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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학원을 등록했다.
컴퓨터 학원을 등록했다. ⓒ christinhumephoto on Unsplash

거듭되는 서류 탈락에, 스펙이라도 쌓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컴퓨터 학원을 등록했다. 일본에서 컴퓨터 교실은 4년 만인데, 처음 다녔던 학원은 일러스트레이터를 취미로 배우기 위해 등록했었다. 그때는 선생님이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진도를 직접 봐주는 식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풍경이겠거니 하고 상담 예약 후 학원을 찾았다. 근데 4년 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뭐지 건물을 잘못 찾아왔나.'

학원 내부엔 컴퓨터가 여러 대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앞에 각각 앉아 있었다. 다들 헤드폰을 끼고,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콜센터 같았다. 입구에 서서 머뭇거리고 있자, 데스크 직원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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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하신 분이시죠?"

신상 기록을 마치고 뻘줌하게 여기 저기 둘러보고 있자, 직원이 나를 불렀다. 파티션으로 막힌 작은 공간으로 안내했다.

"본인 목소리를 남에게 들리게 하고 싶지 않은 분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공간입니다. 이쪽에서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

'나 그 정도로 사회화가 안 된 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시키는 대로 헤드폰을 썼다. 화면에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자신 이시카와라고 소개한 그는 새 학생이 들어왔을 때 학습 목표와 수준을 묻고, 그에 맞춰 코스를 안내하는 '네비게이터'라고 했다.

간단하게 데스크에서 신상정보 등록한 것으로 진행하면 되지 왜 이런 걸 화상으로 하나 귀찮았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비대면 시대가 만든 새로운 접촉 방식이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같은 공간에서 실제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피하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이 급증했다. 그들을 위한 배려가 이런 형태로 진화한 것이었다!

길고 긴 확인을 위한 확인이 끝나고, 드디어 첫 수업 날. 모든 학습은 동영상 강의와 줌(원격회의 플랫폼)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학생과 선생님들(아마도 재택근무 중인 학원 소속 직원들)이 한 곳에 모인 메인룸이라는 가상 공간이 열리면, 그날의 리더 교사가 학생들을 각자의 개인룸으로 보낸다. 학생은 거기서 혼자 동영상과 교과서를 보며 학습하다가 막히면 '헬프 요청'을 누른다. 선생님 중 한 명이 입장해 도와준 뒤 퇴장한다.

잘 보니 출석 버튼 옆에, 또 다른 버튼이 있었다. 이름하여 방해금지버튼. 사실 교실에 상주하는 선생님이 있긴 하지만, 이 버튼은 그 선생님이 내게 간섭하지 않도록 하는 용도다. 이렇게까지 실제 사람을 꺼린다니 정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은 일본. 충분히 이해 간다. 물론 나는 아직까지 누른 적 없다.

사무직에서 재택근무가 일상이 됐다는 건 익히 들었지만, 소비자로서 비대면 시스템의 진화를 체험한 건 처음이다. 기술이 단순히 효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학습 방식 자체를 완전히 재구성하고 있었다. 사람과의 접촉은 최소화하면서 필요한 순간에 정확하게 개입한다. 이전에는 감으로만 느끼던 '적절한 거리'를 방해금지 버튼과 룸 배치, 헬프 요청 같은 구체적 기능으로 눈에 보이게, 규칙처럼 관리하고 있었다.

막상 학원을 한 달간 다녀보니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는데, 이 정 없는 학습 시스템이 굉장히 편리했다는 점이다. 아무도 내게 열심히 하라 하지 않았고, 왜 안 오냐고 닦달하지도 않았다. 선생과 학생은 어색한 스몰토크를 할 필요 없이, 필요할 때만 만나는 사이. 그와 동시에, 사람에 대한 면역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게 아닐까.

비대면의 편리함이 이렇게까지 매끄럽게 구현될 줄은 몰랐는데, 그 완벽함이 어딘가 허전하다.

#비대면서비스#비대면#일본비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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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진 (mjpark3) 내방

일본에서 시바견과 함께 사는 30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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