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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분리수거'와 '분리배출'을 같은 말로 쓰곤 한다. 하지만 두 단어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분리수거는 이미 버려진 쓰레기를 종류별로 모아 거두어들이는 과정이고, 분리 배출은 가정이나 사업장에서 쓰레기를 버리기 전에 올바르게 구분해 내놓는 과정을 뜻한다.

다시 말해, 분리수거는 사후 처리이고, 분리 배출은 사전 실천이다.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를 잘 구분해서 배출 해야 한다. 일상에서 분리배출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플라스틱 병의 라벨은 떼야 하는지, 우유팩은 왜 일반 종이가 아닌지, 음식물 자국이 남은 비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고민해 본 문제일 것이다.
 빈 병의 라벨을 떼고 병 뚜껑을 분리하는 것은 기본이지
빈 병의 라벨을 떼고 병 뚜껑을 분리하는 것은 기본이지 ⓒ 신혜솔

우리나라 분리배출의 시작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분리 배출 제도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1995년, 쓰레기 종량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쓰레기를 돈을 내고 버려야 했고, 매립지 부족과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활용 정책이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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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부터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요일별 분리배출제가 시행되었다. 특정 요일에만 종이, 플라스틱, 캔 등을 내놓아야 했는데, 당시만 해도 이런 제도는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당시에는 분리배출은 대개 주부들의 몫이었다.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았고,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었다.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분리 배출하는 날에 보면 거의 남성들이 쓰레기를 가지고 나오는 집이 많다.

본격적으로 분리 배출이 시행되던 무렵 나도 아파트에 살았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수요일이 재활용품들을 모아 분리배출 하는 날이었다. 처음엔 번거롭다고 생각했지만, 몇 번 해보면서 깨달았다.

"이건 어른들만의 일이 아니구나.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야 하는 일이야."

학교에서 환경 교육을 하더라도, 실제로 실천하는 자리는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두 아들에게 분리배출을 생활 속에서 직접 배우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3학년이던 시절이었다. 몇 번을 함께 하면서 자부심을 갖게 해 주었다. 솔직히 대충 하는 어른들보다 더 나았다. 그래서 칭찬을 많이 해 주었다.

그 후론 매주 수요일이면 학교에서 헐레벌떡 뛰어와 책가방을 던져 놓고 재활용 쓰레기 바구니를 둘이서 나누어 들고나갔다. 어린 아이라 대충 흉내만 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확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렇게 분리 배출을 하는 모습을 본 동네 어른들도 칭찬을 많이 해 주시니 얼마나 뿌듯했을까.

"어느집 아들들이야? 기특하다, 잘한다"는 말이 아이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엄마를 도와주는 것이 기쁘다고 했고, 나는 그 보답으로 용돈을 주기 시작했다. 그 돈을 모아 갖고 싶던 물건을 사며 성취감을 느꼈던 아들은 분리배출을 놀이처럼 즐겁게 했던 것 같다. 칭찬과 기쁨은 아이를 더 움직이게 했고, 그 작은 습관은 자연스레 몸에 배어갔다. 나는 분리배출이 그저 귀찮은 집안일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야 할 교육이라는 사실을 요즘 다시 깨달았다.

손자의 차례

세월이 흘러 지금도 우리 집의 분리배출 담당자는 여전히 아들, 즉 로리 아빠다.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분리 배출 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모습은 아들의 일상이 되었다. 앞으로는 그 곁에 로리가 함께 설 것이다.

"할머니, 이건 어디에 버려야 해?"

로리가 우유를 마시면서 우유팩을 들고 물었다. 나는 우유팩은 씻고 펼친 다음에 말려서 모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럼 로리는 못해, 할머니!"
"그래, 로리가 할 수 있는 걸로 아빠를 도와주면 돼, "

플라스틱 병에서 라벨을 떼고, 뚜껑을 분리하는 일을 함께했다. 뚜껑은 잘 여는 듯했다. 택배 상자에 테이프를 제거하는 것을 본 로리가 "할머니! 이건 누구한테 주는 선물이야?"하고 천진하게 물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재활용으로 순환하는 것은 지구에게 선물하는 것이나 다름없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분리배출 처음 아빠와 함께 해 보는 재활용쓰레기 분리
분리배출처음 아빠와 함께 해 보는 재활용쓰레기 분리 ⓒ 신혜솔

분리배출은 귀찮은 집안일이 아니다. 그것은 생활 속 필수 교육이자, 세대를 이어가는 환경을 위한 약속이다. 초등학생이던 아들이 그랬듯, 이제 로리 역시 작은 손끝으로 지구와 대화를 시작한다.
이 작은 습관이 모여 우리 가족의 내일을, 그리고 지구의 미래를 조금 더 푸르게 물들이리라 희망한다. 로리가 처음 분리배출을 하던 오늘을 떠올리며 아빠와 함께했던 실천을 대물림해 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분리배출#재활용#환경교육#실천#아빠와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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