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 세바스티앙 르코르뉴(X, 구 트윗터)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신임 총리가 새 내각 발표 하루 만에 사임하면서, 프랑스 정치가 다시 혼란에 빠졌다.
프랑스 대통령실은 6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르코르뉴 총리의 사임을 수리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임으로 마크롱 대통령은 새 총리 임명, 조기 총선, 또는 대통령 사임이라는 극히 제한된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르코르뉘 총리는 지난 9월 전임 총리 프랑수아 바이루를 대신해 취임하며, 1년 사이 프랑스의 네 번째 총리가 됐지만, 4주도 채 되지 않아 퇴임하며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최단기 총리 기록을 남겼다.
6일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사임은 2024년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 선거를 실시한 이후, 프랑스가 안정적인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재정 위기를 피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프랑스는 심각한 재정 적자, 정치적 갈등,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고급 사회복지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정치권은 지난해 조기 총선 이후 극도로 분열됐다.
프랑스 하원은 총 577석으로 구성돼 있으며, 과반을 확보하려면 289석 이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의석 상황은 극우와 좌파가 합쳐 320석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중도파인 르네상스당과 연합 보수세력(210석)은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구조다.
이 같은 의석 분포는 정부의 정책 추진에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 단독 과반이 없는 상황에서는 원하는 법안이나 예산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으며, 야당의 협조와 정치적 타협이 필수적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법안 통과가 지연되거나 막히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내각 안정성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번 르코르뉘 총리 사임 사태도 이러한 구조적 제약과 맞물려 발생한 정치적 혼란으로 평가된다.
르코르뉘 총리 사임의 직접적 원인은 전날 발표된 내각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이었다. 5일 밤 발표된 18명의 장관 중 대부분은 바이루 전 총리 내각 출신이었고, 기존 마크롱 정부 핵심 인사들도 다수 포함되면서 '변화 없는 재탕 내각'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전 재무장관 브뤼노 르메르를 국방장관으로 재임명한 결정은 보수세력의 반발을 불러왔다. 그는 원래 재무장관 출신으로 경제·재정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국방 분야 전문가는 아니다. 정치적 배경과 대통령 측근이라는 신뢰가 중요한 임명이었고, 전문성보다는 정치적 안정성과 충성도가 고려된 인사였다.
주요 과제였던 예산안 통과도 쉽지 않았다. 2025년 1분기 기준 프랑스 공공 부채는 3조3460억 유로(약 3.9조 달러), GDP 대비 114%에 달한다. 르코르뉴 총리는 헌법 49조 3항을 활용해 의회 투표 없이 법안을 강제 통과시키는 방식을 배제하고, 야당과 합의를 통해 타협안을 마련하려 했지만 정치적 균형 확보에는 실패했다.
정치 불안, 고스란히 경제로... "경고 신호"
새 내각 장관들은 새로운 총리와 내각이 임명될 때까지 임시로 일상 업무만 수행하게 된다. 재임된 생태부 장관 아그네스 파니에-뤼나셰는 X(구 트위터)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 광대극에 절망한다"고 남겼다.
국민연합 마린 르펜 대표는 6일 "의회를 해산하라. 이 희극은 충분히 길었다.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고, 극좌 '불굴의 프랑스' 마틸드 파노 상원의원은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마크롱은 물러나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당 대변인 아르튀르 들라포르도 X에 "이 덧없는 정부가 보여주는 것은 단 하나, 마크롱주의가 다시 한 번 국가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것뿐"이라고 비판했다.
정치적 불안은 경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6일 파리 증시 CAC 40 지수는 1.5% 이상 하락했고, 유로화 가치는 0.7%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프랑스 정치 체제가 지속적으로 마비 상태임을 보여주는 경고 신호"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정치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의 유럽 담당 전무 무즈타바 라흐만은 "이제 마크롱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으며, 어느 것도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프랑스 대통령은 또 다른 총리를 임명해 같은 '지뢰밭'을 헤쳐 나가게 할 수 있고, 혹은 새 의회 선거를 실시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선택지는 그가 과거에 강하게 배제해온 사임으로, 이 경우 예정된 2027년 대통령 선거가 앞당겨진다.
라흐만은 "선거나 사임은 마린 르펜의 극우를 권력으로 올릴 수 있다"고 지적하며, 따라서 마크롱은 "심각한 재정·정치 위기를 피하기 위해 분산된 극우와 좌파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낼 새로운 총리를 찾는 쪽이 더 현실적"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치적 역학은 다음 총리에게도 동일하게 제약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2026년 예산안을 제출해야 하는 시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타협을 찾지 못할 경우, 라흐만은 "새 총리도 몇 주 안에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프랑스의 불안정이 유럽연합(EU) 내 가장 크고 강력한 국가 중 하나이자 유로존 2위 경제국에 큰 충격을 주고 있으며, 동쪽으로 보다 공격적인 러시아, 서쪽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하의 미국과의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입지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