이 중 4820명을 새로 만들 자회사로 전출시키려 했다. 임금 등 처우가 모회사 KT의 70% 정도로 줄어드는 자리였다. 회사는 'AI 기술 대응 등 조직 혁신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변했고, 직원들은 '자연 퇴직자도 많고 적자 회사도 아닌데, 이유가 없다'며 반발했다.
최종적으로 KT는 2800여 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고 1723명을 자회사로 옮겼다. 끝까지 거부한 2600여 명은 KT에 남았다. 이들은 '토탈영업TF'란 부서로 전원 일괄 배치됐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수 년 넘게 기술직에 있었던 이들에게 영업을 맡긴 것이다.
김 지부장은 "구조조정이 발표된 때부터 괴롭힘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자발적으로 자회사 전출에 동의하는 직원 수가 적자, 관리자가 협박과 모욕을 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MBC 보도에 따르면, 안창용 부사장은 "(자회사로 가지 않고 잔류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굉장한 모멸감과 자괴감을 느낄 것이고,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사람 사는 세상인데 못 버티겠느냐? 스트레스 때문에 아마 (KT에 잔류해서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외곽으로 전근을 보낼 것이란 압박도 가했다.
또한 SBS biz 보도에 따르면, 최시환 전무는 2024년 10월 30일 대구지역 직원들이 모인 설명회에서 "회사가 이렇게 방향을 잡고 (추진)하는데 (전출) 안 하는 건, 군대로 보면 '고문관', '꼴통'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구에서만 평생 일해 온 우물 안 개구리들처럼 이 상황이 지금 어떤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잔류 직원을) 가만히 놔둘 거란 생각도 오산"이라고 덧붙였다.
기술직 2600여 명 영업부 일괄 전환 "모멸감"
구조조정 과정은 대상 직원들에게 모멸감을 남겼다. 그러나 더 큰 모멸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2600여 명이 배치된 토탈영업TF 부서의 일이다. 김 지부장은 "적절한 인력 재배치를 할 수 있었음에도 단 1명도 빠짐 없이 신생 영업 부서로 몰아넣었다"며 "회사는 우리를 '사업합리화 대상'이라고도 불렀다"고 했다.
"평생 영업 한 번 안 해 본 이들"이 영업을 뛰었다. 김 지부장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고, 그 자체로 자괴감을 느낀 이들이 많았다"며 "그런데 이에 더해 자택에서 70km 떨어진 원거리로 발령을 내거나, '정상' 영업직원들과는 다른 조건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KT의 영업방식은 대리점을 관리하는 '간접 영업'으로 상당 부분 전환되었음에도, 이들에게는 '직접 영업'을 부여하는 식이었다. 기존 영업부서는 상품별, 고객별로 판매 상품이 세분돼 있으나, 이들은 'KT의 모든 상품'을 판매해야 했다. 원거리 발령, 실적 압박, 근태·법인카드 통제 등도 이루어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직원 3명은 나이가 젊었다. 각각 39살, 41살, 43살이었다. 김 지부장은 "이리 젊은 직원들이 왜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는지를 물어야 한다"며 "사람은 희망이 있으면 산다. 그러나 직장은 희망을 꺾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희망이 있는 일터였다면, 죽음을 이리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책연구소 이음이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4일까지 토탈영업TF 노동자 275명과 일반 영업직 노동자 27명, 총 302명을 대상으로 긴급 정신건강 실태를 온라인 설문조사로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94.4%가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고 이중 74.5%가 '매우 불안하다'고 답했다(약간 불안 19.9%). 우울증을 경험한 비율은 62.7%에 달했고 응답자의 43.7%가 수면장애를 겪었다고 답했다.
김 지부장은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회사의 태도에 "환멸이 난다"고도 말했다. 지난 8월 여섯 번째로 발생한 사망에 노동조합(1노조)이 조사에 나섰으나, 조사 석상엔 회사 간부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 지부장은 "토탈영업TF 직원들을 앉혀 놓고 '무슨 문제가 있었느냐'고 묻는데, 맨 뒷자리에 노무팀 직원, 회사 관리자, 지사장 이렇게 쭉 앉아 있었다"고 밝혔다.
김 지부장은 "이런 상황을 다 알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정부"를 향해서도 분노를 쏟아냈다. 그는 "조사에 회사 간부가 동석한 사실을 듣고 너무 화가 나서, 국회 등을 통해 '정부가 제대로 조사해 달라'며 고용노동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줄기차게 요구했다"며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20년 전 '죽음의 KT'가 반복되고 있다
KT에서 직원들의 연쇄 사망이 발생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KT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2년 11월까지 센터에서 확인한 사망자는 245명이다. 재직 중에 사망한 노동자는 122명이고 명예퇴직자 중 사망자는 109명이다. 이 중 18명이 자살했고, 뇌출혈, 심장마비 등 돌연사가 70명, 백혈병을 포함한 암으로 사망한 이는 102명이다. KT새노조는 당시 이 배경으로 2002년 강행된 민영화와 2006년부터 시작한 'CP(부실 인력) 비밀 퇴출 프로그램'을 지목했다.
CP비밀퇴출프로그램은 명예퇴직거부자, 직위미부여자, 해사행위자 등을 'C Player'라는 부실인력으로 지목해 이들을 해고하는 계획이었다. 2013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불법성을 확인한 인사관리다. 표적 직원에게 단독업무를 주고 성과가 부진할 시 징계를 누적해 파면하는 기획이었다. 당시는 1995년부터 시작된 노조탄압과 2002년 민영화를 거치면서, 노조가 해체되다시피 해 제 기능을 못 할 때였다.
KT는 2003년 명예퇴직 거부자 480여 명을 '상품판매전담팀'에 몰아넣었다. 책상과 컴퓨터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들을 겨냥한 직장 내 따돌림, 감시, 미행 등의 문제가 사회에 알려지며 비판이 거세지자, 상품판매전담팀은 2004년에 해체됐다. 김 지부장은 "그때의 상품판매팀이 20년 후 '토탈영업TF'로 다시 등장했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노동자의 자존감과 스스로 느끼는 노동의 가치의 문제가 무너지면서 이런 비극이 이어지는 게 아닐까"라며 "잔류한 직원들은 '무능한 사람이 됐지만, 내가 선택했으니 내가 견뎌야 된다'는 자책을 안고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며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KT 내부의 문제들을 계속 공론화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8월 KT는 <이코리아>에 구조조정 이후 이어진 노동자들의 사망에 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면서 "개별 사안마다 개인적 배경이 있는 만큼, 회사가 직접 관련됐다고 단정하기는 조심스럽다"라고 밝혔다.
지난 1월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 정아무개 씨는 유서를 남겼다. 유서 전문을 싣는다.
"너무 힘들다.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무슨 잘못을 했길래 죄인이 되야 하는가.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고시에 합격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다. 그 결과가 출근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돼 버렸다. 누가 내가 바친 청춘을 책임져 줄 것인가. 이런 말도 안되는 교육 받으면서 자괴감이 든다. 회사의 방향을 그렇다고 회사를 위해 일해 온, 열심히 살아 온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된다. 내가 언제 이런 방향의... 내가 이런 취급을... 난 한 번도 내 삶의 터전에 소홀히 한 적 없다. 이런 결정을...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내몰려야 했던... 난 인정할 수 없다. 내 삶이 헛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 10월호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을 쓴 손가영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선전위원회에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