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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75세의 노인들이 모인 '내 생애 마지막 기부 클럽'.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편 먹먹해지는 이 작은 공동체는,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손, 골목을 구부정하게 걷는 등,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폐지 줍기, 지하철 택배, 노인 일자리 등을 하는 노인들이 지역 사회를 위해 기부를 하는 모임.
그들은 말한다.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축복"이라고.
축복을 돌려주기로 하다
노인 일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하철 택배를 하는 김 할아버지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게 다 나 혼자 잘해서 된 게 아니고, 여러 사람의 땀과 노력이 보태져서야."
그래서 우리는 받은 축복을 사회에 돌려주기로 했다. 천원, 이천원. 주머니 구석에서 꺼낸 동전들이 모여, 이제는 누군가의 삶을 적시는 물결이 되었다.
고령사회 대한민국에서 노인과 청년 간의 갈등은 날로 깊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길을 택했다. 세대 간 화해와 협력이야말로 초고령 사회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으로, 청년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200만 원으로 시작한 청년 전세자금 지원이 지금은 1000만원에 이르렀다. 청년재단에도 600만원을 기부했다. 서울 종로구청 아동복지팀을 통해 자립준비 청년들의 생활비와 위탁 가정 아동들의 주택 청약금으로 3600만원을 후원했다.
보육원 철문을 나서는 열아홉 살. 그 아이들이 세상에 홀로 내던져질 때, 적어도 돌아갈 집 하나는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매달 2만원씩 쌓아가는 청약금. 그 작은 돈이 언젠가는 그들의 든든한 보금자리가 되기를 꿈꾼다.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라는 씁쓸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우리도 가난하지만, 더 어려운 노인을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 케어'의 차원에서, 동부시립병원을 통해 가난한 노인들의 의료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지원은 점차 확대되어 지역사회의 어려운 장애인, 노숙인의 의료비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2200만원을 기부했다. 돈이 없어서 치료 받지 못하는 이웃들을 위한, 공공병원에서의 따뜻한 나눔이다.

▲Unsplash Image ⓒ julia_2501 on Unsplash
지난해 JTBC 뉴스에서 사채 피해자를 무료로 돕던 민생연대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채 피해로 삶의 나락에 떨어진 이들에게 용기를 주자는 마음으로, 매월 25만원씩 지원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275만원을 후원했다. 그 작은 돈이 문 닫으려던 사무실의 불을 다시 켜는 데 보태졌다. 민생연대는 다시 사채 피해자들의 마지막 버팀목이 되었다.
기부금품 모집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기부금의 15%는 관리비, 운영비, 인건비로 사용할 수 있다. 유명 기부 단체 일부는 모금액의 15%를 각종 비용으로 지출한다. 하지만 우리 '내 생애 마지막 기부 클럽'은 다르다. 기부금액의 96%가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규모가 작아 자원봉사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4%가 차감되는 이유는 홈페이지 유지 관리비 같은 최소한의 비용 때문이다. 또한 서울시나 기초자치단체를 통해 수혜자를 발굴하고 사례 관리를 함으로써 비용을 줄이고 신뢰성을 담보한다.
꿈을 실현하는 기부
기부는 거창한 돈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죽음을 함께 공부하는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진정한 나눔은 때로 지갑이 아닌 가슴에서 꺼낸 선물일 때 더 빛난다는 것을. 평생 비혼으로 사신 한 어르신이 계셨다. 법학을 전공했지만 피아노를 사랑해 평생 피아노 선생님으로 사셨던 분. 그분의 한 가지 한은 피아노 전공자가 아니어서 독주회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 피아노 카페를 전세 내어 어르신만을 위한 작은 독주회를 열었다. 이것도 일종의 기부였다. 돈이 아닌 시간과 정성으로, 한 분의 꿈을 실현해드리는 선물 말이다. 독주회 전날 밤부터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어르신의 모습에서, 나누는 기쁨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자신이 죽을 때 입고 싶은 옷 하얀 드레스를 입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 까지 듣고 싶은 음악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을 연주하시는 어르신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하는 기부도 이와 같지 않을까. 누군가의 꿈을 이루어주고, 절망한 이에게 희망을 주고, 외로운 이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것. 독주회가 끝나고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지금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나의 마지막 주소는 지금, 여기 우리 관장님입니다."
함께한 어르신들도 거들었다.
"우리 생의 마지막 주소도 관장님입니다."
나도 말했다.
"내 생애 마지막 주소는 어르신들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부 클럽의 진짜 모습이다. 서로가 서로의 마지막 주소가 되어주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나누며 사는 것. 그날, 시원한 바람이 덩어리로 지나다니는 여름 낮, 우리는 또 하나의 소중한 기부를 완성했다.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있어도 기부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회의 도움과 행운 없이는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폐지 줍는 노인의 천 원, 지하철 택배 하는 노인의 이천 원. 그 작은 동전들이 모여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 소득의 1%, 유산의 1%라는 작은 나눔이 세상을 조금씩 따뜻하게 만든다. 뉘엿뉘엿 노을 지는 묵정밭 같은 세대 간 갈등. 하지만 노인들의 기부로 청년들의 삶 한구석이라도 잠시 밝아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세상에 대한 작은 감사
내 생애 마지막 기부 클럽의 노인들은 말한다.
"노인이 되니 소득이 없고, 자식에게 부양 받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지만 괜찮아. 우리는 그나마 건강할 수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사회가 준 선물이고, 그것은 가지고 가는 게 아니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이것이 우리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받은 만큼 나누고, 살아있는 동안 사랑을 실천하는 것.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품고, 절망하는 이웃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 우리의 기부는 거창한 자선 사업이 아니다. 그저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작은 감사의 표현이다. 내가 받은 축복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는 아름다운 순환이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작은 불빛이 더욱 소중해지듯, 각박한 세상 어딘가에서 노인들이 마지막 힘으로 켜 놓은 등불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 빛이 닿는 곳에서, 누군가는 다시 일어서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종로시니어클럽 관장으로, 내 생애 마지막 기부 클럽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사는 종로시니어클럽 기관 뉴스레터에도 송고됩니다.