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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신 지 9년이 지났다. 어머님 생신은 추석 사흘 전이었다. 명절을 맏이인 우리 집에서 지냈기 때문에 어머님은 추석 나흘 전에 우리 집으로 오셨다. 어머님 생신상을 준비하는 것은 항상 내 몫이었다. 부산에 사는 시동생 둘은 명절 전날에 왔다.
당시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어머님 생신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생신 다음 날은 추석 차례상 준비를 위해 장을 보아야 했다. 추석 전날 아침이 되면 부산에서 올라온 동서들과 차례 음식을 준비했다. 추석 당일 차례를 지내고 오후 쯤에야 가족 모두가 떠났다. 뒷정리가 끝나야만 길었던 5일간의 추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장을 보고 차례상을 준비하고 뒷정리까지 해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어른이 계시기에 당연히 해야 하는 관례라 생각하고 불평 한마디 없이 30년을 넘게 맏며느리 자리를 묵묵히 견뎌내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생신상은 차리지 않아도 되었지만, 차례는 계속 지내왔다.
2022년,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에서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경제적 부담과 남녀, 세대 갈등 해소를 위해 간소화 방안을 내놓았다. 음식 가짓수는 최대 9개면 족하다는 것과 전을 부치느라 더는 고생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집도 차례상 표준안에 맞추어 간소하게 지냈다. 그즈음 차례를 간소화하거나 생략하는 가정도 늘고 있었다.
가족 회의 후 결정한 명절 보내는 방법

▲명절마다 장보는 것이 일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 eduschadesoares on Unsplash
3년 전, 부모님의 제사를 같은 날로 모시기로 한 아버님 기일이었다. 남편이 동생들에게 말했다.
"요즘 추세가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도 그렇게 하면 어떨까?"
당시에 60을 내다보는 맏며느리인 나도 수십 년을 제사며 차례를 모시느라 고생했으니 이제 좀 편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면 차례는 지내지 않는 대신 각자 시간에 맞춰 부모님 계시는 추모공원에 다녀오는 것도 좋겠어요. 그리고 각자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오는 건 어떨까요?"
나의 말에 이런저런 의견이 오고 갔다. 큰시동생이 말했다.
"우리가 차례비로 10만 원씩 드리고 있는데 그 돈으로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사 오거나 만들어 오면 어떻겠습니까?"
"그거 좋은 방법이네. 가족들이 다 모여서 좋고, 누구 하나 고생하지 않아도 될 테니 풍성한 명절이 되겠다. 다음 명절부터 그렇게 하자."
삼형제의 회의를 거쳐 우리의 명절 문화는 이렇게 바뀌게 되었다. 이제는 명절 전날부터 와서 기름 냄새 맡아가며 음식을 하는 일이 없어졌다. 대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와서 푸짐하게 먹고 놀다가 헤어진다. 음식의 종류도 다양했다. 참치회, 장어, 소갈비 등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다양한 음식들이라 더 좋다.
올해는 특히 긴 추석 황금연휴가 시작된다. 가족들을 만나러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을 터이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각자 일 특성 상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일은 힘이 든다. 딱 하루이지만 만나서 그간의 회포를 푸는 것도 여행 못지않은 소중한 시간이다.
우리 가족은 이번 추석에 색다른 것을 준비했다. 음식을 만들든 사든 간에 준비하지 않고 만나기로 했다. 때마침 어제 알아본 식당이 추석 당일에 문을 연다고 했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자는 나의 제안에 모두 기분 좋게 찬성했다.
온 가족이 영화를 관람하고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헤어지기로 계획이 되어 있다. 시간이 늦어지면 저녁까지 먹고 헤어지자고 이야기가 되었다. 가족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이면서도 누구 하나 힘들게 하지 않는 우리 집만의 명절 문화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