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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을 파괴한 행사-사업 이름.
우리말을 파괴한 행사-사업 이름. ⓒ 윤성효

'카운티', '잡', '퀘스트', '모아 페어', '다이룸플러스', '버추얼', '페어', '그란페스타', '락킹', '투르 드' 등. 이 단어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남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단체들이 쓴 외래어들로, 좋은 행사나 정책을 누구나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쉬운 우리말로 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외래어 투성이의 행사·사업명칭에 이창수 (사)토박이말바라기 늘맡음빛(상임이사)은 "공무원들이 우리 말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성토했다. 명칭을 정할 때부터 쉬운 우리말로 해야 하고, 이미 그렇게 썼더라도 한글날에 누군가는 지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창수 상임이사는 "공무원 시험칠 때 우리말 실력을 잣대로 하는 게 아니라 영어 잘하는 사람을 뽑으니 더 문제다. 그러니 공무원들은 우리말보다 영어가 쉽다고 여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우리말에 대한 의식을 바꾸는 교육을 해야 한다"라며 "공무원들이 국민을 대상으로 손쉬운 우리말을 찾아서 쓰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세종대왕탄신일 맞아 행사 열면서 외래어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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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년 사이 경남에서 행사·정책·사업에 붙인 외래어 사례들을 간추려 보았다. <오마이뉴스>는 책 <요즘 우리말께서는 안녕하신가요?>를 펴내고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우리말 지킴이'(2018년)로 선정된 이우기 경상국립대 홍보실장의 자문을 받아 몇몇 '우리말 파괴' 사례들을 골라 한글로 옮겨 보았다.

사업 이름부터 우리말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보도자료 작성자들을 대개 "사업명이 중앙부처를 비롯해 위에서 정해져 내려오다 보니 지역이나 현장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말부터 한다.

쉽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을 버리고 어려운 외래어를 끌어다 쓴 사례는 수없이 많다. 거창군 공립 치매전담형 노인요양시설의 이름은 '거창시니어카운티'다.

거창군은 지난 6월 이 시설에 누가 여름이불을 기탁했다며 자료를 냈다. '시니어'는 '노인' 내지 '어르신'이고, '카운티'는 '공동체(주민)'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거창치매노인요양시설'이라고 하면 된다. '치매'라는 단어가 부담이라면 '거창희망동네' 내지 '거창기억학교', 아니면 '거창추억되살림학교'로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자기혈관 숫자일기-레드서클 캠페인'이라는 말이 있다. 지자체가 지난 9월 심뇌혈관질환 예방관리주간에 주민들의 건강 실천 확산을 위해 벌인 활동이다. '레드서클'은 의료분야 종사자들은 잘 아는 용어이겠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굳이 이 단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자기혈관 숫자알기 홍보'라는 말로도 충분히 뜻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창원문화재단이 화요일 오전에 음악회를 열면서 붙인 이름은 '화요모닝콘서트'였다. 우리말로 한다면 '화요아침음악회'다. '오전 11시'를 '모닝'이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아침을 강조하고 싶다면 '해뜨는 음악회'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창원문화재단은 그 행사를 알리는 보도자료에 '시즌 티켓 오픈'이라고 썼는데,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입장권 판매 시작'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김해시는 지난 5월 '글로컬 시티 김해', '슬로건', '테마전', 'AI'라는 단어를 사용한 보도자료를 냈다. 제목은 "김해한글박물관, 제1회 세종대왕탄신일 맞아 '세계와 소통하는 한글' 테마전 개최"이다. '글로컬 시티'는 '세계적(국제적) 도시'라고 하면 되고, '슬로건'은 '구호', '테마전'은 '주제전', 'AI'는 '인공지능'이다.

김해한글박물관은 김해 출신 한글학자 한뫼 이윤재, 눈뫼 허웅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21년에 개관했고,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을 조각한 김영원 작가가 제작한 '세종대왕 조각상'을 2023년에 기증받아 한글문화 확산에 노력해 왔다고 김해시가 관련 보도자료에서 소개했다.

그런데 김해시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언급하고 한글문화 확산에 노력한다고 하면서 쉬운 우리말이 아닌 어려운 외래어를 끌고 와 보도자료를 냈으니, 이를 두고 이율배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해한글박물관, 우리말 관련 행사 홍보물. 세종대왕탄신일 맞아 ‘세계와 소통하는 한글’주제전'을 열었는데, 외래어가 있다.
김해한글박물관, 우리말 관련 행사 홍보물. 세종대왕탄신일 맞아 ‘세계와 소통하는 한글’주제전'을 열었는데, 외래어가 있다. ⓒ 김해시청

"여러 영어 단어를 결합해 쓴 말이 더 어색"

정부나 지자체나 요즘 관심이 많은 분야가 '일자리', '고용' 문제다. 이와 관련한 행사도 많고, 자료도 많다. 그런데 사용된 용어가 외래어(외국어)투성이다. 대표적으로 '잡 퀘스트', '잡 모아 페어'이다.

경남도는 지난 9월 창원에서 '경남 잡 퀘스트(JOB Quest)'를 성황리에 열었다고 알렸다. '잡'은 '직업' 내지 '일자리', '퀘스트'는 '탐색', '추구'라는 뜻이다. 우리말인 '직업 탐색전' 내지 '직업을 찾아라'라고 하면 누구나 이해할 것이고, '취업박람회'라고 하면 쉽게 뜻이 통할 것이다. '일자리(직업) 정보 박람회'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또 "Fly with 잡(Job) 모아 페어(Fair)"라고 부른 행사가 있었다. 경상국립대학교가 지난 9월 재학생, 졸업생, 지역청년들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연 행사였다. 'Fly with'는 '함께 날다', '잡'은 '직업', '페어'는 '박람회'라는 뜻이다. 한글로 옮겨 "함께 날자, 모두의 일자리 박람회"라고 하면 누구나 무슨 행사인지 쉽게 알 것이다.

