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공주 백제문화제가 달라졌다. 2018년 금강 공주보의 수문이 개방된 이후, 매년 가을이면 백제문화제를 위해 다시 수문을 닫았던 관행이 올해는 멈췄다. 공주시는 2025년 백제문화제를 수문이 열린 상태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단순한 행사 조건의 변화 같지만, 이 결정은 지난 몇 해 동안의 치열한 논쟁과 시민사회의 꾸준한 문제 제기가 만들어낸 결과다.
백제문화제는 오랫동안 공주의 대표적인 지역축제였다. 그러나 축제를 위해 한 달 가까이 금강을 담수하면서 고마나루 일대의 모래톱이 사라지고, 생명이 살아 숨 쉬던 강의 리듬이 끊겼다. 금빛 모래사장은 어느새 검은 펄밭으로 바뀌었고, 봄이면 이곳을 찾아 번식하던 꼬마물떼새와 흰목물떼새는 둥지를 잃었다. 축제가 끝난 뒤 시민들은 펄이 된 강바닥을 함께 걷어내며 죽음의 문화제가 남긴 흔적을 마주해야 했다.

▲행사후 펄이 가득해진 모습 ⓒ 김병기

▲모래사장 돌려주기 위한 펄걷어내기 행사 ⓒ 대전환경운동연합
2018년 처음 수문이 열린 이후 공주시는 환경부에 담수를 요구한 첫 번째 지자체였다. 환경부는 당시 공주시의 요청을 받아들여 2018년 한 해에 한해 담수를 허용했으나, 이듬해부터는 개방 상태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공주시는 2022년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공주시는 더 이상 그 약속을 지켜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 듯하다. 정부가 4대강 재가동 정책으로 회귀하고,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을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24년 백제문화제 현장에서 항의하는 모습 ⓒ 김병기
보의 재가동이 국정 기조가 되자, 공주시는 담수를 거리낌 없이 추진했다. 이에 환경단체들은 백제문화제를 향해 죽음의 문화제를 멈추라며 매년 항의를 이어갔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축제가 열리는 밤이면 시민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현장을 찾아가 생명을 살리자는 외침을 이어갔다. 그들은 담수를 중단하라 외쳤고, 그 외침은 고마나루의 어둠 속에서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짧은 축제를 위해 한 달간 이뤄지는 담수의 결과는 명확했다. 모래톱은 사라지고, 강의 숨결이 멈췄다. 시민들이 강변을 지켜보는 동안, 백제문화제는 실제로 생명을 죽이는 문화제가 되어버렸다. 이들은 봄마다 펄을 걷어내는 활동을 하며 그 피해를 직접 복원해야 했다.

▲녹조가 가득한 곳에 설치된 부교의 모습 24년 ⓒ 김병기
심지어 담수된 지 하루 만에 녹조가 가득한 강이 되었다. 공산성과 미르섬을 연결하는 부교주변에 녹조가 가득했다. 에어로졸로 녹조독성이 백제문화제를 찾은 시민들에게 그대로 노출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죽음의 문화제 안전을 위협하는 문화제의 전형이었다. 거기에 비가 오면 시설물이 떠내려가면서 쓰레기를 금강에 버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24년 시설물이 떠내려가는 모습 ⓒ 임도훈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공주시는 고심 끝에 백제문화제를 수문 개방 상태에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지난 수년간 시민들과 환경단체가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온 노력이 분명 영향을 미쳤다. 백제문화제 개막 이틀째인 10월 4일, 고마나루에는 다시 고운 모래사장이 드러나 있었다. 그 모습은 '죽음의 문화제'라 불리던 지난 시간의 어두운 흔적을 지워내는 듯했다.
현장에서 함께 모래톱을 지켜온 나귀도훈과 초췌은영은 내년 봄, 다시 이곳에서 꼬마물떼새와 흰목물떼새를 만나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2023년 백제문화제 때 담수를 막기 위해 물속 농성을 벌였던 사람들이다. 당시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강을 막았고, 활동가들이 모래톱 위에서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문을 닫아 수위를 높였다. 현장 직원은 상부의 지시라며 수문을 열 수 없다고 말했고, 활동가들은 목숨을 건 저항으로 이를 막아야 했다. 공주보 농성장은 세종보 담수를 막기 위한 농성으로 이어졌고, 현장에서 525일을 넘게 버티고 있다.

▲모래사장이 유지되는 고마나루 ⓒ 김병기
그때의 긴박한 순간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그러나 올해의 고마나루는 달랐다. 수문은 열려 있었고, 금강은 숨 쉬고 있었다. 수문이 열린 상태에서도 백제문화제는 아무런 차질 없이 진행됐다. 설치가 불가능하다던 황포돛배와 유등 부교도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그동안 담수를 꼭 해야 한다던 말들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음을 현장은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공주의 변화는 작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강의 생명을 살리고 시민의 양심이 지켜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백제문화제는 오는 12일까지 진행된다. 남은기간 역시 문화제는 무리없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백제문화제가 담수 없는 상태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이번 사례는 앞으로 다른 지역축제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강은 흘러야 한다. 생명은 숨 쉬어야 한다. 백제문화제가 다시 살아난 강 위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큰 전환이다. 이제는 생명을 죽이는 문화제가 아니라, 강과 함께 숨 쉬는 문화제로 나아가야 할 때다. 공주가 보여준 이번 변화에 지지와 응원을 보내며, 많은 시민들이 변화된 공주백제문화제에 함께하기를 바래본다. 공주시가 공주보 담수를 요구한 첫 번째 지자체였지만, 이제는 공주보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인정한 첫 번째 지자체로 거듭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