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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대표해 그간 고통 받은 해외 입양인과 가족, 그리고 원가정에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일 6·25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된 17만여 명의 해외 입양인들에게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를 했다. 이날 오후 5시 57분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은 전 세계 한인 입양인 공동체에 전파됐다.

'아동 수출국'의 부끄러운 70여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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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은 한때 '아동수출국'이라는 부끄러운 오명을 써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식 기록만으로도 6·25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17만여 명의 아동이 해외에 입양됐다(관련 기사 : [주장] 해외입양 즉시 중단되어야 하는 이유). 이 대통령은 "따뜻한 입양 가족을 만난 이들도 있었지만, 일부 입양 기관의 무책임과 방조로 평생을 고통 속에 보낸 분들도 많다"고 강조했다.

"아직 우리말도 서툰 어린 나이에 이역만리 타국의 낯선 땅에 홀로 던져졌을 해외 입양인들의 불안과 고통, 혼란을 떠올리면 마음이 매우 무겁다"는 대통령의 말은 해외 입양인들이 겪은 심리적 고통을 되새긴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0.2
이재명 대통령이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0.2 ⓒ 연합뉴스

대통령의 이번 사과는 최근 법원 판결과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근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해외입양 과정에서 일부 부당한 인권침해 사례가 확인되기도 했다"며 "그 과정에서 국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부분들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지난 2022년 덴마크한국인권단체(DKRG)가 주도해 진행된 진화위 조사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밝혀냈다. 출생 기록 조작, 친부모 동의 없는 입양 진행, 입양 알선 과정의 금전 거래, 입양 후 사후관리 부재 등 구조적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특히 일부 입양 기관들이 입양 건수를 늘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서류를 조작하거나, 친부모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입양 동의서를 받은 사례들도 확인됐다.

이번 사과는 한국이 이달부터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의 공식 당사국이 된 것과 맞물려 있다. 이 협약은 1993년 발효된 국제조약으로, 아동의 권익 보장을 최우선으로 두고 해외 입양 아동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다. 한국은 지난 2013년 협약에 서명했지만, 관련 국내법 개정이 미뤄지면서 비준이 계속 지연됐다. 국제적으로 협약이 발효된 지 32년, 서명 후 12년 만에 이제야 공식 당사국이 됐다.

이 대통령은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와 함께 아동의 권리 보호를 최우선에 두고, 국내외 입양 절차를 투명하고 책임 있게 운영하겠다고 국제 사회와 약속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대통령은 "이제 국가가 입양인 여러분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7월 시행된 '국내입양에 관한 특별법'과 '국제입양에 관한 법률'로 국가와 지자체가 입양 절차를 책임지는 체계도 마련됐다.

덴마크·서울 입양인 단체들 "역사적 순간"

과거 사설 입양 기관 주도였던 체계가 아동권리보장원과 지자체 중심으로 전환됐다. 입양인의 출생 정보 접근권도 대폭 강화돼, 만 19세가 되면 자신의 출생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에 '입양정보통합관리시스템'이 구축돼 모든 입양 기록이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이 대통령은 "해외 입양인들의 뿌리 찾기를 도울 실효적 지원 방안도 함께 강구해 주길 바란다"며 "입양인과 입양 가정, 그리고 원가정이 서로 함께함으로써 더 큰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 전 세계 입양인 단체들이 즉각 환영 메시지를 보냈다. 덴마크한국인권단체(DKRG) 공동대표인 피터 뫼러와 한분영 씨는 감사 서한에서 "전 세계 수많은 한국계 해외입양인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가져다 주었으며, 오랜 시간 마음속에 아픔을 간직해온 우리들에게 따뜻함과 희망을 전해 주었다"고 밝혔다. DKRG는 "(이번) 공식 사과는 단순한 역사적 반성의 순간에 그치지 않고, 의미 있는 변화를 향한 출발점이자 지속적이고 건설적인 대화를 여는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해외입양인 지원단체 뿌리의집(KoRoot)도 감사 서한을 보냈다. 뿌리의집은 "해외로 보내진 아동들이 겪은 '불안, 고통, 혼란'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전한 것이 깊이 와 닿는다"며 "국제 입양인과 그 가족들의 경험을 존중하고, 진정한 변화를 향한 희망을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뿌리의집은 "과거의 부정의를 단순히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입양인을 보호하고 화해를 촉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조치를 실행하려는 확고한 결단을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단체 모두 "대한민국 정부가 이 중요한 과제를 추진함에 있어 변함없는 지지와 조언을 언제든지 기대하셔도 좋다"며 협력 의사를 밝혔다.

사과를 넘어 실질적 변화로

이제 중요한 것은 사과를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가는 것이다. 새로운 입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해외입양인 지원정책이 실효성 있게 집행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서류 조작으로 친부모를 찾지 못하는 입양인들, 정체성 혼란으로 심리적 고통을 겪는 이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도 필요하다.

전 세계 30여 개국에 흩어진 한국계 입양인들이 이재명 대통령의 약속이 진정한 변화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70년 묵은 상처가 치유되려면 오랜 시간과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사과가 공허한 말이 아니라 진정한 변화의 시작점이 될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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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wadans) 내방

<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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