여러 영어 단어를 결합해 쓴 말이 더 어색한 행사명이 있다. 경남도가 지난 3월 세계여성의날에 낸 여성 창업 관련 보도자료에 쓴 '메이커 스페이스 다이룸플러스'가 대표적이다. '다이룸플러스'라는 말에 대해 경남도는 "'다이(DIY)', '룸(ROOM)', '플러스(PLUS)'의 의미를 결합한 명칭으로, 여성들이 직접 창작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남도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전국 최초로 여성친화형 '메이커 스페이스'로 지정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우선 '메이커 스페이스'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기 어렵다. '다이룸플러스'는 괄호 안 해설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한눈에 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메이커 스페이스 다이룸플러스'가 아니라 '여성 스스로 (일하는) 방'이라고 하면 어떨까.

또 경남도는 지난 4월 김해에 '미래자동차 버추얼 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곳은 국책사업으로, 자율주행차와 전기·수소차 기술 개발을 한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버추얼'은 '가상'이라는 말이므로, '버추얼 센터'는 '가상공간'이다. '미래자동차체험시설(센터)' 내지 '미래자동차 기술개발·시험소'로 하면 될 것 같다.

문학 포함한 문화예술, 체육 행사에 '우리말 버리기' 심해

우리말 버리기는 글을 쓰는 문인을 포함한 문화예술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체육분야 행사도 마찬가지다.

경남·부산작가회의는 올해 처음으로 '부마항쟁문학제'를 열면서 관련 홍보물에 우리말이 아니라 외래어로 표기해 놓았다. '문학 심포지엄', '봄꽃 프로젝트 공연', '투어'라고 썼다. 심포지엄, 프로젝트, 투어는 비교적 널리 쓰이는 외국어라 할 수 있지만, 다른 말로 얼마든지 바꾸어 쓸 수 있다. 가령 '문학 학술대회', '봄꽃 대잔치', '현장 답사'라고 하면 될 것이다.

또 '아트페어'가 있다. 경남도, 창원시는 경남미술협회 등과 함께 지난 9월 창원에서 "제12회 경남국제아트페어"를 열었다. '경남국제미술(예술) 박람회' 내지 '전람회(전시회)'로 하면 될 것이다.

요즘 자주 쓰는 말이 '인공지능(AI)'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경남도, 창원시, 경남테크노파크 등 관련 기관·단체가 지난 9월 창원에서 인공지능 관련 전시회를 열면서 거리에 내건 펼침막에 사용된 행사명은 'THE NEXT Ai'이다. 이 행사명 앞에 작은 글자로 '미래를 여는 Ai 전시회'라고 되어 있다.

작은 글자로 된 '미래를 여는 Ai 전시회'를 더 크게 해야 할 거 같고, 우리말로 하면 '인공지능 너머의(다음의) 세상' 내지 '미래를 여는 인공지능 전시회'로 바꾸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창원상공회의소, 마산자유무역지역기업협회 등은 지난 5월 "마산 FTZ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전방안 모색 토론회"를 열었다. 행사 홍보물의 제목에 'FTZ'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아무런 풀이가 없다.

이 단어를 아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FTZ'는 국외무역지역 내지 자유무역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쉬운 우리말을 써서 '마산자유무역지역,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전방안 모색 토론회'라고 하면 일반 시민들도 더 많은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또 도대체 무슨 행사인지 알 수 없는 '그란페스타 러닝'이 지난 9월 창원에서 열렸다. 내용을 보니, 창원시육상연맹이 참가비를 받아 5km, 10km를 달려 시상을 한 행사였다. '그란', '페스타', '러닝'이라고 할 게 아니라 '5-10km 마라톤' 내지 '달리기 대회'로 하면 어떨까.

설명문 없이 제목만으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행사가 있다. 창원시가 7~9월 사이 연 '아트 그라운드, 꿈꾸는 피플갤러리'라는 전시회다. 디자인전람회 수상작, 웹툰 캐릭터, 드론 사진 수상작, 디카시 수상작과 관련한 전시였다.

행사명을 우리말로 하면 '창원 예술의 마당, 꿈꾸는 사람들의 꿈' 내지 '창원 예술가 모임, 그 꿈을 전시하다'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우리말로 짓지 않고 영어로 이름을 지어놓고 다시 한글로 번역하니 매우 어렵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공연 제목도 있었다. '해리빅버튼'이 지난 9월 진주에서 연 공연이었다. 제목이 '락킹한 피크닉'으로, 홍보물에 영문(ROCKING PICNIC)까지 표시해 놓았다. '피크닉'은 '소풍', '나들이', '모꼬지'로 바꿀 수 있고, '락킹'은 '굉장한', '멋있는'이다. 우리말로 하면 '굉장한 소풍(공연, 무대)'이다.

'투르 드 경남'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자전거 경주인 '투르 드 프랑스'에서 따왔다. '도로 자전거 대회'라고 하면 된다.

이우기 경상국립대 홍보실장은 "우리 지역의 고유한 정서나 언어를 녹여낸 행사 이름을 짓는 게 좋겠다. 남의 것 베끼기보다는 우리 것을 잘 다듬어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경남 한 바퀴'라고 하면 좀 일반적인 듯하고 '자전거로 고샅고샅 경남'이라고 하면 눈길을 끌 만하지 않을까"라며 "외국어대신, 우리말, 우리 정서, 우리 지역, 우리 감성 등을 찾아서 행사나 구호, 시설 이름을 지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우리말을 파괴한 행사-사업 이름.
우리말을 파괴한 행사-사업 이름.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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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효 (cjnews)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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