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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내내 가게 문은 열려 있었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지만 사람의 온기로 늘 북적였다. 어른도 아이도 이 무더운 여름을 견디기 위해 하나같이 아이스크림을 찾았고 그 웃음소리가 여름날의 배경음악처럼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여름이 서서히 끝나가면서 마음 한켠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제 곧 비수기가 오겠구나."
여름이 지나면 아이스크림은 잘 팔리지 않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가게 안의 냉장고보다 마음이 먼저 식는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가게에 온기를 채워야겠다.'
휴게실 공간이 있으니 활용해볼 만했다. 처음엔 단순히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곧 문득 떠올랐다.
"정수기도 있으니 뜨거운 물을 쓸 수 있잖아. 그럼 사발면도 먹을 수 있겠네."
그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사발면 휴게실이 태어났다.
테이블도 마련돼 있었다.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이용하면 언제든 따뜻한 국물을 즐길 수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숙제를 하며, 잠깐의 쉼을 가지며 사발면 한 그릇을 즐길 수 있는 공간. 작지만 사람 냄새 나는, 온기 있는 공간이 되었다.
휴게실을 꾸리고 나서 단골들이 더 자주 찾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들은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각자 좋아하는 사발면-불닭볶음, 짜파게티, 우동-등을 골라 즐긴다. 어느 날 가게 정리를 하던 우리 부부에게 아이들이 다가왔다.
"어? 혹시 사장님이세요? 저희 여기서 사발면 아주 잘 먹고 있어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장님, 비빔면 사발면도 좀 부탁해요."
"비빔면을 사발면으로? 그건 시원하게 먹는 거 아니야?"
내가 웃으며 묻자,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저는 뜨거워도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맛있게 먹을게요"
그 말이 어찌나 당당하던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거들었다.
"사장님, 전자레인지도 하나 들여놓으세요!"
그 말에 바로 옆 친구가 손사래를 쳤다.
"야, 전자레인지는 너무 비싸. 그건 사장님한테 무리야. 너무 많은 거 요구하지 말자."
그 작은 대화 속에서 묘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단골 아이들이지만 '가게 주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보였고, 동시에 이 가게가 그들에게는 단순한 '무인점포'가 아니라 '사람이 있는 공간'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며칠 뒤, 나는 진짜로 고민에 빠졌다.
'전자레인지를 들일까, 말까?'
아이들의 바람도 귀에 맴돌았고 비수기를 대비할 겸 한 번 시도해 볼까 싶었다. 결국 작은 전자레인지를 구입했다.

▲전자렌지를 들일까? 말까?아이들의 바람도 귀에 맴돌았고 비수기를 대비할 겸 한 번 시도해 볼까 싶었다. 결국 작은 전자레인지를 구입했다. ⓒ 이효진
휴게실 한켠에 놓인 전자레인지와 정수기, 그리고 테이블 두 개. 그렇게 이 작은 무인가게의 풍경은 또 한 번 변했다.
이제 아이들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자연스럽게 휴게 공간을 즐긴다. 새롭게 마련한 전자렌지로 컵밥을 데워 먹거나 사발면을 돌려 먹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무인가게 운영은 겉보기엔 단순해 보인다. 가게 문을 열어두고 계산은 기계에 맡기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는 고민과 소통이 필요하다. 때로는 가게를 정리하러 들렸다가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휴게실 한쪽 화이트보드에 적힌 기분 좋은 메시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사장님, 오늘 컵밥 맛있게 먹었어요."
이처럼 휴게실에 모인 사람들 덕분에 무인가게는 더 이상 무인이 아니다. 따뜻한 정과 마음, 소통이 오가는 곳이 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요즘 세상에 무인가게가 얼마나 많은데, 다 비슷하지 않아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공간을 단순한 '상품 판매 장소'로만 두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스쳐 가는 곳, 이야기가 머무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누군가의 하루가 잠시 쉬어가는 작은 쉼표 같은 공간으로.
이제 여름의 열기가 서서히 식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아이스크림 냉장고의 문이 예전보다 조금 덜 열리는 만큼, 사발면 진열대는 서서히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뜨거운 물에 김이 피어오르고, 그 앞에서 아이들이 서로 면발을 불며 웃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비수기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녹아내린다.
무인가게라 해도, 결국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작은 무인가게지만,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과자를 고르고, 때로는 사발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는 사람들까지 잠시 머물다 가는 작은 쉼터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와서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마다 가게는 더 이상 '무인'이 아니다.
찬바람이 불어도 괜찮다. 이 작은 휴게실에는 이미 사람의 온기가 가득하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 개인SNS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