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남구 신정동 상가의 한 난간에 걸린 이혜인 남구의원의 현수막 ⓒ 이혜인
지방의회 구의원이 지역구에 내건 추석 인사 현수막이 사라졌다. 구의원은 '합법적으로 내걸은 재산이 도난당했다'고 생각해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이 조사한 결과, 없어진 현수막은 누군가에게 약값 천 원을 보탤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 남구의회 이혜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추석 연휴 겪은 일인데 이 의원은 "'정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며 "그 질문의 답을 잃지 않기 위해, 다시 처음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사연은 이렇다. 이 의원은 추석을 앞두고 울산 남구 신정동 상가 주변의 한 난간에 '풍성한 한가위 주민 삶에 힘이 되는 정치로 보답하겠습니다' 라는 문구가 적힌 추석인사 현수막을 내걸었다.
현행법상 지방의원은 명절 때 보름간은 '정당 현수막 거치대' 외의 다른 곳에도 주민에게 인사를 하는 현수막을 내걸 수 있다.
할머니는 왜 현수막을 뜯어갔을까
그런데, 하루 뒤 이 의원은 자신이 내건 현수막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 의원의 신고를 받고 주변의 CCTV를 통해 확인했다. 현수막을 뜯어 간 이는 한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그 현수막을 동 행정복지센터에 가져가기 위해 뜯어갔는데, 이는 천 원을 받고 남편의 신장투석 약값에 보태기 위해서였다.
지자체는 거리 곳곳에 난무하는 불법현수막을 근절하기 위해 이를 뜯어오면 천 원을 지불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 할머니는 불법 여부를 가리지 않고 이 의원의 현수막 이외에도 주변에 있는 여러 개의 현수막을 뜯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은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처벌불원서를 써서 당초 신고한 건을 '합의로 처벌이 없도록' 했다. 나머지, 할머니가 뜯어간 다른 현수막의 경우 대부분 불법현수막이라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할머니의 사연을 전해 듣는 순간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며 "그 현수막은 저에겐 '정치인의 얼굴'이었지만, 그분께는 하루를 버텨내기 위한 작고 귀한 수단이었다. 홍보물의 일부로만 생각했던 현수막 한 장이 누군가의 생계와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에 저는 선처를 결정했고, 부끄러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치를 한다는 사람이, 삶의 무게를 헤아리기보다 의심부터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며 "의정활동이라는 말 속에 갇혀 있는 동안, 현장은 이미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만드는 조례, 편성하는 예산, 그 모든 제도들이 정말 그분들에게 닿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하게 된다"며 "그래서 이번 추석엔 다시 질문을 시작한다. '정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의원은 "연휴가 끝나면 그 할머니께 직접 연락을 드릴 예정"이라며 "혹시나 행정의 사각지대에 계신 건 아닌지, 도움받지 못하고 계신 건 아닌지 직접 확인해보려 한다"고 전했다.

▲울산 남구 신정동 상가의 한 난간에 걸린 이혜인 남구의원의 현수막이 뜯겨져 있다. ⓒ 이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